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개편안 못정한 민주당 상대로 개헌 카드 압박할 듯
  •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자유한국당이 내년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를 압박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맞서 2018년 12월 31일 개헌 카드를 꺼내며 맞불을 놓았다.

    제왕적 대통령제 철폐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해가는 동시에, 당내에서 홍준표 대표와 대주주(大株主)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 간의 조정이 이뤄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3일 당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은 대한민국 전체 구조를 바꾸는 (지방선거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라며 "지방선거 후에 연말까지 개헌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같은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헌특위와 정개특위를 6개월 연장하고 개헌의지가 확고한 소수정예로 개헌특위를 구성해 2018년 12월 31일까지 개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당은 2018년 12월 31일까지 개헌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것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한국당이 개헌 시점을 일(日) 단위까지 못박고 나온 것은 민주당의 공세와 관련해 홍준표 대표가 갖고 있는 원초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홍준표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2일 '헌법개정에 대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입장'을 내놓으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상생과 타협의 정치로 바꾸겠다"며 "개헌 국민투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동시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던 적이 있다.

    이처럼 대선공약을 했었기 때문에 '말바꾸기' '약속파기' 비판에 직면하기 된 것인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애초의 공약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지방선거 때에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것이므로, 이에 어긋나는 개헌안이 발의된다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개헌 시점이 6월 13일에서 12월 31일로 뒤로 미뤄지려는 조짐이 보이는 것에는 민주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개헌안을 동시투표하자고 하면서도, 어떤 개헌안을 투표에 부치자는 것인지는 말을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권력구조를 논의한 개헌 의원총회에서도 세 가지 정부형태에 대한 발제만 있었을 뿐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김종민안(案)·최인호안·이종걸안이 발제됐는데, 이 중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 의지가 뚜렷한 것은 이종걸案 뿐이었다.

    대통령이 내각임면권을 여전히 보유하는데도 국회의 불신임권 없이 대통령만 일방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지는 김종민案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되레 강화하는 시대역행이고, 최인호案은 인사권·예산권의 국회통제 강화와 감사권의 국회이관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측면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식 순수대통령제라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이 중 어떤 안을 당론으로 할 것인지 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국당에 개헌 시점을 압박하는 것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정부형태는 개헌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라며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정부를 갖는 것은 국민의 권리"라고 했는데, 백미이자 하이라이트가 빠져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결국 민주당의 시한 압박은 국회 개헌특위를 해산하기 위한 '꼼수'이며, 이미 시사한대로 권력구조를 제외한 개헌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하려는 수순으로 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반대하는 것을 놓고, 개헌 자체에 소극적인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져왔다.

    이 대목은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간의 잠재적 갈등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김무성 전 대표는 개헌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줄곧 오스트리아식 대통령직선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의 개헌론은 오랜 정치 경험으로부터 나온 소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를 계속하기 위한 명분이기도 하다"며 "총선 불출마에 이어 대선 불출마까지 천명했던 김무성 대표가 정치를 계속하려면 권력구조의 변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2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총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개헌으로 가면 번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토로했다.

    김무성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성태 원내대표도 지난 5일 시국토크콘서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하는 개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가 우리 한국당이 대단히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서 개헌을 달리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인 홍준표 대표와, 개헌론자인 김무성 전 대표 및 그 측근 의원들 사이에서 개헌 추진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 수도 있는 구조였는데 "내년 12월 31일까지 개헌"을 못박음으로써 양자 간의 절충이 이뤄진 분위기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대표 사이에는 현재 정치적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며 "개헌 문제를 비롯해 당분간 두 대표가 당내 협치(協治)를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당내의 잠재적 갈등 요소를 정리한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는 "내년 12월 31일까지 개헌" 입장으로 '수평개헌론'을 부르짖는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과 국민의당 일각까지 포섭을 시도하면서, 6·13 지방선거 동시투표론을 주장하는 민주당에 앞으로도 강하게 맞설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민주당이 동시투표의 가장 중요한 논거로 내세우는 1227억 원 국민투표 비용론을 향해서도 홍준표 대표는 "국민투표 비용이 얼마라면서 졸속 개헌을 하려고 한다"고 일축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신고리 원전 건설이 중단되고 수천억 원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야기됐는데, 개헌 비용 천억 원을 아끼자고 동시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 현실적인가"라고 조소했다.

    실제로도 개헌 조기 실시의 명분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조속한 청산 등이 아닌, 고작 돈 문제를 내세우는 것은 민주당의 논리가 그만큼 궁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뀐 뒤,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지난해 4·13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전 대표는 이와 관련 "그런 민주주의 비용은 얼마든지 대도 된다"며 "민주주의 발전을 단순논리로 생각하고 경비를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