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직격③ "중국압송악법 철회 선언은, 중국 공권력 개입 위한 명분 쌓기"
  • ▲ 8월 31일 시위에 등장한 미국 건국당시 성조기ⓒ허동혁
    ▲ 8월 31일 시위에 등장한 미국 건국당시 성조기ⓒ허동혁
    일명 ‘중국압송악법’이라 불리는 홍콩의 ‘도주범조례’ 파동 관련, 캐리 람 행정장관은 4일 담화와 5일 기자회견을 통회 법안 철회를 정식 발표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과 민주파 의원들은 “이미 늦었다” “작전상 후퇴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 시민들은 더 화가 난 듯, 람 장관의 담화가 발표된 직후인 4일 밤 몽콕(旺角) 경찰서와 포람(寶琳) 역에서 전날보다 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에게서 ‘도주범조례 철회’를 얻어냈다는 승리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담화 후 시민들 더 화나


    담화 직후 필자는 9명의 민주파 의원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타냐 찬(陳淑莊) 의원(공민당, 재선) “(요구에 대한 대가가) 너무 작고, 너무 늦었다(too little, too late)”

    제레미 탐(譚文豪) 의원(공민당, 초선) “Too little, too late. 5대 요구사항(중국압송악법 철회, 시위 구속자에 대한 전원 사면,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정부의 시위에 대한 폭동 규정 철회, 행정장관 및 입법회 의원 완전 직선제 실시) 가운데 겨우 법안 철회만 이뤄졌다. 철회는 3개월 전에 이뤄졌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다른 요구사항도 수용돼야 한다.”

    람츅팅(林卓廷) 의원(민주당, 초선, 윤롱(元朗) 폭력배 시민구타사건 당시 피습) “Too little, too late. 경찰의 지난 두 달간의 폭압으로 인해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페르난도 청(張超雄) 의원(공당 工黨, 3선) “Too little, too late. 람 장관은 지난 3개월간 뭘 한 것인가? 3개월 전에 철회했으면 많은 사람을 만족시켰을 것이다.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 ▲ 민주파 의원 단체인터뷰 장면ⓒ허동혁
    ▲ 민주파 의원 단체인터뷰 장면ⓒ허동혁
    우치와이 민주당 주석 “시위 계속되면 람 장관이 법안 철회 구실로 긴급법 발동할 수도”

    우치와이(胡志偉) 의원(민주당 주석, 재선) “람 장관의 법안철회 선언은 위장전술이다. 담화를 들어보면 경찰의 폭력 남용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민심 안정을 노리고 법안 철회를 선언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간 자살 8명, 실명 3명, 경찰연행자 1000여 명, 기소자 100여 명이 발생했고, 폭력배와 경찰이 무고한 지하철 탑승객들을 구타했으며, 부상자 수는 셀 수도 없다.

    우리 민주당은 람 장관의 철회 선언이 중국이 홍콩기본법(헌법)의 긴급법(긴급정황규례조례)을 발동해서 홍콩 사태에 개입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철회했는데도 시위가 계속된다는 구실을 만드는 사전작업일 수 있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홍콩을 장악하려 든다면 이는 홍콩의 고도 자치를 보장한 일국양제의 손상을 의미한다. 우리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길 빈다.”

    앨빈 융(楊岳橋) 의원(공민당, 재선) “법안 철회가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 철회로 우선 명분을 만들고, 중국이 주장하는 소위 색깔혁명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법을 발동할지도 모른다. 정의와 자유에의 길은 아직 멀었다.”

    제임스 토(涂謹申) 의원(민주당, 8선) “Too little, too late. 만약 중국이 람 장관을 향후 사퇴시키고 독립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킬 의도를 갖고 있다면, 법안 철회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찰즈 목(莫乃光) 의원(공공전업연맹 公共專業聯盟, 재선) “Too little too late. 법안 철회로 주목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시도로 보이고,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시위를 계속하면 긴급법이 발동될까 걱정된다.”

    테드 후이(許智峯) 의원(민주당, 초선) “Too little too late. 이미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으며, 기소자들은 8~10년간 감옥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나머지 4개 요구사항 관철과 자유를 위해 홍콩 시민에게 계속 투쟁할 것을 호소할 것이다.”

    이같이 민주파 의원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too little, too late”이라며 람 장관의 법안 철회가 작전상 후퇴라고 의심했다. 지난 6월15일 법안 잠정중단 선언과 4일의 철회 선언 과정을 보면 람 장관의 담화 직전 정부 인사와 친중파 의원들이 장관 공관으로 찾아갔으며, 담화 후에는 중국 정부의 지지선언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중국과 사전합의 없이 람 장관이 철회 선언을 했다면 중국 정부의 반응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 ▲ 시위 도중 지하철 매표기 모습. 시위대의 이동편의를 위해 현금이 놓여져 있다. ⓒ허동혁
    ▲ 시위 도중 지하철 매표기 모습. 시위대의 이동편의를 위해 현금이 놓여져 있다. ⓒ허동혁
    친중파이지만 시위 전부터 중국압송악법을 반대했던 마이클 티엔(田北辰) 의원과 역시 간간이 반대의견을 표명해온 펠릭스 청(鍾國斌) 의원은 홍콩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부는 경찰에 대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 “이제 와서 법안 철회? 소용없어”


    시민들의 반응은 더 냉담했다. 시위 선봉대인 용무파(勇武派)의 한 멤버는 “람 장관은 법안을 철회하면 시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와 민주를 원한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간섭을 중지하면 우리도 중국에 대항하는 것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 시위대는 “이제 와서 법안 철회는 의미가 없다. 람 장관이 설치하겠다는 반독립 조사기구도 소용없다. 폭력배와 경찰이 지하철 내에서 시민들을 구타한 사건을 조사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자신의 성을 쳉(鄭)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람 장관은 전혀 소용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사태의 진정을 노린 것 같지만, 이미 너무 많은 시민과 경찰이 고통을 겪어, 이를 치유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 ▲ 9월 2일 행정장관 집무실 앞의 용무파 (勇武派). 용무파는 시위 최전선 조직을 일컫는다.ⓒ허동혁
    ▲ 9월 2일 행정장관 집무실 앞의 용무파 (勇武派). 용무파는 시위 최전선 조직을 일컫는다.ⓒ허동혁
    람 장관 담화, 경찰의 폭력성과 불공정성에 대한 해명 전혀 없어

    8월31일에는 경찰이 프린스에드워드역 지하철 내에서 시위와 무관한 탑승객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버스에 탑승한 시위대를 끌어내리는 일도 있었다. 또한 최근 홍콩 지하철(MTR)이 시위 부근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경찰이 역사에 진입하는 일이 잦아지자 이에 불만을 가진 시위대가 지하철역을 파괴하는 일도 늘어났다.

    9월2일에는 몽콕경찰서 앞에서 쓰러진 여성 시위자와 그를 치료하던 구호대에게 경찰이 최루 스프레이와 최루탄을 연달아 발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 시위자는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 또한 비슷한 시각 부근에서 시위대를 비난하던 중국인과 시위대 간에 싸움이 벌어졌으나 경찰이 시위대만 연행해간 적도 있었다. 중국인은 이 과정에서 한 기자를 폭행했고, 기자들이 경찰에 격렬하게 항의하자 경찰은 결국 이 중국인을 연행했다.

    이런 경찰의 불공정성에 대해 람 장관은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 철회 선언에도시민들의 불만은 계속 고조되고 있다. 지난 주말 시위에서는 물대포가 처음으로 사용되고, 경찰이 민주파 의원 3명과 2014년 우산시위 리더 죠슈아 웡(黃之鋒)을 비롯한 정치인 7명을 연행하여 공포 분위기 조성을 시도했다. 그러나 용무파가 주도하는 시위대가 전보다 더 오래 경찰과 대치하는 등 시민들의 의지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한 용무파 멤버는 “이번 주말 시민들의 불만을 사는 한 공공시설을 공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결국 중국군 무력 개입 없이 일단 법안 철회

    한편 중국 정부는 그간 벌인 무력시위에도 일단 법안 철회를 용인했다. 이에 대해 제임스 토(涂謹申) 의원은 “국제사회는 인민해방군의 무력개입을 일국양제의 파괴로 인식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무력개입이 가져오는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한 후 중국의 국가전략상 홍콩의 독자지위를 보장하는 현명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계속)
  • ▲ 9월 2일 행정장관 집무실 앞의 용무파 (勇武派). 용무파는 시위 최전선 조직을 일컫는다.ⓒ허동혁
    홍콩시위 주요 상황 발생시 뉴데일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실시중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 드립니다.

    ▶ 뉴데일리TV 홍콩시위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