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과 협상학(34)… 영리한 척 보다 차라리 우둔한 척하는 것이 더 도움 된다
  • 우리의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차갑다. “인도적 지원은 부차적인 문제이니 남측은 근본문제를 해결하라”며 한미훈련 등을 비난하고 있다. 미일과 인도와의 찰떡공조 속 대척점에 있는 중국의 눈치까지 보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난제이다. 연초부터 중러 와 밀착하고 있는 김정은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쯤 되면 우리정부가 북핵 협상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가장 취약한 입장에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핵에 직접 노출된 입장이니 불가피한 점도 있다.

    이럴 때 ‘협상의 법칙’으로 유명한 허브 코헨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방안으로 영리한 척 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둔한 척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역설적인 조언을 한다. 한 예로서 일본기업 구매단의 사례를 들었다. 상대는 미국의 대기업. 2시간에 걸친 미국 기업의 자신만만한 설명 뒤 일본 구매단의 질문은 딱 하나였다. “그래서 무슨 뜻이죠? 한 번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약한 영어를 무기 삼아 잘모르겠다며 상대가 전력으로 설명한 제안과 가격을 무너뜨렸다. 한 번 더 이해시켜달라며 계속 물어보며 원하는 가격으로 협상을 마쳤다. 실제 일본 구매단은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너무나 자신만만한 미국 기업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영어를 잘모르는 척하며 약간 우둔한 모습으로 상대의 진을 빼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협상 현실이다.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북한의 기세, 한국에는 FTA 재협상 성공, 주한미군 방위비도 원하는 대로 돈을 더내게 했다고 자랑하는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결국 가장 많은 돈을 내는 것은 우리나라이다. 북한을 돕고 미국에도 돈을 더 내고 있다. 낼 돈 다 내며 대접도 제대로 못받는다면 굳이 나서거나 똑똑한 척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이나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더 노력해야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허브코헨의 조언을 활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협상 성공을 이끌어내는 방안이 될 것이다.

    먼저 4차 남북정상회담이나 3차 미북회담 성사에 촉진자 역할을 하며 마음 상하는 소리를 듣는 것 보다 상대가 관심사에 대해, 앞서 사례의 일본 기업인처럼, 묻고 또 묻는  협상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즉 북한이 이야기하는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북한에 ‘그게 무슨 뜻이죠?’라며 질문하면 답이 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해석하지 말고 물어야한다. 상대는 답답해 하면서도 답을 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협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둔해 보일지라도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군사훈련의 불가피성, UN의 대북제재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남북 모두 UN 회원국으로서 남은 지원 방법은 인도주의밖에 없는 점, 심지어 남한 내에서도 반발이 큰 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알릴 수 있다. 협상의 목표 즉 비핵화만 생각하며 바보스럽다는 비난도 참아야 한다. ‘유도의 되치기’처럼 상대의 공세를 이용하면 힘이 약한 사람도 이길 수 있다고 협상학의 대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낼 돈 다 내며,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계속 나서는 협상은 더 우둔해 보일 수 있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