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唯二 총리 두 번 지낸 JP의 의중은?… 김종인? 손학규?
  • ▲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헌정사상 유이(唯二)하게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한 김종필 전 총리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자로 특정인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필 전 총리(JP)는 9일 서울 청구동 자택에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정우택 의원 등 충청권 중진의원들을 접견해 "지금 위기 관리가 가장 중요한데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내각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 밖에 안 보인다"고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인선은 표류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해 지난 8일 국회를 방문,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에서 총리 후보자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작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던 야당은 총리 후보자 추천은 도외시한 채 '거리의 정치'를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발(發) 국정 공백 사태는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위기 국면이다.

    애초에 지명했던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친노(親盧) 전력이 있는데도, 이미 패권친문화된 민주당은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설령 정진석 원내대표의 예견대로 야당이 오는 12일 '민중총궐기' 이후 협상테이블로 복귀해 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여야 3당의 뜻이 한 인물에게로 모일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꼬일대로 꼬인 정국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특정인을 거론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종필 전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국무총리를 두 차례 지낸 인물 두 명 중의 한 명이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제11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한 팀이 돼 제31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어려운 정치 상황 속에서 두 차례 모두 총리를 훌륭하게 역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1대 총리를 지낼 때에는 1972년의 10월 유신과 이듬해 제1차 오일쇼크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겹친 상황에서 정치·경제적 안정에 힘을 쏟았다. 제31대 총리를 지낼 때에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도 IMF 구제금융 사태의 조기 극복을 이뤄냈다.

    두 차례 모두 'JP 이후'와 비교해보면 이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1975년 12월 김종필 전 총리가 총리직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유신 체제'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각종 부패와 비리 스캔들이 꼬리를 물었고, 그 결과 유신정권은 1978년 10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후에는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제명해 부산과 마산에서의 '부마 항쟁'을 자초하는 등 소요가 잇따르면서 '유신 체제'는 종말의 길로 치달아갔다.

  • ▲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2000년 1월 김종필 전 총리가 총리를 내려놓은 뒤도 마찬가지였다. 김종필 전 총리가 물러나자 그 해 6월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치러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중치 못한 대북(對北) 정책으로 폭주했다. 결국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파동으로 자민련과 연립이 파탄났고, 이후에는 3남 김홍걸 씨 등이 연루된 '홍삼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권은 사실상 끝장났다.

    지금 맞이한 내우외환의 국면을 고려할 때 김종필 전 총리의 지혜와 경륜이 절실한 시점에서, 언행이 신중하기로 정평 있는 김종필 전 총리가 특정인의 실명을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자로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일단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한 나머지 한 인물인 고건 전 총리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고건 전 총리는 김영삼정부 말기 '김현철 게이트'로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6%까지 추락하는 상황 속에서 총리를 맡아 국정을 붙들었으며, 노무현정권 초기에는 사상 초유의 탄핵 의거(義擧)가 일어나자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아본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총리 후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9일 김종필 전 총리가 언급한 인물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전날 김종필 전 총리가 언급한 인물의 이름이 자신의 입으로 전해질 경우, 여당발(發) 후보자로 분류돼 낙마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지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도 "비밀"이라며 끝내 침묵을 지켰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김종필 전 총리가 언급한 인물을 놓고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로 추측을 압축해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새누리당 중진의원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내각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 밖에 안 보인다'는 말씀이 사실이라면, 김종필 총리께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연륜 있는 정치인일 것"이라며 "연륜이나 정치 경험 등으로 보면 김종인 대표나 손학규 대표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새누리당 의원은 "그분(JP)의 깊은 뜻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면서도 "지금 총리 자리는 굉장한 정치적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에 비(非)정치인이 내각을 장악해 위기를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친문(親文)들이 밀고 있다는 박승 총재나 한완상·안경환 교수 같은 관료나 학자 출신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긍지'를 높이 평가하셨다고 하니, 내각제 개헌이 지론인 김종필 총리가 내각제를 일관해서 주장하는 김종인 대표를 높이 평가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의 엉망진창인 당무 운영으로 총선 패배가 뻔했던 민주당을 수습해 선거를 치러낸 것으로 볼 때, 위기관리능력과 내각장악능력은 있다고 보지 않았겠는가"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