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지키려고 그런 것” 영화 '대부'의 두목은 절규하지만… 살인자는 살인자다
  • ▲ 법원은 지난 27일 새벽 조국(54·사진)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뉴데일리 DB
    ▲ 법원은 지난 27일 새벽 조국(54·사진)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뉴데일리 DB
    사회주의자 조국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죄질이 좋지 않음'이라는 판단과 '직권을 남용한 결과 법치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는 의견을 결정문에 명시했으면서도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어 기각했단다. 청와대는 검찰이 무리한 판단을 한 것이 증명되었다며 즉시 환영 의사를 밝혔다.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이니 필리버스터니 하며 연일 시끄럽더니 연동형 비례 선거법과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 법이 30일 강행통과됐다.

    집권한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방과 반대에 대해서는 입을 막고 죄를 씌워 잡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눈물과 감성으로 호소하면 '민식이법' 같은 법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해보였다.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들은 현재의 권력이 영원하길 바랄 것이다.

    그들도 인류문명의 진보나 세계평화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인정할 것이다. 예컨대 안보와 법치, 경제와 교육을 열심히 무너뜨리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과 자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탄을 받아도 상관없다. 오물을 뒤집어쓴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긁어모은 재산, 그렇게 쌓아올린 권력,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뒤집어놓은 법의 체제 안에서 자식들만은 누구의 손가락질도 받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자식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만인의 추앙을 받으며 합법적으로 당당히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주려는 것이다.

    1947년, 가족과 조직의 권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불법과 살인을 저질러온 아버지의 뒤를 이은 마이클 콜리오네('대부' 1편). 그는 내부의 적은 물론 친형을 죽이면서까지 조직의 존립과 세력의 확장을 다졌다('대부' 2편).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79년을 배경으로 한 3편에서는 마피아 가족이란 오명을 씻고 자식들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려고 사업을 합법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마약과 도박 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자선재단을 만들어 종교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과거의 죄를 지우려 애를 쓰지만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거짓에 속아 환호해도 깡패는 깡패이고, 마피아는 마피아이고, 살인자는 살인자인 것이다.

    마이클은 인생을 돌아본다. 아내를 배신했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고 직접 살인을 저질렀으며 살인을 명령했다고, 무엇보다 친형까지 죽였다고 고해성사를 하던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토록 나쁜 일들을 했으니 고통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제는 신의 이름으로 그의 죄를 사해준다. 그러나 사제는 말한다. "변하는 것은 없다"고. 그가 지은 죄는 어디로도 가지 않으며 죽어서는 구원이 있을지 몰라도 현생에서는 지은대로 고통 받을 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러나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다.

    자기 세계에서 최고의 힘을 갖게 된 사람은 멈춰 설 줄 모른다. 천 길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면서도 추락할 리 없다고 확신한다. 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미 신이라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 체제가 보편화된 현대에도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권력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아무리 폼 잡고 으쓱거려봐야 힘없는 이들을 협박하고 갈취하는 동네 양아치, 나약한 사람들을 병들게 해서 부와 세력을 쌓아가는 마피아와 다를 바 없다.

    마이클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딸을 끌어안고서야 세상이 뜻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소리도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던 마이클의 비극은 다른 누구의 탓이 아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던 순간 예정된 슬픔, 언제 올지는 몰랐지만 영원히 실현되지 않기를 바랐던 악몽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감독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얻은 행복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가슴을 찢어놓는 것으로 그 빚을 갚게 한다는 것을.

    사회주의자 전 법무부장관 조국의 일부 죄목들은 그도 자식을 아끼는 한 아버지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2017년 3월 10일, 헌재에서 파면이란 말장난으로 불법 탄핵이 자행된 순간, 자유 대한민국의 법치를 죽이고 정권을 거머쥔 남자 또한 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철부지 아들이 잘 되길, 시집 간 딸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아버지였다. 핵 만들고 미사일 쏘는 것이 취미인 평양의 한 젊은 사내도 고모부와 친형까지 죽였다지만 아직 어린 꼬마들의 재롱에 웃음 짓는 다정한 아빠일 것이다. 병역비리 의혹으로부터 아들을 지키려는 서울시장의 부성애도 그렇게 생각하면 눈물겨울 노릇이다. 미국에 유학 중이라는 딸이 값비싼 명품들을 몸에 두르고 즐거워하는 사진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반미를 외치던 청와대 전 비서실장 또한 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돈 벌어 부쳐야 하는 아버지였다. 죄질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편 무죄, 반대편 유죄 원칙에 입각, 영장을 기각시켜야만 하는 판사라고 다르겠는가. 그렇게 해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고, 그래야 자식에게 더 맛있는 것, 더 비싸고 더 근사한 것들을 사줄 수 있다고 믿는 부모의 심정이라면 애잔하지 않을 것도 없다.

    “난 평생 험한 세상에서 내 가족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왔다"며 자신을 변호하던 마피아 두목 마이클의 외침은 거짓이 아니다. 부와 성공, 명예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를 위한 부정한 노력은 개인의 성취는 물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갈 후손들의 안전과 번영을 지키려는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다.

    누구나 제 자식은 귀하다. 무시무시한 악당일지라도 대개는 제 새끼 이쁜 줄은 안다. 그런데 내 새끼 귀하다 수선 떠는 사람일수록 다른 생명 귀한 줄은 모른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의 자살이 줄을 잇든 말든 그들은 절대로 신경 쓰지 않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새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은 없다. 그들의 자식들이, 그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이 대대손손 무탈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남의 고통쯤이야, 남의 자식의 눈물쯤이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찮은 국민들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희생일 뿐, 그렇게 무지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제 자식들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여는 문턱에 서 있다. 죄 없는 사람들은 가두고, 감옥 보낼 사람들의 구속영장은 매번 기각되고, 아이들에게는 공산화 교육이 자행되고, 원자력발전소는 차례차례 꺼지는 나라. 성한 데 하나 없이 풍랑 속을 떠도는 난파선 신세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이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마이클 콜리오네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전철을 그들이 똑같이 밟을 리야 없겠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뿌린 씨앗은 반드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무성한 번식의 시기가 지나면 추락과 사멸의 계절이 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좀 더디게 흐른다고 느껴질 뿐, 겨울 가면 눈 녹고 꽃 피는 봄은 반드시 온다. 그러니 절망스럽더라도 희망은 놓지 않기를.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소설가 김규나 (장편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