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즈 번호판 의혹 성급히 제기한 전병헌, 천려일실 안타까워
  • ▲ 2015년 4월 11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고 담당 경찰의 CCTV 관련 발언. 하지만 CCTV상의 와이셔츠 색깔을 근거로 체포된 용의자는 엉뚱한 사람이었고 진범은 따로 있었다. ⓒSBS 방송 영상 캡쳐
    ▲ 2015년 4월 11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고 담당 경찰의 CCTV 관련 발언. 하지만 CCTV상의 와이셔츠 색깔을 근거로 체포된 용의자는 엉뚱한 사람이었고 진범은 따로 있었다. ⓒSBS 방송 영상 캡쳐

    '아, 저건 아닌데……'

    22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전병헌 최고위원이 사진 판넬까지 들어보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의 마티즈 번호판 관련 의혹을 제기할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마티즈 번호판 관련 의혹은 새삼스레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전날부터 인터넷 공간과 SNS를 중심으로 번호판의 색깔 문제를 지적하는 의혹이 유포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삼이사에 불과한 일개 누리꾼이 인터넷 공간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수권정당을 자처하는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이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의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무게감에 따른 발언의 책임도 다름은 물론이다.

    기자가 이를 받아적으면서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올해 4월 11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 사라진 운전자' 편을 우연찮게 시청했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찍힌 CCTV 영상의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근거로 용의자를 체포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척된 결과 진범은 따로 있었다. 또, 억울하게 체포됐던 용의자가 입고 있었던 와이셔츠의 색상은 어두운 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담당 경찰은 "CCTV 상으로 밝은 색 와이셔츠가 정확히 보인다"고 했지만, 안시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색깔이 검더라도 CCTV로 찍으면 밝게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CCTV 사진 상의 색상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잘못된 용의자를 체포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던 경찰이 이와 같이 중대한 사건에서 두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할 리 없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아쉽게도 인터넷 공간에서의 정보 수집 외에 실험이나 전문가 자문 등을 소홀히 한 채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 ▲ 2015년 4월 11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안시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의 CCTV 관련 설명. 실제로는 어두운 색깔의 와이셔츠라도 CCTV 상에서는 흰색에 가깝게 밝게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경찰도 이를 흰색 와이셔츠로 착각하고 엉뚱한 용의자를 체포했다. ⓒSBS 방송 영상 캡쳐
    ▲ 2015년 4월 11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안시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의 CCTV 관련 설명. 실제로는 어두운 색깔의 와이셔츠라도 CCTV 상에서는 흰색에 가깝게 밝게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경찰도 이를 흰색 와이셔츠로 착각하고 엉뚱한 용의자를 체포했다. ⓒSBS 방송 영상 캡쳐

    경기지방경찰청은 23일 당시 상황 재연을 통해 저화소 CCTV에서는 녹색 번호판이 흰색으로 보일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동영상 감정을 의뢰한 상황이다.

    좋게 해석하면 인터넷 상에서 허무맹랑한 괴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의혹이 전병헌 최고위원의 문제 제기를 통해 말끔하게 해소되고 규명된 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전병헌 최고위원은 최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에서 특히 신중하게 무게 중심을 잡아왔기에 이번 의혹 제기에 안타까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최고위원들이 '공갈' 막말과 '봄날은 간다' 노래, XX 등 욕설 난무를 통해 구설수에 휘말리고 심지어 징계까지 받는 와중에도 전병헌 최고위원은 신중한 정무적 처신을 통해 당의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고, 민생 행보를 보여 왔다. 6월이 되자 호국 보훈의 달임을 강조했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초동 대응이 중요함을 누구보다 먼저 경고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했던가. 옛말에 참으로 틀린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그보다도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표다.

    문재인 대표는 '유능한 안보 정당'을 강조하고, 자신이 특전사 출신임을 내세우며 타이어까지 끌고 다녔는데 사이버 상의 국가안보가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처한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22일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커가 최근 북한 문제를 다루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 5곳을 해킹했다. 게다가 이 해커는 국정원에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해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유출 자료에서 입수한 해킹 기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세계 정상급의 해킹 관련 자료가 여과 없이 공개되면서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이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국내 탈북자 모임 사이트, 북한 연구자 사이트 등이 북한에 의해 해킹당한 것은, 현실 세계에 비유하자면 연평도가 포격당한 것과 다르지 않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일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일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정원이 최전선에 나아가 맞서 싸워야 할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위험성에는 눈과 귀를 닫고 각종 의혹만 무차별적으로 제기하고, 또 부풀리고, 마침내 고발전으로 비화시키기까지 한 것은 당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가장 크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쟁으로 (날을) 허비해야 되겠느냐"며 "국정원을 벗기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럴 때 국가를 위해 국정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국가를 도와줄 수 있도록 행동을 할 때 국가 지도자로 존경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유능한 안보 정당'은 구호만 외친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또, 문재인 대표가 공수여단을 방문해 타이어를 끌면서 달린다고 해서 당이 '유능한 안보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안보를 해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위협, 우리의 빈틈을 노리는 적들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을 헤아리고 국민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불안감은 물론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적 불안 요소까지 사전에 대응할 수 있어야 진정 '유능한 안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표가 '유능한 안보 정당'을 단지 자신의 대권 행보를 위한 하나의 구호요,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은 이번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의혹 논란에서 문재인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적이 이 와중에 새로이 입수한 신기술로 무장하고 우리의 '인터넷 바다'를 넘볼 때, 인터넷 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의 인터넷 사이트들을 감염시키고 악성코드를 심을 때, 이 위험성에 눈을 감고 앞바다를 내준 채 '안보 장사'에 골몰하느냐, 아니면 보이지 않는 위협에 맞서 대응 포격에 나서느냐.

    진정 '유능한 안보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냐 말 것이냐가 문재인 대표의 결심에 달려 있다. 그리고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종걸 원내대표가 한 말을 빌리자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