"민노총·전교조·농민회 난립해, 입학식까지 무산시켜"…'경산 문명고 국정교과서 사태' 재조명
  • "연구학교 지정을 취소하시오. 국정교과서를 학생들에게 배부하면 광화문 광장에서 책을 불태워버리겠소."

    2017년 2월 20일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는 연구학교로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를 지정하자, 재직 교사 20명이 반대 서명에 나섰고,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학교 현관문과 소강당에 붙었다.

    역사교과 담당교사가 공개적으로 수업 거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대 시위로 3월 2일 열린 입학식이 5분도 채 되지 않아 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튿날부터는 반대대책위원회 학부모들과 전교조, 민노총이 경산 오거리에서 매주 월·수·토요일 합동으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한 대책위 소속 학부모가 교장실로 찾아와 "당장 연구학교 지정을 취소하지 않으면 책을 불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3월 17일 대구지방법원이 학부모대책위가 낸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사용은 전격 중지됐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5월 2일 경북교육청의 연구학교 집행정지에 대한 항고가 기각되고 5월 10일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적폐 1호'로 선정, 즉각 폐지할 것을 행정명령하면서 문명고의 역사교과서 지키기 투쟁은 77일 만에 좌절되고 말았다.

    "개정된 검정교과서, '文비어천가'나 마찬가지"


    당시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주도했던 김태동 전 문명중·고등학교 교장은 최근 글마당이 펴낸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백서'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가정책의 변화에 따라 단 한 페이지도 넘겨보지 못하고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김 전 교장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으나 문제는 당시 책의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정권의 홍보용이라고 비난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과연 2020년 검정교과서는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전 교장에 따르면 3년 전 '문명고 사태' 이후 개정된 검정교과서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사진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촛불 시위를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등 현 정권을 옹호하고 두둔하는 문구들로 치장돼 있다.

    이와 관련, 김 전 교장은 "3년 전 국정 역사교과서를 박근혜, 최순실의 교과서라고 비판하던 그들의 논리를 빌리자면 이번 교과서는 '문비어천가', '문재인 교과서'나 마찬가지"라며 "당시 국정교과서를 박근혜 정부 홍보라고 힐난하던 사람들이 아직은 결과도 모를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몇 배로 홍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승만 독립운동은 폄훼… 공산주의자 활동은 과대 포장"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백서'는 2017년 2월 문명고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선정됐다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겪은 불법적인 폭력 시위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한 책이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기사들을 충실히 인용해 해당 연구학교 교장의 '교과서 선택권'조차 처참하게 무시된 파행의 과정이 낱낱이 소개됐다.

    아울러 좌편향된 8종 검정교과서를 심층 분석, 이들 교과서에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수치와 죄의 역사로 폄훼하는 '부정의 역사관'이 담겨 있음을 지적하고, 국사교과서는 과거 '교학사 교과서'처럼 투쟁과 갈등보다는 단결과 통합의 측면에서 서술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태동 전 교장 외에도 홍택정 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과 곽일천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교장 등 최일선에서 국정교과서 사수에 나섰던 이들을 비롯해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박진용 역사저술가,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 양일국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등 다수의 역사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2017 국정교과서의 '문제없음'과 2020 검정교과서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2020 검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 용어와 해석뿐 아니라 기술 방식까지도 북한 역사서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미국 군정과 소련 군정을 대비시키고 있는 대목이 좋은 사례다. 특히 최근 발간된 검정교과서는 미군정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대해선 우호적으로 평가한다는 분석이다.

    또 이승만 대통령이 펼친 독립운동은 제대로 서술하지 않으면서 김원봉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조직 활동에 대해서도 북한 측 주장대로 과대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역사 용어, 해석, 기술 방식까지 북한 역사교과서와 유사"


    정경희 의원은 "최근 교과서 가운데 일부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 부정적 서술로 일관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부정하고 있다"면서 "건국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5.10 총선거에 대해 대부분의 교과서는 '5.10 총선거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주 보통선거였다'고 긍정적으로 서술했지만, 7차 이후 일부 교과서는 '남한만의 총선거였다'고 그 의미를 폄훼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 의원은 "7차 교과서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을 '정부 수립'으로 격하시키는 서술이 시작됐다"며 "그 결과 7차 근현대사 교과서 6종과 2007년 개정 한국사 교과서 6종 가운데 절반가량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남북한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인식 아래 쓰여진 것으로,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깔려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시각이다.

    또 정 의원은 "일부 국사교과서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 서술은 대한민국을 건설한 세력에 대한 조직적 폄훼로 이어진다"며 "폄훼의 가장 주된 대상은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에 독자 정권을 수립한다'는 소련의 결정(1945년 9월)이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읍 연설(1946년 6월)보다 훨씬 앞선 것임에도 이 대통령이 마치 고의로 분단을 획책한 것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나아가 금성 한국 근현대사와 2010년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독립운동 노선 중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노선을 '미련한 꿈'으로 일축하고, '폭력혁명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수록하는 등, 이승만 깎아내리기에 몰두한다"고 지적한다.

    "촛불 시위 찬양, 탄핵 정당화, 文정권 탄생 미화"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8개 출판사(금성, 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씨마스, 지학사, 천재교육, 해냄에듀)에서 2020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라는 명목으로 만들었지만, 역사 인식 면에서 문재인 정권의 홍보를 위한 '좌편향 국정교과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교과서가 건국의 과정과 산업화의 공로를 독재정권의 악덕으로 희석하면서, 한편으로는 촛불 시위를 찬양하고 탄핵을 정당화하며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수호 의지나 설명은 없고 ▲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삭제·누락됐으며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부터 등장한 참여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연결된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을 미화·찬양하면서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사관의 입장에서 기술해 대북 경각심을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