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소요 고교무상교육' 내년 2학기 추진 '무리수'... 총선 때문인가?
  • ▲ 유은혜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데일리DB
    ▲ 유은혜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데일리DB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고교 무상교육' 도입시기를 '내년 2학기'로 못박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무상교육 추진을 위한 연간 2조원 규모의 재원 확보 대책은 물론, 구체적 정책 수립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모양새 탓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고교 무상교육'이 2020년부터 단계적 도입될 예정인데, 유 장관이 6개월가량 앞당겨 시행하려는 것은 정치적 '저의(底意)'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유 장관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세수가 늘어 무상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정 등을 통해 안정적 재원 확보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교 무상교육 추진' 의사를 거듭 주장했다. 지난 3일 취임식과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교 무상교육' 추진 의사를 밝힌 데 또다시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유 장관은 "고교 무상교육은 장관 지명 전부터 청와대 및 당과 교감한 내용"이라며 "재원 마련 논란도 있지만 기재부와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해결하겠다"고 했었다.

    '고교 무상교육'은 모든 국공립 고교생의 입학금과 수업료, 교과서비 등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 2022년 전면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 장관이 취임사에서 "이를 앞당길 것"이라는 방침을 내비친 것이다.

    현재 서울 일반 국공립 고등학교 기준으로 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연간 교육비는 약 182만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 15만원 정도이다. 국내 고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전체 무상교육을 실시하려면 연간 약 2조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도입이 추진됐으나 끝내 무산됐던 이유다.

    ◇연간 2조원 규모 예산 로드맵 없어…유 장관 복안은 세금 인상?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정부 예산 로드맵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국회통과 법정시한은 12월 2일이다. 내년 정책 시행이 가능하려면 두 달 안에 국회가 합의해 관련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야 한다. 고교 무상교육을 명문화하기 위한 법령 개정도 필요하다.

    유 장관은 현재 배정된 교부금 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교부금은 중앙정부가 지방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돈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해 내국세 총액의 20.27%로 규정하고 있다. 세수가 늘면 교부금도 늘어나게 되는데 교부금 비율을 올린다는 말은 쉽게 말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 ▲ 정부세종청사에 위치한 교육부 전경.ⓒ뉴데일리DB
    ▲ 정부세종청사에 위치한 교육부 전경.ⓒ뉴데일리DB

    그러나 기획재정부(기재부)는 교부금 비율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교육부가 기재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다른 복지수요는 증가 추세여서 교육재정을 늘리기 어렵다는 게 기재부 측이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포퓰리즘' '총선용' '허물 덮기' 등 정치적 '저의(底意)' 지적

    정치권과 교육계에서는 고교 무상교육 도입시기를 2020년 1학기에서 2019년 2학기로 '한 학기' 앞당기는 것에 부정적 견해가 우세하다. 불과 '6개월'을 앞당겨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불투명하고, 교육 현장에 혼란이 온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임기 1년 짜리 장관이 향후 정치적 계산을 놓고 '인기영합식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냐',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 아니냐'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치적을 쌓을려는 것 아니냐' 등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교 무상교육은 원래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하기로 한 것인데 갑자기 (유 장관 취임 후) 왜 1년을 앞당기는 것인가. 고교 무상교육 시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재원인데 국회 원내대표 간 예산 협의를 하지도 않고 장관이 시행하겠다고 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도 "고교 무상교육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내년에 하겠다는 유 장관의 추진 방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내년 정부 예산안을 다시 확보해도 다른 분야 예산을 깎아 가져와야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교육정책을 면밀한 계획없이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 교육 현장 혼선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라도 부처 간 엇박자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교육국민감시단 역시 4일 성명을 내고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고교 무상교육 실시를 빌미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율을 높일 생각부터 할 것이 아니라 방만한 교육재정 지출을 합리화하고 비효율적인 예산지출을 삭감하는 등 획기적인 교육재정 개혁의 계기로 삼기를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게다가 고교 무상교육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다. 무상교육이 이뤄질 경우 '국민 교육비 부담 저하'라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사교육 시장 과열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지난 2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학부모 대상 고교 무상교육 정책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학부모 2명 중 1명이 "무상교육이 이뤄지면 줄어든 교육비를 사교육에 쓸 계획"이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문항에 대해 월소득 100~199만원인 가구 응답 비율은 36%였던 반면, 월소득 400만원 이상에서는 50%가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한 학부모시민단체 관계자는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은 줄어든 교육비를 다시 투자해 사교육 열풍을 몰고올 것"이라며 "모두에게 공평한 보편적 복지를 빌미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부모 소득차에 따른 더 큰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