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조치 필요 없었다… 남북군사합의 무관” 억지…“文대통령 유엔 연설 때까지 은폐” 소문도
  • ▲ 24일 오전 11시 국방부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한재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국방부 제공.
    ▲ 24일 오전 11시 국방부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한재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국방부 제공.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47세, 남)는 지난 21일 낮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됐다. A씨는 물살에 따라 북한 쪽으로 표류했다. 22일 오후 북한군 소속 수산기업소 단속정은 A씨를 그대로 바다에 띄워둔 채 5시간 넘게 심문한 뒤 사살했다. 그러고는 A씨 시신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여 바다에 방치했다. 이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는 군 당국은 “북한군이 설마 진짜 (A씨를) 죽일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군 당국 “남북군사합의에 자기 영역 들어온 사람 총 쏘지 말라는 조항 없다”

    국방부는 24일 오전 11시 이 같은 사실을 밝힌 뒤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그 직후 비공개 설명에서 군 관계자의 설명과 태도는 “국민이 적군에게 살해당해도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군대”로 보일 정도였다. 

    이날 국방부의 설명에 따르면, 군 당국은 대북감시자산으로 A씨가 북한군에 잡혀 심문받을 때부터 살해되고 시신을 훼손당할 때까지 지켜봤다. '군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A씨를 죽이고 불태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북한이 그렇게까지 나갈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고 답했다. 

    군 관계자는 또 “이번 사안(북한군의 A씨 살해 및 시신 훼손)은 북측 해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지 우리 영토나 영해가 위협받은 사항이 아니어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즉시 대응하는 사안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며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거나 군사적 대응조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 사건처럼 북한 영역 내에서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어도 군 당국은 나서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국민이 북한군에 살해당했는데…“군사적 대응 필요 없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영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우리 측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거듭 밝혔다. 이어 “북한군이 A씨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9.19남북군사합의 위반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군 관계자는 “완충구역에서 하지 못하는 것은 포병 사격”이라고 주장했다.
  • ▲ A씨가 실종 전에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씨가 실종 전에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9·19남북군사합의문에는 “남북 쌍방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해결하며,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규정,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는 무력 사용을 중단한다고 돼 있다.

    군 관계자는 “남북군사합의문 내용에는 자기 측에 넘어온 사람에 대해 사격하라, 하지 말라 그런 내용이 없다”며 북한군이 A씨를 즉결처형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을 ‘적대적 행위’로 해석하지 않았다. “A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시행됐다”는 직전 설명과도 배치되는 이야기였다.

    기자들 “국방부 은폐 시도 의심”… “문 대통령 유엔 연설 때까지 숨겼다” 소문도

    군 당국은 이날 비공개 설명을 마치면서 “대단히 신속한 분석과 보고”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22일 A씨 사망 당시 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상황을 보고받고, 23일 오전 1시에는 국가안보회의(NSC)까지 열렸음에도 이틀 넘게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서 신속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군 당국이 A씨가 북한군에 살해당한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3일 오후 언론은 국회발로 A씨 실종사건을 보도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A씨 ‘실종’ 사실만 확인해주고 그 외에는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비공개 설명도 거절했다. 24일에도 국방부 공식 성명이 국회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이런 정황을 두고 “여당이 국방부 성명문 결재까지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다른 지적도 나왔다. A씨가 북한군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상황을 군 당국이 파악했고, NSC까지 비상소집됐음에도 이 사건을 숨겼던 이유는 ‘종전선언’을 내세운 23일 새벽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때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급속히 확산했다.

    이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4일 "대통령의 유엔 연설 영상녹화는 15일이었다"며 "A씨 사건과 대통령 유엔 연설을 연결짓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