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낡은 진보 청산해야 한다"
     
      2015년의 세밑은 ‘문재인-친노(親盧)-한상균-민노총-486 운동권’ 증후군으로 몸살을 않았다. 경직된 이념과 노선이 초래한 정치-사회적 열병이었다.
  • 미국의 자유사상가 로버트 노직은 이 증상을 이렇게 진단했다.
    “세상 사람들을 친구 아니면 적(敵)으로 양분한다.
    적은 절대악(絶對惡)이다. 적은 끊임없이 음모를 꾸민다.
    적과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극단적으로 싸워야 한다.
    점진적 진화 아닌 즉각적 실현을 추구한다. 항상 떼거리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로버트 노직은 이런 성향을
    ‘고집불통(bigotry)’ ‘지적(知的) 빈곤’의 두 마디로 요약했다.
 
 사회운동과 이념운동에는 늘 이런 독선, 독단, 편향, 지나침, 외곬, 교조주의, 소아병적 과격주의라는 게 따라붙는다. 우리 경우도 1980년대부터 이런 경향이 반(反)권위주의 운동에 편승해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을 호언해 왔다.
요즘도 걸핏하면 도지는 ‘광장의 과격성’은 그 끝물이 일으키는 자해(自害)의 발작이다.
자기들은 그걸 ‘민중 총궐기’니 뭐니 떠들지만, 실은 동원된 떼거리에 불과하다.
웬 동원된 숫자가 저리 많으냐고 놀랄 것 없다. 한 30년 줄기차게 선동하고 조직하다 보면
그 만한 숫자는 너끈히 채우고도 남는다.
 
  • ▲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유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와 통합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뉴데일리
    ▲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유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와 통합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뉴데일리
  •  
     
     문제는 이 동원된 군중의 머리수가 아니라,
    전업(專業) ‘운동 꾼’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 단단한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있는 현실이다.
     ‘486 진지(陣地)’가 그것이다.

    이들은 야당의 당권도 거머쥐었고, 노동운동의 고삐도 휘어잡았다.
    통진당 해산으로 그들 중 가장 독한 분자들은 걷어냈다.
    그러나 그들과 더불어 ‘선거연대’와 ‘정책연대’를 하자던 당사자들은
    여전히 야당가(街)와 운동권의 큰손으로 건재하고 있다.
    오늘의 야권과 노동계가 저토록 어지러이 돌아가는 건 다 그들의 노림수 탓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갸우뚱할 것이다.
    “야당이 단결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왜 저렇게 싸울까?“
    ”한상균 쪽이 왜 진작 평화시위를 하지 않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민심을 잃었을까?“

    그러나 거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야당과 노동계를 로버트 노직이 말한 경직된 부류가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다.
    한상균이 민선(民選) 정부와 시장경제를 ‘파쇼 독재’ ‘자본독재’ ‘노예의 삶’이라고 부른 것부터가 ‘멘탈 경직’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소리다.
    그런데 어쩌자고 폭력난동에 대한 문재인 제1야당 대표의 첫 반응은
    한상균의 막가는 행패를 제쳐둔 채 공권력의 물대포만 시비한 것이었다.
    국회에선 막무가내로 노동개혁법, 기업 활성화법, 서비스 산업법, 북한인권법을 외면했다.
    문재인-친노(親盧) 역시 똑같은 ‘멘탈 경직’이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친노 패권주의, 이런 ‘철 밥통’ 노조, 이런 꽉 막힌 운동권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물음에, 어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 안철수 의원은
    “낡은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안철수 스타일’에 대해선 “늘 간만 보고 다닌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박원순-문재인-친노(親盧)-486 운동권 앞에선 그는 너무나 어설펐고 순진했다.
    그에겐 콘텐츠가 없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낡은 진보’로는 안 된다고 한 그 부분만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이제야 뭘 좀 깨친 것 같은 표현이었다.
     
    오늘의 야권과 과격파 쪽에서 부는 흙바람은 결국,
    그들의 세계관-역사관-정치경제학의 ‘낡은 틀’ 때문이다.
    “야당을 어찌할 것인가?” “노동계를 어찌 할 것인가?” “진보를 어찌 할 것인가?”는
    따라서, 그들의 ‘낡은 진보’를 대치할 ‘합리적 진보’ 그래서 보편적 상식과 정서에 맞는 야당을
    새로 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낡은 진보와는 쌍방향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안철수, 김한길, 조경태, 황주홍, 유성엽, 박준영의 말을 귓등으로라도 들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다. 그들 ‘낡은 진보’는 ‘합리적 진보’를 개량주의라고 매도하던 극렬 파였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들의 생각은 지엽적으로는 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합리적 진보’란 그러면 어떤 것일까?
    주간 이코노미스트 2012년 10월 13일자는 이렇게 썼다.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불평등에 대처할 새로운 중도(centrist) 정치가 필요하다.”
    제목은 ‘참된 진보(True Progressivism)'였다.
    우리로 치면 ’튼튼한 안보와 함께‘를 곁들이면 더 좋을 것이다.
    응답하라, 새로 나와야 할 중도개혁 야당이여.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조선일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