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중수부장 "원세훈이 기획… 盧 조서 열람후 서명, 영구보존문서로 남아 있어"
  • ▲ 2009년 7월 촬영된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9년 7월 촬영된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60세, 사법연수원 14기) 前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25일 입장문을 내고, 이른바 ‘논두렁 피아제 시계’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이인규 前대검 중수부장은 입장문을 통해 “(논두렁 피아제 시계와 관련) 노무현 前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남녀 시계 세트를 받았고, 이후 밖에 내다버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인규 前대검 중수부장이 밝힌 ‘논두렁 피아제 시계’는 2009년 4월 한 방송사가 ‘盧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피아제 손목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때 盧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검찰 관계자라는 이름의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보탰다”면서 “논두렁 시계 소설이 그 단적인 예”라며 ‘논두렁 피아제 시계’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인규 前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A4용지 4장 분량의 입장문을 배포, 당시 상황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검찰 수사 때 “2006년 9월경 盧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통해 (피아제 시계를) 전달했고, 2007년 봄쯤 청와대 관저에서 盧 전 대통령 부부와 만찬을 하면서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盧 전 대통령 또한 2009년 4월 30일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피아제)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계 수수 사실은 언론 보도 후에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검찰은 “그렇다면 피아제 시계를 증거물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盧 전 대통령은 “언론에 시계를 받은 사실이 보도된 후에 권양숙 여사가 밖에 내다버렸다”고 답변하며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前대검 중수부장은 “이 같은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됐고 조서로 작성됐다. 盧 전 대통령은 조서를 열람한 뒤 서명 날인했으며, 해당 조서는 영구보존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이 시가 1억 원 이상의 고가 시계를 받는 것은 뇌물수수죄로 기소되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 前중수부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 내용은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기 전까지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면서 “검찰은 盧 전 대통령 수사에 있어서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盧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보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검찰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前중수부장은 방송에서 ‘논두렁 피아제 시계’가 보도된 배후로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지목했다. 그는 “원 前원장이 제게 직원을 보낸 것 외에도 임채진 前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盧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9년 4월 22일 저녁 뉴스에서 ‘盧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됐을 때 “저는 그날 저녁 국회 전문위원, 행정안전부 차관, 다른 부처 고위 공무원 등 5명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도중 대검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받는 순간 원 前원장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동안 국정원의 행태가 생각나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려고 여러 경로를 통해 보도 경위를 확인했고, 4월 22일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해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며 “국정원의 행태와 보도 내용, 원 前원장과 방송국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해당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前중수부장은 ‘논두렁 피아제 시계’가 보도된 것이 검찰의 기획이라는 의혹을 거듭 부인하며 “저를 포함한 검찰 누구도 이 같은 보도를 의도적으로 계획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왜곡해 허위 보도를 하고 있어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설명 드린다”며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前중수부장은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조사를 요청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논두렁 피아제 시계’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