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벽에서 6~7m 떨어진 곳에 시신… 현장에 혈흔 없고 CCTV도 없다"는 주장의 팩트
  •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노 원내대표는 앞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공동취재단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노 원내대표는 앞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공동취재단
    ‘음모론’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심지어 ‘지구는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음모론의 산물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인간이 달에 갔다는 것조차 어떤 거대 세력의 조작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경우 음모론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암살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배후 음모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의 경우 2003년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죽음이 그렇다. 그의 사망을 두고 유력 매체에서 ‘타살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투신 자살을 두고서도 온갖 ‘음모론’이 떠돌고 있다. 핵심은 “노회찬 의원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당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노회찬 의원이 23일 오전 9시 38분쯤 서울 중구의 동생 부부 집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노회찬 의원이 타살당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노회찬이 타살이라는 명백한 이유 00가지’와 같은 글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투신 사망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 의원 투신 현장을 감싼 가림막이 바람에 날려 경찰 관계자들이 수습하고 있다.ⓒ이기룡 기자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투신 사망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노 의원 투신 현장을 감싼 가림막이 바람에 날려 경찰 관계자들이 수습하고 있다.ⓒ이기룡 기자
    건국대 두경부외과 이용식 교수의 주장

    건국대 두경부외과 이용식 교수는 한 인터넷 방송에 등장해 ‘노회찬 타살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교수는 2015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사망한 고 백남기 씨 죽음에 대해 “사람의 뼈는 수압으로 부서지지 않는다”면서 "경찰 물대포가 직접 사망 원인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 교수는 노회찬 의원의 경우 ”투신했으면 건물에서 1m 내외에 떨어져야 하는데 7~8m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것이 의아하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사지를 잡고 밖으로 던지는 외력이 개입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살아있는 사람이 투신하면 주변이 ‘피바다’가 되어야 하는데 피가 거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도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른 타살설의 내용도 대체로 이 교수 주장과 비슷하다. ‘노회찬 타살설’의 핵심은  ▲수직으로 낙하한 사람이 왜 건물 벽에서 6~7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느냐 하는 것과 ▲고층 건물에서 투신했는데 현장에 혈흔이 없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노 의원이 투신한 아파트는 CCTV가 없는 곳으로, '살해자가' 의도적으로 이런 곳을 골랐다는 추론도 있었다.

    노회찬 타살설에 등장하는 그 밖의 주장은 대부분 정치적인 분석이나 시나리오, 노 의원 개인의 심리 상황에 대한 추리를 동반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검증이 어렵다. 다만 타살설의 핵심을 이루는 ‘투신 현장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팩트 체크’가  가능한 부분이다. 수많은 투신 현장을 경험한 현직 경찰 간부 A씨를 통해 이 부분을 확인해 보았다. 

  •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투신 사망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8분께 아파트 현관 쪽에 노 대표가 숨진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이기룡 기자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투신 사망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8분께 아파트 현관 쪽에 노 대표가 숨진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이기룡 기자
    투신현장 많이 다뤄본 경찰 간부의 주장

    A씨는 수많은 투신 현장을 경험하며 사건을 직접 처리하고, 지휘한 경험이 있다. 그는 우선 "시신 낙하지점이 아파트 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투신하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발밑 직벽을 피해, 몸을 멀리 앞으로 던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총 18층인 아파트 높이와 공기저항을 감안하면, 투신 지점이 건축물 벽에서  6~7m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면서 “사고 현장 중에는 투신자의 시신이 노회찬 의원보다 더 먼 곳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시신 낙하지점이 통상적인 투신자살 현장보다 깨끗해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머리가 바닥에 부딪친 경우와, 팔다리가 먼저 부딪친 경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두부 골절의 경우엔 반경 1m 정도 흥건하게 피가 고이지만, 하체부터 떨어진 경우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다리부터 떨어지게 되면 골절이 심하게 발생해 뼈가 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흥건하게 피가 낭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8층 정도 높이라면 다리부터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고층에서 떨어지면 사방으로 혈흔이 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A씨는 “낙하시 돌출 부위에 걸려서 신체가 훼손된 경우라면 모를까, 실제로는 그렇게 피가 많이 비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게다가 요즘에는 감식반이 현장을 검사한 후, 흙으로 덮거나 물청소를 해서 현장을 깨끗하게 치워놓는다"고 덧붙였다.

    A씨는 노회찬 의원을 부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경찰 입장에서는 현장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최종 행적이 확인되지 않거나 하면 나중에 수사 책임 문제가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부검을 진행하려고 한다”면서 “노회찬 의원의 경우 그런 의심이 없었고, 유족이 모든 것을 확인해주면서 부검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이 투신한 아파트에 CCTV가 없다는 주장은 현장 확인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음모론’은 대중의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공개된 정보의 양이 불일치할 때 더욱 극성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 노회찬 의원 투신 사건의 경우 그의 마지막 행적에 대한 CCTV가 공개되지 않음으로서 음모론을 부채질 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