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동북아 균형자론' 판박이… "중·러는 한국 무시, 한일관계 무너진 판에" 우려
  •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한국 외교의 목표 정체성으로 '교량국가'를 제시했다.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과거 중재만 자처하다 실패한 외교정책으로 평가받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북아의 신(新)냉전 분위기 속에서 일본과 북·중·러를 연결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다. (이는) 평화·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 정신"이라며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기존에 내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의 역할과 범위를 동북아로 확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에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하고,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 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듯, 2005년 노무현 정부도 '자주성'을 강조했다. 과거 우리가 종속적 변수였던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우리의 역할을 찾아 나가자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외교전략이다.

    하지만 당시 균형자론이 나오자, 동북아 평화협력의 당사자들인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북한도 강력히 비난했다. 결국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간과한 무모한 정책이라는 대내외적 비판 속에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동북아철도공동체, 비핵화·대북제재 안 풀려 '지지부진'

    교량국가로 나아가려면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협력의 기반을 넓히고 동북아시아철도공동체로 다자협력, 다자안보의 초석을 놓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문제는 비핵화 없이는 풀릴 수 없는 대북제재다.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미국의 견해는 분명하다. 정부는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에 합의하고도 건설자재를 반입할 경우 대북제재를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워킹그룹을 구성해 남북협력과 관련한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수시로 협의한다.

    북한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지난달 28일 대남선전매체 '메아리'는 우리 정부가 '동아시아철도공동체'와 '남북접경위원회'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잠꼬대 같은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결국 눈앞에 있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교량국가론의 선결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게 대부분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은 중거리핵전력폐기협정(INF) 탈퇴 직후인 3일 아시아 동맹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뜻을 천명했다. 심화하는 미중 무역갈등 상황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한다.

    "잠꼬대 같은 헛소리" 북한도 비난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담기지 않은 동북아의 냉혹한 질서를 언급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15일 논평을 통해 "북한은 미국과 '직거래'를 하고 미국 역시 동맹이 '무색하게' 한국을 외면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대놓고' 한국을 무시하고 있고, 아픈 역사를 딛고 어렵게 선린우호를 쌓아온 한일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제관계나 현실의 통치는 낭만적 이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경제 현실과 산업현장,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와 전략에 대한 냉철한 이해와 통찰을 기반으로 치밀한 계획과 실천력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문대통령이나 운동권 집권세력들에겐 결여된 역량인 듯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