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천주교 공산화되는 것, 두고 볼 수 없어" 가족 만류 뿌리치고 결행… 26일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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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와 천주교가 공산화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단식 농성을 벌이던 강남수씨가 단식 24일째인 지난 22일 끝내 숨졌다. ⓒ뉴데일리 DB
    "대통령 잘못으로 계속 나라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한국 천주교회가 하루 하루 좌경화되는 것을 보고,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이 몸이라도 주님께 바쳐 도와달라는 간절한 기도다."

    지난 22일 항년 87세로 세상을 떠난 고(故) 강남수 씨가 생전에 드리던 단식기도다. 

    강씨는 "(일부) 정치사제들로 인해 가톨릭교회가 공산혁명기지로 변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소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화곡2동성당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강씨는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24일째인 4월22일 숨을 거뒀다. 

    천주교 5대 집안에서 태어나 경찰공무원 근무… "나라가 잘못되고 있다"

    1934년 3월20일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에서 태어난 강씨는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부터 천주교를 믿어온 순교자 집안의 5대손이다. 강씨는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3~86년 24년간 경찰공무원으로 일했다. 강씨가 단식농성하던 화곡2동성당은 그가 교적(敎籍)을 두고 40년간 다닌 곳이다. 

    강씨의 장남 태민 씨는 강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한 이유와 관련 "아버지가 현재 나라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경제·교 모두 잘못되고 있다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운을 뗐다. 

    태민 씨는 "아버지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유별났다"며 "집안이 5대째 천주교를 믿는데, 아버지께서는 더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주님과 약속했다. 단식기도를 하며 나라가 온전하게 바로서고 천주교가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처음 강씨의 단식농성 계획을 들었을 때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고 한다. 태민 씨는 "지난 3월 말께 가족회의 당시 단식기도를 주님께 약속했고, 나라를 위한 것이니 이해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식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며 "그러나 워낙 고집이 완강해 만류할 상황이 아니었고, 처음에는 3~4일 단식하시다 고통스러우면 철회하실 것으로 생각해 시작하시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들 만류에도 나라 걱정뿐… "이제 내 목숨 바칠 때 됐다"

    장녀 미예 씨는 "(단식을) 처음부터 말렸다. 1년 전부터 아버지가 단식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아버지는 사람은 다 죽을 때가 있는데 무의미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며 '이제 내가 목숨을 바칠 때가 됐다'고 말씀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 ▲ 서울 양천구 홍익병원 내 마련된 고 강남수 씨 빈소 모습이다. ⓒ뉴데일리 DB
    ▲ 서울 양천구 홍익병원 내 마련된 고 강남수 씨 빈소 모습이다. ⓒ뉴데일리 DB
    18일간 성당에서 단식하다 건강이 쇠약진 강씨는 이후 집에서 옮겨 단식을 이어갔다. 

    태민 씨는 "18일째 되던 날 아버지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 앞에서 너무 완강하게 거부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냥 집으로 모시고 왔다"며 "집에 오신 지 3일 후 이대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그 때도 아버지가 손을 휘저으며 치료를 안 받겠다 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때가 됐다며,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느냐는 말씀까지 하셔서 아버지 말씀대로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하고 집으로 모셔왔다. 그렇게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강씨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강씨가 단식기간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이었다고 한다. 성당에서 단식투쟁하는 동안 낮에는 딸이, 밤에는 아들이 자리를 지킨 것 외에는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태민 씨는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하지 무슨 쇼냐고 했다"며 "아버지도 단식기간에 1000명 정도 되는 신도 중 단식 현장을 찾아오는 분들이 1%도 되지 않는 것에 많이 실망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당에 대해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이 나라가 이렇게 사랑이 없고 인간미가 없는 나라가 됐나 하는 생각에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냉대와 무관심이 가장 힘들었다… "이 나라와 천주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

    단식 14일째 되던 지난 12일 저녁, 강씨는 손주 성국 씨에게도 이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본지가 입수한 육성 녹음에서 강씨는 "나는 조금도 형식적이거나 개인적인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에게 약속했고, 단식 7일째 세상을 뜰 줄 알았는데 14일째까지 살아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목표가 있어서 목숨을 내놓고 하는 건데 사람들이 덮어놓고 주정뱅이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단식하는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는다"면서 "당신들이 나한테 하는 행동이 단식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기서 조용히 주님께 이 나라와 천주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 이계성 회장은 "성당하고 의를 상하니 유가족들은 말을 꺼려하겠지만, 이건 그분에 대한 예우는커녕 벌레 보듯 한 것 아니냐"며 "내가 봐도 빈소에 손님이나 목사님은 와도 신부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천주교가 변해가는 것을 고쳐달라고 순수함으로 기도한 분에게 사랑이 아닌 미움, 용서 대신 증오, 화해 대신 갈등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해당 성당 측은 외부 인사들이 고 강남수 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원래 23일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강씨의 장례미사가 당일 아침 갑자기 오전 9시로 앞당겨졌다.

    강씨의 발인은 오는 26일 진행된다. 이후 그가 단식농성했던 화곡2동성당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강남성모병원으로 운구된다. 유족들은 강씨의 뜻에 따라 시신을 기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