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안, 그러나 과장된 주장... 유사한 케이스 놓고 서로 다른 법원 심리
  • 30일 자정이 넘은 시각, 우파 논객으로 유명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이날 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범죄혐의가 소명됐고, 여러 정황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며, 피해자(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에 대한 위해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영장 발부 직후 미디어워치 측은 “대부분 공개된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무슨 증거인멸이냐”고 반박했다. 범죄 혐의 소명 부분도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미디워워치 측 입장이다.

    변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이름값을 높였다. 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파워 트위터리안', '우파 논객'으로 불렸다. 누리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언변과 '섹시한 글발'은, 청년 우파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적 여건과 맞물려 그의 존재감을 키우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SNS를 통해 확산된 그의 게시글은 매력적이었지만 다분히 자극적이거나 혹은 선동적이었다. 때론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그대로 SNS에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의 활동 영역이 대체로 온라인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초 만에 화제가 바뀌는 소셜미디어의 특성은, 그의 허물을 쉽게 덮었다. 자연스럽게, 그가 글로 곤욕을 치른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의혹' 지속적으로 제기

    변 대표는 2016년 연말 탄핵정국 이후, 지속적으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을 제기했다. 손석희 사장이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문제의 태블릿PC를 입수한 뒤, 그 내용을 조작해 왜곡된 보도를 내보냈다는 것이 의혹의 요지다.

    변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종로구 평창동 고급빌라 단지에 위치한 손석희 사장의 자택 인근에서 잇따라 집회를 열면서, 조작보도 의혹의 진상규명과 손 사장의 자기 고백을 촉구했다. 그의 집회는 손 사장 부인이 다니는 성당 앞에서도 열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손석희 사장이 조작보도 의혹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살해 당할 수 있다”며, 손 사장에 대한 신변보호를 경찰에 요구했다. 의혹 제기는 끝이 없었다.

    처음 JTBC 보도 조작 의혹으로 시작된 그의 공세는 손 사장 개인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MBC 평사원 월급을 받던 손 사장이 시가 20억원을 넘는 저택을 구입한 경위', '손 사장 아들의 군 운전병 특혜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말은 거칠어졌고, 단정적 표현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직접 본 변희대 대표는 모든 신경을 '손석희 의혹'에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그날도 그는 평창동 손 사장의 집 인근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태블릿PC 조작 보도, 호화저택 구입, 아들 군 특혜 의혹 등을 제기했다. 그의 모습은 확신에 차 있었다.

    탄핵정국의 뇌관이 된 '최순실 태블릿PC' 관련 JTBC 보도가 처음부터 조작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그의 주장은 나름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 근거는 모순되게도 지난 23일 최순실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A연구관은, '최순실 태블릿PC'에 문서 수정 기능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해당 PC에 JTBC가 대용량 앱을 설치해 작업을 한 사실도 확인해 줬다. 다만 그는 JTBC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첫 단추가 된 태블릿PC 보도는 처음부터 오보라는 결론에 이른다. '문서 수정 기능'이 없는 테블릿으로 연설문을 고쳤다는 건 보도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남긴다.

    ◆문서 수정기능 없는데 연설문 고쳤다?

    당시 JTBC는 최순실이 해당 태블릿을 사용해 박 전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을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증언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JTBC 보도는 명백한 오보일 뿐만 아니라, 뒤이은 관련 기사 역시 근본적인 하자를 안게 된다.

    주의·주장의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팩트 체킹'에 합리적 주의를 기울였다면, 설사 그 표현이 다소 선정적이거나 과장됐어도 면책한다는 것이 명예훼손 사건을 다루는 기본 법리다.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는 비율이 극히 낮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언론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고 그 내용을 공개하며 추가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변 대표가 손석희 사장의 자택이나 손 사장 배우자가 다니는 성당  앞에서 집회를 연 것은,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의 요건은 될 수 있어도, 인신 구속 사유는 아니다. 영장전담부장판사가 밝힌 '피해자 위해 가능성' 역시, 같은 이유에서 구속의 사유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런 사정을 종합한다면, 변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비판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변 대표 영장 발부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은, 과거 주진우 시사인 기자 사건을 예로 들면서, 법원의 오락가락한 기준을 지적하기도 한다.

    주진우 기자는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에 박지만씨가 연루됐다는 내용의 의혹 보도를 내보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 건과 별도로 주 기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 했을 때, 독일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 유족들로부터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 당했다.

    수사 과정에서 주 기자의 주장과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3년 5월,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엄상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주씨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엄 부장판사는 “언론 자유의 한계가 주로 다뤄진 사건”이라며, 언론의 자유 보장이 개개인의 권익보다 앞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의견을 제공하기 위해 이뤄지는 언론 활동은, 중대한 헌법적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언론 자유 보장이 개인의 권익보다 앞선다

    주 기자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글은 자주 필화를 일으켰다. 그 즈음 그는 위 기사와 발언 말고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산이 10조원을 넘는다', '박근혜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을 위해 1억5천만원을 들여 굿판을 벌였다' 등의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로 검찰과 법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그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남긴 말, “기자로서 열심히 했는데 죄가 된다면 벌을 받겠다. 시대가 아직 이 정도”라는 표현은 아직도 기자들 사이에 회자된다.

    적용 혐의가 다를 뿐,  변 대표와 주 기자의 영장 청구는 그 내용과 전개 과정, 이유 등에 있어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본업인 기사가 아닌 '입'으로 사고를 친 점도 같다. 차이는 법원의 심리 결과다. 5년 만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법원의 시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면, 변 대표 영장 발부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