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중 첫 방문 역사, 대(對)이란 세일즈 외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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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핵(核)무장을 해제한 이란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만약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성사되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첫 이란 방문이 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이란 방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방문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정연국 대변인은 "추가적인 것이 확정되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란은 서방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3일 이란의 경제제재 해제 후 주요국 정상 중 가장 먼저 이란을 방문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가장 큰 목적은 원유(原油) 확보였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원유 수출국이자 최대 교역국으로 꼽힌다. 시진핑 주석은 이란 방문을 통해 양국 간 교역 규모를 향후 10년 안에 연간 6,000억 달러(약 720조원)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는 2014년 양국 교역액(520억 달러)의 약 11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이번에 체결한 협약에는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구축과 관련한 내용도 다수 들어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란 테헤란~마쉬하드 구간 고속철도 건설에 금융 지원을 제공키로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상반기 중 이란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이란 대통령의 방문 요청에 응하는 형태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이전에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하면 1978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총리 이후 현직 총리로는 38년 만의 이란 방문이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아베 총리와 로하니 대통령의 회담을 염두에 두고 관계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했다.

     

  • ▲ 이란 경제제재 해제를 알리는 존 케리 美 국무장관. ⓒYTN 방송 화면
    ▲ 이란 경제제재 해제를 알리는 존 케리 美 국무장관. ⓒYTN 방송 화면

     

    국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 "지난해 우리 수출이 0.4% 성장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는데 이번에 열리는 이란 시장을 뚫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한다"고 밝혔다.

    경제활성화에 관심이 높은 새누리당의 다른 의원들도 이란 시장 개방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정책에 무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핵(北核) 문제를 이유로 한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원유를 수입하는 등 교류관계를 유지해 왔다. 일부 기업들은 제재 국면 속에서도 현지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이란 측에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우리 정부는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란 방문시 로하니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원유 확보와 우리 기업의 이란 진출 지원 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경제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란이 미국 등 주변국과의 협의를 통해 핵(核)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로 다시 나왔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방문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대략 4~5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친(先親)인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수차례 이란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었다. 한국과 이란은 1971년 8월 16일 외교관계를 체결했다. 당시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8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팔레비 국왕 방한(訪韓) 초청도 있었다. 이에 팔레비 국왕은 "정세가 안정되는데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는 붕괴됐고 같은 해 한국에서도 10.26과 12.12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