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항소심] 檢, "뇌물대리인, 에이킨검프→김석한" 바꿨지만 공소사실 유지 어려워
  •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변경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원칙 위배로,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선 뇌물수수 주체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재판부의 지적을 받았다. 특히 삼성 뇌물수수의 경우, 뇌물수수 주체에 대한 공소사실 유지가 사실상 어려워져 '제3자 뇌물수수'가 적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이 공소사실을 변경할 경우 공소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인 데다,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재판부 "에이킨검프, MB 대리인 아냐"…검찰 '제3자 뇌물수수' 입증해야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16일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4차 공판에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앞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 김인겸)가 "삼성이 에이킨검프(Akin Gump)에 지급한 돈이 '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1심 기록 어디에도 없다"며 검찰에 의견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삼성이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금액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보고 뇌물수수로 기소했다. 그런데 뇌물수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전 대통령이 본인 명의 또는 차명으로 된 계좌로 직접 뇌물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받은 경우에는 그 사람이 사자(使者·심부름을 한 자) 또는 대리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에이킨검프를 이 전 대통령의 사자 또는 대리인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견해다. 검찰이 재판부의 이 같은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를 '뇌물수수'에서 '제3자 뇌물수수'로 변경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제3자 뇌물수수가 될 경우 검찰은 '구체적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를 추가로 입증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된다.

    검찰은 4차 공판에서 "해외 유수의 유명 로펌(에이킨검프) 계좌를 이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하는 '차명계좌'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으로서는 에이킨검프의 계좌를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의미의 일종의 '차명계좌'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檢 "대리인은 김석한" vs 변호인 "증거나 직접 진술 없어"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 변호인측은 "검찰의 추측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변호인측은 본지에 "삼성이 에이킨검프 계좌를 이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로 생각했다는 것은 검찰의 추측에 불과하다"며 "설령 검찰의 주장대로 삼성이 차명계좌로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생각만으로 에이킨검프의 계좌가 이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계좌의 차명 여부를 가리는 데는 엄격한 입증 요건이 필요하다는 게 변호인측의 설명이다.
  • ▲ 검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검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검찰은 이 자리에서 "에이킨검프의 김석한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또는 대리인에 해당한다"며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것이 직접 뇌물수수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김석한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또는 대리인이라는 증거나 직접 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에이킨검프가 받은 돈을 김석한 변호사가 받은 돈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로펌은 엄연히 다른 법적 주체라는 것이다.

    변호인측은 검찰의 주장이 사실관계에서도 많은 허점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을 인용해 "김석한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을 만나 '이학수 전 부회장이 에이킨검프 소송비용에 일정금액을 추가해줄 테니 대통령을 도와주는 데 쓰라고 했다'고 보고했다"며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송금한 자금은 이 전 대통령을 위한 것으로서 이 전 대통령에게 사용수익권이 귀속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MB-김석한 만난 시기' 김백준 진술 '허위'…"주장 사실관계도 허점"

    변호인측은 이 같은 검찰의 주장에 "김백준 전 기획관의 해당 진술은 객관적 증거에 의해 이미 허위진술임이 밝혀졌다"고 반박했다. 김백준 전 기획관은 김석한 변호사가 2008년 3월과 4월 두 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이 전 대통령을 만나 해당 보고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김석한 변호사의 청와대 출입기록을 살펴보면 그 시간 대통령은 다른 일정을 소화해 접견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측은 이어 "검찰이 김백준 전 기획관의 허위진술마저도 또 한 번 왜곡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에이킨검프 소송비용에 일정금액을 추가해줄 테니 대통령을 도와주는 데 쓰라고 했다"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진술을 검찰이 "실제 삼성그룹에서는 김석한 변호사에게 월 5만 달러의 자문료를 지급하던 상황에서 추가로 월 12만5000달러를 지급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은 명백한 왜곡이라는 것이다.

    변호인측은 "검찰 주장은 에이킨검프의 다스 소송비용 5만 달러에 추가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으로 12만5000달러를 지급한 것이라는 의미"라며 "그러나 5만 달러는 다스나 이 전 대통령과는 상관없이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정상적 거래 대가로 지급한 것인데, 검찰이 아무런 입증이나 설명 없이 이를 다스 소송비용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16일 열린 4차 항소심 공판은 김성우 다스 전 사장이 출석한 가운데 다스 실소유 및 비자금 횡령 등에 관한 증인신문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이 출석하지 않음에 따라 30여분 만에 재판이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