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해적도 이렇지는 않았다"… '반인권 노예국가' 北 실체 깨달아야
  • ▲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A(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의 공무원증. ⓒ실종된 공무원 형 이모씨 제공 / 연합뉴스
    ▲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공무원 A(47)씨의 친형이 24일 동생이 남겨두고 간 공무원증 등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은 A씨의 공무원증. ⓒ실종된 공무원 형 이모씨 제공 / 연합뉴스
    북한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표류 중이던 해양수산부소속 우리 공무원 이씨(47)를 현장에서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피와 살을 나눈 동포집단에서 발생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야만적인 사건이다.

    24일 뉴데일리 전경웅 기자가 군 관계자로부터 취재해 보도한 내용은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보도에 의하면 9월21일 낮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되었던 이씨는 물살에 따라 북한 쪽으로 표류하던 중 22일 오후 북한군 소속 수산기업소 단속정에 발견되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군은 지친 이씨를 물에서 건져올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심문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심문 중에 구명조끼와 부유물을 잡은 상태였다고 했다. 이후 북한군은 이씨를 현장에서 사살했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시신 처리를 우리는 ‘화장(火葬)’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30시간 가까이 바다에 표류해 기진맥진한 비무장 상태의 조난자를 그 어떤 구호조치나 재판도 없이 현장에서 사살한 것은 이 지구상에 명색이 ‘국가’를 표방한 현대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만적 행태다.

    중세 해적도 조난자만큼은 측은지심으로 대해


    조선 성종시대 문관(文官) 최부(崔溥, 1454~1504)는 1448년 정월 부친 상(喪)을 당해 제주를 거쳐 육지로 건너오다 풍랑을 만났고, 배에 탄 일행과 함께 거친 바다를 표류했다.

    표류 13일 만에 기적적으로 중국 절강성 해안에 안착했지만, 이들을 반긴 것은 해적 떼였다. 해적들은 최부 일행을 발가벗긴 채 매질을 하고 금품을 갈취했다. 하지만 거친 바다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낯선 외국인 일행을 죽이지는 않았다.

    육지에 도착해서는 현지인들로부터 왜구로 오해받아 칼로 위협을 당했다. 현지인들로서는 최부 일행이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졌겠지만, 조난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야만적인 행위는 벌이지 않았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Hendrik Hamel) 일행도 조선 정부와 관리로부터 최선의 구호조치를 받았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고, 국제적 정보가 차단되고, 서양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없고,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대의 사람들도 이처럼 표류인에 대해서만큼은 측은지심으로 대하고 구호활동에 임했다.

    현대에 와서 표류인에 대한 구호와 적절한 보호조치는 국제적 관례를 넘어선 문명국가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수없이 많은 북한 표류 군인과 민간인을 구조한 후 북으로 돌려보냈다.

    '야수적 만행' 만연‥ 북한 전체가 창살 없는 감옥


    북이 대낮에 이처럼 중세 해적도 저지르지 않는 조난자에 대한 야수적인 만행을 거침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이 정권의 속성이 폭력과 야만 그 자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 동포들은 지금 해방 80년이 다 되도록 손톱만큼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국가를 표방한 폭력집단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전체가 창살 없는 감옥이 된 지 오래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못하는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20만 명의 동포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고 있다.

    주민들은 거주이전·직업선택·종교의 자유는 물론이고,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초보적인 일상 가정생활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100만 명에 이르는 인민군은 김정은 일족의 사병(私兵)집단이 되어 10년 동안 혹독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한다.

    이런 북한에 대해 태영호(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의원은 한국으로 망명 직후 북한 정권의 속성을 ‘노예주가 다스리는 노예사회’로 규정한 바 있다.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들이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받았던 충격과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하나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3조’의 힘 때문이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조문 때문에 북한 김정은 집단은 ‘국가를 참칭한 반역집단’이 되는 것이고, 북한의 모든 주민은 우리 국민과 동등한 헌법적 권리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조문 때문에 건국 후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은 남한 땅을 밟는 순간 자동적으로 우리 국민 취급을 받게 되며,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복잡한 귀화 절차 없이 곧바로 주민등록을 주는 것이다.

    北 '시체갑문' 방문해 "인민은 위대하다" 서명


    하지만 역대 좌파 대통령과 좌파 정당은 북한 주민들이 헌법상 우리 국민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 때문에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나 지금이나 북한 정권의 폭압에 시달리는 우리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은 집권 기간동안 상징적인 북한인권법조차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최근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21년간 진행해온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2007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썼다. 대동강 남포갑문(서해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보고 정상적인 국민치고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은 이가 없었을 것이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자신이 무슨 위치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서 서해갑문은 ‘시체갑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수령님이 살아생전 보지 못하는 공사는 의미없다’고 하면서 무리하게 공사 단축을 밀어붙였고, 이 바람에 수많은 군인과 건설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주민·군인 노동력 마음대로 착취하는 '노예국가'


    김정은이 자신의 첫 대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마식령 스키장도 이런 식의 밀어붙이기 ‘속도전’으로 건설되었다. 2014년 1월 준공한 마식령 스키장은 북한 당국 스스로 ‘10년 걸릴 공사를 1년 안에 준공했다’고 선전하고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군인과 주민들이 고통을 받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야만적인 ‘속도전’ 건설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독재자가 북한의 군인들과 주민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노예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념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단순한 선출직 공무원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상 한반도 전체의 대통령이다. 따라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북한 주민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동포애와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확고한 신념, 공산주의에 맞서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뚜렷한 역사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독재자·민족반역자·인간도살자 앞에서 아부하면서 북한 인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언사를 거침없이 남겼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위치에 대한 자각이 없고, 분단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문재인 대통령의 ‘남쪽대통령’ 발언을 비롯, 집권기간 수많은 헌법 파괴 사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이념적 혼란상은 어쩌면 대한민국이 몸속에 들어온 좌파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거듭나기 위한 필연적인 고통의 과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귀순 의사' 밝힌 탈북자 강제북송한 文정부


    북한의 우리 공무원 총격살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도 여론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첫 대면보고(22일 오후 6시30분)를 받은 지 무려 32시간이 지난 24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문 대통령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자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3일 열린 유엔총회 종전선언 연설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피격사망 사실을 고의로 축소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의 대응과정을 놓고 국민들이 정부와 청와대에 분노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9년 11월7일, 탈북한 20대 북한 선원 두 명을 강제북송해놓고 은폐하려고 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당국은 당시 두 탈북선원이 분명하게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북한의 인도 요청을 받아들여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은 후 안대를 씌워 북송해버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북송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판문점에 도착했고, 군사분계선에서 북한군이 보이자 털썩 주저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치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이 철사로 손이 묶인 채 북으로 강제인도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일단 우리 땅을 밟은 이상 모든 북한 주민은 우리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자를 강제북송한 전례는 없었다. 이 두 청년 탈북자들은 북에 보내지는 순간 김정은에 의해 목숨이 읽을 것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반인권적 행태를 저질렀다는 데서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얼마 후 문재인 정부가 이들 선원 2명을 북송하기로 통보한 그날 김정은에게 부산에서 열리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방한 초청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북한에 의해 폭로되었다. 결국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귀한 두 생명을 김정은의 제물로 갖다 바친 것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 반인권·반인도적 작태는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양심이 살아있는 국가라면 반드시 이 범죄의 전말을 낱낱이 밝혀낼 의무가 있다. 반인권 범죄는 처벌 시효가 없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굳건한 한미·미일동맹을 훼손해가면서까지 저 사악한 북한 독재집단과 공동운명체가 되는 길을 걸어왔다. 이번 천인공노할 사건이 북한의 실체를 깨닫는 전화위복이 되어 취임 후 지금까지 대통령이 보여온 ‘북한 짝사랑’ 혹은 ‘미몽(迷夢)’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