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도, 연금도, 정년대책도 없이 덜컥…‘단계적 모병제’ 민주연구원 보고서 논란
  • ▲ 더불어민주당의 씽크탱크 민주연구원이 7일 공개한 모병제 추진 보고서. ⓒ민주연구원 홈페이지 캡쳐.
    ▲ 더불어민주당의 씽크탱크 민주연구원이 7일 공개한 모병제 추진 보고서. ⓒ민주연구원 홈페이지 캡쳐.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2025년부터 단계적 모병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이 소식을 접한 예비역 장성과 군사전문가들은 “전면적인 모병제로 전환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우므로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성급한 모병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與 민주연구원 “2030년 되면 병사 30만 명도 못 채워”

    민주연구원 측은 7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분단 상황 속 정예강군 실현을 위한 단계적 모병제 전환 필요’라는 보고서에서 “2025년부터 징집 대상 인원이 부족해지고, 2033년부터는 병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모병제 전환은 필수”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현재 국방개혁 계획대로 병사 30만 명, 복무기간 18개월을 유지해도 시간이 지나면 군에 입대할 사람 자체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징집 대상자는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100만 명에서 76만8000명으로 줄어든다. 2028년에는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된다. 2030년에서 2040년 사이에는 징집 대상자가 70만8000명에서 46만5000명으로 줄어든다.

    보고서는 이어 “앞으로는 군대를 병력 수 중심이 아니라 전력의 질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무기간이 짧은 징병제에서는 첨단무기 운용 능력을 숙련하기 어렵고, 전투력 또한 떨어진다며 “장기복무 정예 병력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해·공군과 특수부대일수록 이런 문제가 심각하므로 모병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모병제를 실시해 병사 18만 명을 감축하면, 20대 남성 취업연령이 줄어들어 경제적 이익이 커지고, 모병제 자체로도 수십만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16조5000억원의 국내총생산(GDP)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민주연구원은 그러나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필요한 재원 마련이나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지급할 급여·정년·연금제도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세계일보는 이날 민주연구원의 모병제 검토를 전하면서 “병사 월급 300만원의 직업군인제”라고 설명했다.
  • ▲ 북한이 2017년 4월 원산 지역에서 실시한 자주포 사격 훈련.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이 2017년 4월 원산 지역에서 실시한 자주포 사격 훈련.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호 “모병제와 병력 감축은 일반론, 한국은 특수상황”

    김진호 재향군인회장(학군 2기·예비역 대장)은 “일반론적으로는 기술 중심의 군대 육성과 이를 위한 모병제 실시가 맞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한반도는 지금 휴전선 양쪽으로 100만 대군이 서로 대치 중인 대단히 특수한 상황이어서 전면적인 모병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상황은 만에 하나 북한의 침공이 있을 경우 수도권을 빼앗기면 지게 되는 형국이므로, 한미 연합군의 작전은 항상 수도권 바깥에서 적을 저지하도록 돼 있다”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병력, 그 중에서도 육군 병력”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남북 화해시대를 대비한다고 해도 병력 수는 중요하다”면서 “나중에 남북이 군축에 들어갈 때 분명히 양적 비례를 따질 것이기 때문에 병력 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광찬 “안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없이 모병제 시행하면 실패”

    안광찬 전 청와대 위기관리실(국가안보실의 전신) 실장(육사 25기·예비역 소장)은 “모병제 실시의 가장 핵심적인 바탕은 정신전력인데, 그건 빠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모병제를 실시해서 성공한 나라들을 보면 국가안보가 중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존재하고, 그 바탕 위에 군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나오고, 국가와 사회는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광찬 전 실장은 또한 전면적인 모병제에 들어갈 가용자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제도 개편으로 인한 부대비용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30만 명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개인당 300만원씩 월 9000억원, 연 10조8000억원이 소요되고, 이외에도 군인연금이나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한데 계산을 했느냐는 지적이다. 참고로 2019년 정부의 군인연금 재정지원금은 2조7000억원에 달했다. 2018년 정부의 군인연금 충당부채(장기간 내줘야 할 연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는 186조원이었다.

    안 전 실장은 이어 “우리나라가 만약 주변의 위협이 없는 나라라면 몰라도 현재 한반도를 둘러보면 전면적 모병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안 전 실장은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침범,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 일본과 갈등, 미국의 압박 등을 지적한 뒤 “북한을 상대로 하는, 세계 유일의 냉전 구도가 살아 있는 한반도에서 우리는 총력전 태세로 북한과 주변국에 맞서야 한다”며 “아무리 정치라지만 지나친 포퓰리즘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 ▲ 신종우 KODEF 사무국장은
    ▲ 신종우 KODEF 사무국장은 "군인을 하대하는 사회 분위기 또한 모병제 시행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3월 KBS의 한 연예프로그램이 소개한 미국의 군인 예우. ⓒKBS 관련방송 캡쳐.
    신현돈 “국민적 공감대 얻은 뒤 점진적 모병제부터”

    신현돈 전 육군 제1군사령관(육사 35기·예비역 대장)은 “오늘 발표된 것이 얼마나 구체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면서 “혹시 오늘 말한 계획이 전면적인 모병제가 아니라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모병제 추진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 전 사령관은 “만약 전면적 모병제를 목표로 한다면 고려해야 할 사안이 대단히 많다”고 지적했다. 모병제의 근본은 임무 수행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책임감이 투철한 직업군인을 육성하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 군대문화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신 전 사령관은 “최근 우리나라에 인구절벽이 닥쳐오고 병역자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정치권이 정말 모병제를 하고 싶다면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가운데 일어날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 전문가 문근식·신종우 “불합리한 현행 제도부터 바꾼 뒤 모병제 하자”

    문근식 국방안보포럼(KODEF) 대외협력국장(해사 35기·예비역 대령)은 “장기적으로는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시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국장은 “모병제는 군인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제고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모병제라는 것이 그저 군인들에게 월급 많이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월급이 많다고 군에 지원할 사람이 많지 않을 수 있다며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모병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문 국장 역시 모병제를 통한 첨단기술 군대로의 전환에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그는 “현재 한국군은 6·25전쟁의 경험에 따라 육군의 비중이 큰데 이를 육·해·공군 간 비율을 맞춘다고 한다면 결국 자리싸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면서 “이처럼 모병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 전에 사회에서 다양한 논의와 제도 전환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모병제 논란이 불거지자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모병제 논란이 불거지자 "당에서는 총선 공약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는 '모병제 추진'을 환영한다는 논평이 나온 뒤였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종우 KODEF 사무국장도 “인구절벽이나 첨단기술군 육성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모병제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현행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모병제는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국장은 계급별로 존재하는 정년문제를 비롯해 군인을 평생직업으로 삼았을 때 병사에서 부사관으로, 부사관에서 장교로의 진급이 사실상 불가능해 미래 비전이 없다는 점, 현재 군인들도 겪는 잦은 이사와 이로 인한 교육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모병제를 한다고 과연 사람들이 지원할지, 이들이 얼마나 복무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 “모병제? 검토한 적도 없다” 이인영 “검토 예정도 아니다”

    한편 국방부는 민주연구원의 ‘모병제 도입’ 주장에 대해 “그런 주제는 검토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군사적 필요성을 먼저 검토한 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우리나라는 전장 환경, 일정 수준의 군 병력 유지 필요성, 국민 통합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징병제를 채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총선공약용 모병제’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은 꼬리 자르기를 하는 모습이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이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병제 이야기가 나오자 “당 차원에서 정리가 안 된 이야기다. 아직 검토 예정이라고 말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 의장 또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