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MB 뇌물 혐의' 관련 변호인 질문 뺀 사법공조 인정… 16개월 만에 항소심 마무리
  •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가 내년 2월께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허점이 발견돼 국제사법공조가 개시된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미국 사법당국의 회신이 오는 대로 집중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재판부는 기존 방침을 바꿔 변호인 측의 사실조회 요청 내용을 제외한 검찰 측의 '일방적인' 국제사법공조 진행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앞선 기일에서 '무기대등의 원칙'을 고려해 에이킨검프에 보낼 국제사법공조 사실조회안에 변호인 측의 요청 내용을 포함하라고 했으나, 검찰은 이 가운데 검찰 측 요청 내용과 취지가 일치하는 내용만 선별해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1일 오전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공판을 열고 "미국 사법당국과의 국제사법공조 사실조회 회신이 11월 말 내지는 12월 중순까지 도착하는 경우에는 가능한 한 내년 2월 중순까지 최종 선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진행할 것"이라며 "회신안이 법원에 제출되면 일주일에 두세 번의 집중심리로 공판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法 "MB 항소심 내년 2월 선고"

    항소심 선고가 내년 2월 이뤄진다면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은 16개월 만에 끝을 맺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지난해 10월 접수됐지만, 공소사실이 20개에 이르고 검찰의 증거기록이 10만 쪽을 넘는 데다 항소심 재판부가 두 번이나 변경되면서 1년 가까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5월에는 검찰이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로부터 에이킨검프가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에 다스 소송비를 실비로 청구한 인보이스를 넘겨받고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국제사법공조 논의가 시작됐고, 또 다시 재판이 지연됐다. 

    검찰은 기존에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프로젝트M'이라는 계약을 하고 매월 12만5000달러씩 정액으로 지급한 총 67억원 상당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이 전달된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고,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뇌물공여자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자금지원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진술해 제3자뇌물죄 적용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권익위의 인보이스를 제시하며 51억원 상당의 뇌물 혐의를 추가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새로운 공소사실이 '매월 12만5000달러씩 정액을 지원받아 다스 소송비로 썼다'는 기존 검찰 주장과, '소송비로 쓰고 남은 돈을 돌려받으려 했다'는 김백준·이학수 두 핵심 증인의 진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의문을 품고 검찰에 미국과 국제사법공조를 지시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흔들리는 만큼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주체인 에이킨검프에 직접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국제사법공조 회신을 기다려야 하는 삼성 뇌물수수 건 이외에 기타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사실별로 유무죄 판단을 위한 재판부의 최종 합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삼성 뇌물수수 건 이외의 기타사건에 대해서는 지난 6월 이미 쟁점별 변론이 모두 종료된 바 있다"고도 말했다.

    뇌물 혐의 밝힐 국제사법공조, '검찰 측 질문'만 한다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는 국제사법공조의 진행이 검찰의 '입증활동' 내에 있다며 변호인 측의 사실조회 요청 내용을 제외한 검찰 측의 국제사법공조 진행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앞선 기일에서는 '무기대응의 원칙'상 국제사법공조에 변호인단의 질의사항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돌연 태도를 바꿨다. 재판부는 대신 변호인단의 요청 내용은 개별적인 질의를 통해 입증하라는 내용의 석명준비명령을 내렸다. 

    국제사법공조를 앞두고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인보이스 내용만을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과, 기존 공소사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이 대립했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주장도 타당하다며 검찰에 변호인단의 질의 내용도 포함시킨 국제사법공조 사실조회안을 만들어 지난 7일까지 재판부에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변호인단의 질의 내용을 누락시킬 경우 무기대응의 원칙에 따라 재판부가 변호인단의 의견을 포함시켜 사법공조를 진행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기존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단의 질문 내용은 대부분 누락시킨 채, 지난 4일 추가 공소사실에 대한 내용만으로 법무부에 국제사법공조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7일 재판부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검찰이 변호인단의 요청사항을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이 검찰의 기존 요청사항과 취지가 일치하는 내용만을 포함시켰다고 의견서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며 "이는 기존 공소사실에 대한 질의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변호인단의 요청을 사실상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MB, 검찰 주장 김석한 접견시간에 부시 만나"

    공판에서는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제출한 추가 증거 채택 여부에 대한 공방도 이어졌다. "청와대를 방문한 김석한 변호사와 함께 이 전 대통령을 접견하여 삼성의 자금지원 내용을 보고했고, 이 전 대통령은 밝은 미소로 승인했다"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진술을 뒤집는 내용이다.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은 원심 유죄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증거는 김석한 변호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시각 이 전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며 찍은 사진으로, 촬영시간이 기록돼 있어 김석한 변호사 접견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야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변호인단이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증거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 측은 "증거로 제출된 사진자료는 전직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야만 열람할 수 있는 지정기록물이 아니고, 누구나 신청만 하면 열람할 수 있는 일반기록물로 분류된 것"이라며 "검찰도 신청만 하면 열람할 수 있는데 뭔가 오해를 하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