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를 이루어 휩쓸고 다니는 공포와 강제력은 ‘진보’아닌 또 하나의 억압
  • 강 이사도 지난 11일 본지 통화에서 "KBS 이사회 사무국이 정한 사용 지침에 따라 매달 100만원 한도 내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며, "감사원 감사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용했다"고 소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원이 (이사 해임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무리하게 감사를 벌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 닷컴 12/27)

    강 이사란 명지대 교수이자 KBS 이사였던 강규형 씨를 말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언론노동조합 KBS 지부 조직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그들은 구(舊) 여당이 추천한 이사들에 대한 축출운동을 벌였다. 갖가지 괴롭힘이 있었다고 강 이사는 전하곤 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그걸 더 이상 견뎌낼 재간이 없어 자진사퇴 했다. 그러나 강규형 이사는 엄청난 인내력과 투지로 끝까지 버텨냈다.

    정권과 감사원과 방통위 그리고 언론운동가들은 그런 그를
    업무추진비 '부당지출' 운운하며 기어이 몰아내고야 말았다.
    업무추진비 문제는 후에 다시 따지고 해명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법도 행정도 ‘혁명적’ 상황의 일부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5. 16, 유신, 신군부 때 어떻게 혁명, 숙정, 정화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와장창 직장에서 쫓겨났는가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건 공포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러더니 이제는 정반대의 다른 종류의 공포가 휘몰아치면서 탈권(奪權)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부문과 반관반민 부문에서 권력의 혁명적 접수(接受)가 진행되고 있다.
    이 혁명적 접수가 장차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반대쪽의 힘이 거의 제로 상태란 점에서 아마도 끝까지 폭주할 것 같다.

    권력이 바뀌고, 역사관이 바뀌고, 국가진로가 바뀌고, 체제가 바뀌고,
    기존 안보체제가 무너지고 한국이 전혀 낯선 나라로 바뀌고
    그 전까지의 ‘모든 한국’은 폐기물로 바뀔지도 모른다.
    ‘1948년의 대한민국’은 과연 더 이상 지속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판이다.

    강규형 이사는 외유내강의 꼿꼿 선비다.
    그의 일신이 지금 얼마나 괴로울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그러나 그의 정신만은 여전히 영롱할 것이다.
    그는 꺾일지언정 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비이면서 투사다.
    그는 지식인이고 지성인이며 철학할 줄 아는(philosophieren) 사람이고
    미학(美學)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속류 떼거지 꾼들과는 견줄 수 없는 사람이다.
    강 교수는 그만큼 버텼으면 됐으니 이젠 푹 쉬었으면 한다.

    어려운 계절이다.
    ‘진보’가 잡은 계절이니 역사의 새벽이라 자임할 것이다.
    그러나 떼를 이루어 휩쓸고 다니는 공포와 강제력은
    ‘진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억압이다.
    억압은 우(右)에만 있는 게 아라 죄(左)에도 있다.
    강규형 교수--당신은 외롭지 않습니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12/27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