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文정권 외교·안보정책 날선 비판… 왜?

문재인정권 외교·안보 파탄 직감… 정치적 존재감 재구축 나섰나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0.19 14:21:45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7월 1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교대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문재인정권의 외교·안보정책에 날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외교·안보 무능으로 나라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외교 대통령'의 우국충정의 발현인지, 아니면 이를 넘어서 깊은 정치적 복안이 깔려 있는 것인지 정치권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6일 한국안보문제연구소(이사장 김희상)가 주최한 비공개 강연에서 현 정권의 △4대 강국 대사 인선 △전시작전권 탈취 추진 △대화 구걸과 사드 배치에 대한 유보적 태도 등 대북 저자세 정책 등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총장은 현 정권이 친문(친문재인) 인사인 더불어민주당 노영민 전 의원을 주중대사에 임명하는 등 4강 대사직을 마치 전리품 다루듯 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처럼 국력이 뒷받침되는 강대국은 부동산업자가 대사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며 "영어도 현지어도 안 되면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한미연합사로부터 전시작전권을 빼앗아오려는 시도와 관련해서도 "미군이 (다른 국가 사령관이 지휘하는)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에 돈은 내도, 병사는 한 명도 보내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전작권 전환 추진은 시기적으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미군 대장이 사령관, 우리군 대장이 부사령관으로 보임돼 있는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전작권이 탈취될 경우,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우리의 지휘권 아래로 원군을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내외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와 맥을 같이 하는 답변이었다는 분석이다.

현 정권의 계속되는 '대화 구걸' 등 대북 저자세 대응과 관련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친 언사에는 반대하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결기를 보일 때는 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이런 마당에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개탄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범(汎)보수 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됐지만, 이른바 '문빠(문재인 후보의 극렬 지지 조직)'들의 네거티브성 '가짜 뉴스' 유포와 흑색선전·음해모략에 직면해 대권 캠페인에서 하차해야만 했다.

이후 문재인정권이 들어서자 반기문 전 총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관계는 초창기에 잠시 훈풍(薰風)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공식방문에 앞서 반기문 전 총장을 청와대로 초빙해 자문을 받았고, 반기문 전 총장도 성심성의껏 자문에 응했다.

6월 2일 회동 당시 두 사람은 예정된 시간인 70분을 한참 넘겨 2시간 가까이 회동하며 방미 전략에 관해 머리를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총장 덕분에 6월말 미국 순방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감격해 8월초 서울성모병원의 어린이 환자들을 찾았을 때, 외교관이 장래희망이라는 아동에게 "반기문 총장은 롤모델로 삼으라"고 덕담하기도 했다.

이렇듯 훈풍이 불던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지난달이다.

지난달 유엔총회 예방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금 반기문 전 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이날 회동은 6월 2일의 회동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일찍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전작권 탈취 추진, 대북 저자세 대응 등에 '쓴소리'를 하는 바람에 회동이 일찍 끝났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유엔총회에 가서 '촛불혁명'을 자랑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반기문 전 총장이 만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총회연설에서 '촛불혁명'을 자랑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여기서부터 틀어졌던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올해 1월말 기자간담회에서 사드 배치 철회 등을 부르짖는 '촛불집회'를 가리켜 "광장의 민심이 초기의 순수한 뜻보다는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다"며 "다른 요구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 면은 경계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더라도, 북핵 위기가 심각한 와중에 유엔총회에 가서 자랑거리도 아닌 '촛불혁명'을 운운하겠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반기문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2차 회동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18일 환태평양육군참모총장회의 기조연설에서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카드가 남아 있지 않을 경우 우리는 군사옵션을 포함한 모든 결과에 직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러한 강경한 목소리를 여과없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출범 약 반년간 문재인정권이 취해온 외교·안보정책의 파탄으로 미루어볼 때, 정권의 '이른 실패'를 직감하고 반기문 전 총장이 '정치적 존재감'을 재구축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반기문 전 총장은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윤리위원장으로 위촉되면서 '문빠'들의 극렬했던 도덕성 관련 '네거티브 공세'로부터 국제적으로 면책을 공인받았기 때문에, 정치적인 기지개를 켜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정권의 경착륙(硬着陸)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보수 진영에는 아직 이렇다할 대항마가 없는 상황"이라며 "반기문 전 총장이 잇단 발언을 통해 현 정권의 정책에 날을 세우는 것은 정치적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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