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보도에 "기사 쓸 게 없구나 느꼈다" 비판하며 한국일보는 칭찬… 정권초 언론 길들이기 전철 따라하나
  • ▲ 청와대 관계자가 9일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뉴데일리 DB
    ▲ 청와대 관계자가 9일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뉴데일리 DB
    청와대가 〈조선일보〉와 3일째 공방을 이어가는 등 최근 언론과 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정권 초 '언론 줄세우기'를 하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과거 전례를 볼 때 결과가 좋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조선일보의 보도와 관련해 "기사 쓸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변인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해서) 제가 '실패한 로비다'라는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설명 드렸는데,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고 생각한다"며 "그걸 물고 늘어지면서 기사를 쓰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선임행정관과 관련해서는) 만일 대통령의 복심이었다면 정말 큰일났겠다 싶다"며 "기사의 구성과 내용을 보면 행정관에 불과한 인물이 조윤제 주미대사를 움직이고 장하성 정책실장도 움직이고 다 움직인 꼴이 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일표씨의 부인인 장 모씨에 대해서도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정당하게 국가 비용으로 연구를 갔다 왔다"며 "부인이 학기 재학중에 구 소장이 주최하는 일종의 파티를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는 영상통화로 구재회와 말한 기억이 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기사는 〈조선일보〉1면과 5면에 각각 실린 내용이다. 1면에는 김기식 금융원장 내정자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예산 3000여만원으로 9박 10일 미국·유럽 시찰에 나선 것을 두고 외유성 출장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실패한 로비"라고 말한 대목이 인용했다.

    5면에서는 〈홍일표 '한미硏 불투명 운영' 문제 삼더니… 아내는 한미硏 국비연수 다녀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선임행정관의 아내 장 모씨가 작년 3월부터 1년 간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서 방문 연구원을 했으며, 고위공무원인 장 씨가 방문연구원으로 선정되는 과정에 남편인 홍 행정관이 구재회 USKI 소장과 한 차례 통화했다고도 적었다.

    이 보도는 앞서 청와대 관계자가 지난 7일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배경을 설명하면서 "USKI를 다녀온 유력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바람막이가 돼서 엄청난 압력을 국회에 넣어온 게 지난 역사"라고 말한 뒤여서 파장이 컸다.

    지난 7일 조선일보는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을 오는 6월부터 중단키로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이날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상의드리지 않았다"면서도 "제가 대변인으로서 그 정돈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취재할 때 가장 기본 적인 것이 기초적 취재가 아니겠느냐"며 "한미연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동안 뭘했는지, 가장 근접하기 쉬운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그런 기초적인 것은 빠뜨리면서 취재하고 기사쓰는 방식도 유감"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의 특정 기자 이름을 언급하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특정 언론을 거론해가며 '줄세우기'를 한 셈이다.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며칠 전에도 있었다. 지난 4일〈중앙일보〉 기사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중앙일보 기사는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박사를 비롯, 여러 외교 전문가들이 자리를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의겸 대변인은 "다 하나로 묶어서 청와대 등쌀에 의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건, 결국 청와대 책임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는 이전 정권들과 비교할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8년 3월 9일 밤 11시에 일어난 '물컵 투척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은 중앙일보 서소문 사옥 21일 사장실을 찾아 "정권에 비판적인 중앙일보 보도태도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이제 야당이 아닌 집권당인데 계속 이렇게 섭섭하게 할 수 있느냐, 내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엉터리로 쓴다"고 했다. 나아가 분을 이기지 못한 박 전 수석이 유리 물잔을 바닥에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정부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과 사이가 틀어져, 이후 김대중 정부는 전 언론사 세무조사 등의 카드로 압박했지만 되레 임기 말 아들들이 구속되는 과정에서 언론의 공격을 강하게 받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

    박근헤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초인 지난 2013년,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 파문에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이후 최순실 사태가 발생하며 탄핵사태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처럼 지난 사례가 비극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는 기세등등한 청와대의 행태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 대변인은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라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면서 본인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은 불치병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장 수석 대변인은 "가히 폭압적 보수말살 정권"이라며 "전임정권의 블랙리스트를 그토록 집요하게 수사하고 단죄했던 검찰은 '문재인판(版) 블랙리스트'에 대해 청와대의 강요와 권력남용이 없었는지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