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88년 광주사태 진상규명 외치며 분신, 본인도 86년부터 운동권 활동
  • ▲ 박래군 세월초 범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 ⓒ 사진 연합뉴스
    ▲ 박래군 세월초 범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 ⓒ 사진 연합뉴스

    22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마약·보톡스’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박래군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의 과거 행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박래군 위원장이 지난해 열린 이석기 전 의원 내란선동 사건 항소심 재판에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한 발언들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래군 위원장은 지난해 6월 23일,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이민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펴 파문을 초래했다.

    당시 박래군 위원장은 “국가정보원은 지난 대선 시기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고, 그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란음모 사건을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래군 위원장은 “(이석기 위원 내란선동 사건은) 과거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처럼 실체가 없는 사건”이라고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박래군 위원장은 “피고인들은 총 들고 싸우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았다”며, “내란음모를 내전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국제엠네스티 등에서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사회에서 혐오하는 의견조차도 두려움 없이 표현을 수 있는 자유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영역의 문제라고 강변했다.

    이어 박래군 위원장은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은 토론에 맡겨야 할 사안”이라며, “사법처리를 앞세우면 토론이 차단되고 우리 사회에서 비판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래군 위원장의 주장에 당시 검찰은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후방을 교란하자는 얘기는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검찰은 “살인예비음모나 강도예비음모가 그런 것처럼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을 국정원이 조작했다는 식의 주장은, 박래군 위원장을 비롯한 좌파운동권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즐겨 쓰는 전형적인 ‘물 타기용’ 레토릭이다.

  • ▲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2014.4.14. ⓒ 사진 연합뉴스
    ▲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2014.4.14. ⓒ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을 덮기 위해,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을 기획했다는 주장은, 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좌파진영에서 흘러나온 음모론 중 하나다.

    박래군 위원장이 상입집행위원장을 맡은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 규탄대책위원회’는 지난해 2월 3일, 검찰이 이석기 전 의원에게 징역 20년에 자격정지 10년의 형을 구형하자, 재판이 열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음모는 조작”이라고 규정하면서, 이석기 의원과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국정원 정치공작 규탄 대책위’는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만들어 유신독재 공포정치를 부활시켰다”며, “검찰의 정치구형은 치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책위는 ‘날조’와 ‘둔갑’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대책위는 좌파진영이 국민들을 선동할 대 즐겨 쓰는 ‘친일’을 이 사건에도 끼워 넣었다.

    대책위는 통합진보당이 ‘친일독재’의 정체를 폭로하자, 청와대와 국정원 보수언론 등이 포함된 ‘수구보수세력’이 보복을 위해 공안탄압에 나섰다고 주장하면서, ‘친일 메커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석기 사건을 통진당에 대한 정치보복이자, 국정원이 기획한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한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는 박래군 위원장도 함께 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좌파를 대표하는 강성·골수 운동권 인사다.

    1986년 5월, 연세대 국문과 재학생이었던 그는 해고자 16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 한미은행 지점을 점거·농성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집시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지금까지 그가 단 별만 10개가 넘는다.

    어린 시절 소설가를 꿈꿨던 작가지망생이었지만, 본인의 표현처럼 “악마의 유혹에 끌려”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는 누구보다 전투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인권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 데는, 동생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1988년 6월, 5.18 광주사태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면서 분신자살한 숭실대 재학생 박래전이 바로 그의 동생이다.

    서로 “창자가 통하는 사이”라고 할 정도로, 우애가 각별했던 동생의 죽음은 그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래군은 스스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민가협)를 찾아갔다. 이후 민가협 사무국장을 거쳐 1994년부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를 지냈다.

    2008년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파동 당시, 각종 집회와 시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2009년 용산철거민 사망 사건이 일어나자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대정부투쟁을 이끌었다.

  • ▲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해 벌어진 희망버스 시위 당시 모습. ⓒ 뉴데일리DB
    ▲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해 벌어진 희망버스 시위 당시 모습. ⓒ 뉴데일리DB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에도 앞장섰으며,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석기 전 의원 무죄석방(‘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 대책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종북콘서트를 진행한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구명(‘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 집행위원장), 통진당 해산 반대 운동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12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시인권위원회 외부 전문위원으로 위촉장을 받았다(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 ▲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416연대를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해 22일 오후 416 가족협의회 임원진 등 관계자들이,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박래군 416 연대 상임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2015.6.22. ⓒ 사진 연합뉴스
    ▲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416연대를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해 22일 오후 416 가족협의회 임원진 등 관계자들이,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박래군 416 연대 상임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2015.6.22. ⓒ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4월부터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인권센터 인권중심 사람’ 소장도 겸직하고 있다.

    그의 이력에서 보듯 유독 ‘인권’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보이지만, 전 세계가 우려하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예외다. 박래군 위원장이 북한 주민이나 탈북자들의 인권과 관련돼 개선을 요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엔이 북한의 인권참상을 기록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개설한 ‘유엔인권기구 서울사무소’와 관련해서도 박래군 위원장의 언급은 찾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