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가로질러 선거구를 재편한다? "한강 넘어 성동구와 강남구를 합치는 꼴"
  •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유력한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1안. 무안·신안은 목포와 합쳐져 재편되고, 영암·장흥·강진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유력한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1안. 무안·신안은 목포와 합쳐져 재편되고, 영암·장흥·강진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원유철 원내대표·이학재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김태년 정개특위 간사가 참석한 가운데 24일 열린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관련 7차 담판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됐다.

    양당 최고위 지도부와 국회의장은 27일에도 만나 8차 담판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일곱 차례에 걸친 이전의 '담판'이 성과는 고사하고 이견을 좁히는 것조차 실패해 이제 '담판'이라는 결연한 단어를 쓰기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지난해 7월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엿새 뒤에는 모든 국회의원선거구가 사라지는 미증유의 헌법적 공백이 예고된 상황이다. 지난 15일부터 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출마 예정자들도 국회의원 선거구가 사라지면 선거운동이 불가능해진다. 자칫 내년 4·13 총선의 정당성 자체를 선거무효소송으로 가려봐야 하는 심각한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이처럼 여야 현역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수 확정도 못하고 있는 주제에, 정치권 곳곳에서는 언젠가는 합의가 된다는 전제 하에 선거구 획정에 관한 뒷공작만 무성한 상황이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회에서 지역구·비례대표 의석만 확정해주면 선거구의 경계 조정은 외부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할 일인데, 정작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남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구 통폐합의 대상이 되는 농어촌·지방에서는 중앙정치권의 무능한 작태에 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듯한 상황이다.

    서울·수도권·대도시와 달리 농어촌·지방 민심은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에 대단히 민감하다. 여러 군(郡)이 합쳐져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총선 때마다 후보가 어느 군 출신인지를 놓고 소(小)지역주의까지 기승을 부릴 지경이다. 그런데 정작 정해줘야 할 지역구 의석 수는 정하지 못하면서, 남의 업무인 경계를 가지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벌이는 모습에 농어촌 민심은 민란 직전의 상황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유력한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2안. 무안·신안은 목포와 합쳐져 재편되고, 나주·화순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유력한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2안. 무안·신안은 목포와 합쳐져 재편되고, 나주·화순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일례로 전라남도의 경우, 현재 정치권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지역구 253석 안에 따르면 종전 11석에서 10석으로 지역구가 1석 줄어드는 상황이다.

    여수갑, 고흥·보성, 영암·장흥·강진, 무안·신안의 4개 지역구가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고 순천·곡성이 인구 상한선을 초과한다. 이 중 여수갑 선거구는 인접한 여수을에서 몇 개의 동(洞)을 넘겨받는 경계 조정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되는 지역구는 고흥·보성, 영암·장흥·강진, 무안·신안의 3개 지역구다.

    순천·곡성의 경우 곡성을 분리해 인접한 다른 선거구인 광양·구례나 영광·담양·장성(함평이 분리됐을 경우)에 붙이면 된다. 본래 곡성은 지난 2008년의 18대 총선 때까지 담양·구례와 한 선거구였기 때문에, 담양 또는 구례와 하나의 선거구를 이루는 게 적절하고 생활권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인구 미달 3개 지역구 문제의 해결책은 지리적으로 보면 한가운데 있는 영암·장흥·강진 선거구를 해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생활권에 따른 선거구 조정을 이유로 나주·화순 선거구의 분해를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전남 선거구 재조정에 관한 1안은 무안·신안 선거구를 동일 생활권인 목포와 합쳐 목포·무안·신안 갑을(甲乙) 선거구로 재편하고, 영암·장흥·강진을 분할해 영암은 해남·완도·진도에 붙이고, 장흥·강진을 보성·고흥에 합쳐 선거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곡성은 이 경우 광양·구례와 합쳐진다.

    이 안은 정의화 의장이 16일 국회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이제는 시대 상황으로 봤을 때, 시·군·구(를 분할하지 못하도록 한 악법)의 벽을 허물어줘야 한다"며 "그런 (시·군·구 분할 금지 독소 조항이 있는) 상태에서 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힌 이후 가장 유력한 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시·군·구 분할 금지 독소 조항이 폐지될 경우, 1순위 수혜 대상으로 꼽히는 지역이 목포·무안·신안이기 때문이다. 목포시와 무안군·신안군은 무안반도라는 동일한 생활권에 기반하고 있고, 일제가 행정구역을 재편하기 전까지 무안군이라는 하나의 군(郡)을 이루고 있었다. 1914년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당시 개항장이었던 목포가 부(府)로 떨어져 나갔고, 다시 1969년에 신안군이 무안군에서 분리됐다.

    하지만 압해도로 군청을 옮기기 전인 1991년까지 신안군청이 목포시내에 있었고, 기실 그 건물은 1969년 신안군이 분리되기 전까지 무안군청이었다는 점에서 3개 지역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3안. 함평이 무안·신안에 붙고, 영광·담양·장성은 곡성을 받으며 영암·장흥·강진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3안. 함평이 무안·신안에 붙고, 영광·담양·장성은 곡성을 받으며 영암·장흥·강진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지역 정가의 관계자는 "(무안군) 삼향면에 남악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목포와 무안의 생활권 밀착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대표가 무안에 있는 남악신도시의 롯데마트 입점 반대 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구 경계가 무의미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목포 석현동에 있는 도축장을 대양동으로 옮길 때도, 대양동이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와 붙어 있는 바람에 목포와 무안 사이에서 잡음이 심했다"며 "이처럼 실질적으로 생활권이 동일한 만큼 여기 주민들은 목포와 무안·신안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통합돼 갑을(甲乙)로 나누어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같은 전남에서도 여수갑은 여수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들면서 이번에 인구 하한선에 미달했으나, 여수을에서 몇 개 동(洞)만 넘겨받으면 된다. 1998년 삼려통합으로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통합됐기 때문이다. 목포·무안·신안에서도 무안통합의 움직임이 있으나, 여수와의 차이는 아직 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이러한 우연한 사정으로 특정 지역만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2안은 역시 무안·신안은 목포와 합쳐 목포·무안·신안 갑을로 재조정하고, 전남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선거구인 나주·화순을 분할해 고흥·화순·보성, 나주·영암·장흥·강진으로 재조정하는 안이다. 이 경우 곡성이 역시 광양·구례와 합쳐지는 것 외에 다른 변동 사항은 없다.

    이 안은 2000년 16대 총선까지는 생활권이 같은 화순·보성이 같은 지역구였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화순·보성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주선 의원이 노무현정권·집권 열우당과 각을 세우다 표적 수사를 당해 구속되자, 그 틈에 이 선거구를 분해·해체해 화순을 나주에 붙이고 보성은 고흥과 붙였다. 정치적 음모로부터 비롯된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생활권 중심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2안은 인구 16만2375명으로 멀쩡히 인구 하한선을 충족하고 있는 나주·화순을 분할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과 반발이 뒤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안은 정의화 의장이 밝힌 시·군·구 분할 금지 독소 조항을 완화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영광·담양·장성·함평 선거구에서 함평을 떼어내 무안·신안에 붙이고, 대신 곡성이 영광·담양·장성과 한 선거구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영암·장흥·강진을 분할해 영암을 해남·완도·진도에 붙이고, 장흥·강진과 고흥·보성을 합치게 된다.

    4안은 무안·신안과 함평이 합쳐지고 영광·담양·장성에 곡성이 들어가되, 나주·화순을 분할해 각각 나주·영암·장흥·강진과 고흥·화순·보성 선거구로 재편된다.

  •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4안. 함평이 무안·신안에 붙고, 영광·담양·장성은 곡성을 받으며 나주·화순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전남 의석이 11석에서 10석으로 줄어들 경우, 선거구 재조정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4안. 함평이 무안·신안에 붙고, 영광·담양·장성은 곡성을 받으며 나주·화순 선거구가 해체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다만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영암·장흥·강진을 해체하되 무안·신안과 영암·강진을 합쳐 새로운 선거구로 만들고, 장흥은 고흥·보성과 합쳐 고흥·보성·장흥 선거구로 편성한다는 안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함평이 기존의 영광·담양·장성 선거구에 그대로 남아있게 됨에 따라 곡성은 광양·구례로 편입된다.

    이는 생활권이나 민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 지역에서는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원하는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5안이라 칭하기는 어렵다. 난데없이 중앙정치권에서 등장한 안이다. 이 안에 따르면, 무안·영암·신안·강진 선거구는 4개 군(郡)에 걸쳐 있으면서 서해안으로부터 남해안까지 비스듬히 가로질러, 전라남도의 허리를 끊어놓게 된다.

    지역 정가의 관계자는 "전남의 중심이 되는 영산강을 가로질러 선거구가 놓인다는 점에서 상식 밖"이라며 "전남 지리를 잘 모를 수 있는 서울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한강을 가로질러 성동구와 강남구가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식 밖의 안까지 회자되는 것에는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다는 의혹도 나돈다. 영암·장흥·강진은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 황주홍 의원의 지역구다. 무안·신안은 새정치연합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윤석 의원의 지역구다. 전남 지역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비주류와 탈당파를 붙여놓아 차도살인(借刀殺人)하려는 친노의 간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친노가 아닌 모 의원의 궁여지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친노의 간계라는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가뜩이나 반(反)문재인 정서가 만연해 있는 지역 민심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박주선 의원의 지역구인 화순·보성이 해체된 것처럼 선거구 경계 조정 과정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가 개입되는 경우가 흔했다는 게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야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의도 중앙정치권은 선거구의 경계 조정 문제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빨리 원래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지역구·비례대표의 의석 수나 확정해야 한다. 경계 조정은 외부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가 알아서 잘할 일이기 때문이다.

    선거구획정위 또한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수가 확정되면 이번에야말로 잃은 명예를 되찾는다는 각오로 생활권과 지역 민심, 상식에 맞춰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이미 여의도에서는 어떠한 안이 어느 계파, 어떤 의원의 뒷공작과 로비의 소산인지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터무니없는 상식 밖의 선거구획정안이 마련되면, 선거구획정위가 정치권의 외압과 계파 논리 앞에 무릎 꿇었다는 의혹이 나오지 않을 수 없고, 헌정 사상 최초의 외부 독립기구로서의 선거구획정위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