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 차원에서 본 국가방역체계

    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 ▲ 김충남 교수.
    ▲ 김충남 교수.

    메르스의 기습 공격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기습 공격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낙타와는 거리가 먼 나라를 세계 두 번째 메르스 발병국으로 만들었고,
    첨단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서울 삼성병원을 초토화시켰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할 정도로 기막힌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막심하다. 한 달 반 동안 국민은 공포에 떨었고
    온 나라는 마비 상태에 빠져 모든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수십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에 대한 국제신인도 하락 등으로 인한 간접 피해도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방역당국을 포함한 정부에 대한 불신 또한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되돌아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바이러스의 기습 앞에
    우리나라의 방어태세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첫째, 방역당국은 방역전선의 전사(戰士)로서의 전문성, 책임감, 위기대응능력이 크게 부족했다. 메르스 의심환자를 발견한 병원의 문의가 왔을 때 방역당국은 “감염환자와 2m 거리에서 1시간 이상 접촉이 있어야 감염된다”면서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 환자는 3일 간 수많은 환자와 의료요원이 밀집한, 난민수용소 같은 응급실에서 3일 간 방치되어 80명 내외의 사람들에게 감염시켰던 것이다. 어떤 바이러스든 쉽게 확산된다는 것은 고등학교 생물에서 배우는 상식인데도 말이다. 

     둘째, 메르스 환자 발생 후 방역당국과 정부의 위기대응은 메르스 환자를 뒤쫓아만 가는 형국이 됐다. 군사작전이라면 게릴라가 침투했을 때 신속히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넓게 포위망을 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알려 수상한 자에 대한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셋째, 난민수용소 같은 응급실, 다인용 입원실, 병원 내 감염 등, 민간병원들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이 같은 병원의 시설과 운용방식으로는 언제든 병원 내 대량 감염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공중보건에 대한 국민의 의식과 행동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아무리 완벽한 공공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감염병 통제를 위해 노력하더라도 의심증상을 자진
    신고하고 격리조치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쉴세없이 침공하는 바이러스

    외적(外敵) 및 역병(疫病)과 싸우면서 유럽의 근대국가가 성립됐다.
     그래서 군대, 경찰, 소방·방재, 공중보건은 근대국가의 핵심기능이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고 하며, 콜레라도 주기적으로 발생했으며,
    특히 19세기에는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감염병과 싸우면서 유럽 국가에서 강력한 공중보건 및 의료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그래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군사작전 하듯 신속하고 과감하게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초동 진압한다.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공중보건 기능을 미처 강화하지 못했다.
    2003년 사스 발생 후 질병관리본부를 설립하는 등 공중보건 기구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2015년 보건복지부 예산 53조 4,000억 원 중에서 보건의료 예산은 4.3%인 2조 2,800억 원에
    불과하다. 공중보건이 국가의 핵심기능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방역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국립병원과 지방공립병원 등 공공의료 역량이 빈약하여
    민간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로 전염병 확산이 테러, 국제범죄 등과 더불어 21세기의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등장했다. 특히 확산 가능성이 높고 치사율도 높은 감염병은 그 자체로서 중대한 국민안보의 관심사인 동시에 심각한 국가안보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과 대응태세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세계화란 전 세계에 걸쳐 인적 물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촌 저편 고립된 지역의 풍토병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최근 10여 년 간 새로 발생한 감염병이 1,100가지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화의 선두주자로서 2014년도 출입국자가 3,000만을 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바이러스가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다중(多衆) 시설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의 방역태세는 1970년대 수준에서 크게 벋어나지 못했다.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필수적인 정보(情報), 병력, 무기, 실탄이 빈약한 상황에서 질병과의 전쟁에 과연 이길 수 있겠는가?  

    방역체계, 어떻게 강화되어야 할까?      

     2,700여 년 전 손자(孫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고 했다.
    이 말을 우리의 방역체계에 비추어 보고자 한다. 먼저 적을 안다는 것은 적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감염병 정보 수집을 게을리 했고, 수집된 정보를 제대로 평가하고, 의료기관과 국민에게 제대로 전파하고 경고하지 못했다. 

     메르스라는 적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기습당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감염병 정보는 입국자의 발열검사가 고작이지만 잠복상태에서는 감염자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수단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처럼 입국자를 대상으로 정밀한 질문서를 작성케 하여 의심환자를 조기에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의 대응 매뉴얼은 WHO의 감염병 주의보 발령 후에 주의상태로 들어가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도 소극적이고 안이한 대응이다.
     따라서 보건당국은 국내외에서 감염병 관련 정보 수집을 적극화해야 한다. WHO, 미국의 CDC 등 국제보건기구에 전문인력을 상시 파견하는 등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 각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통한 정보 수집도 해야 한다. 
     둘째, 해외에서 발생된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정보는 수시로 의료기관에 전파하여, 의료기관이 자체교육을 통해 감염병 발생 시 신속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안보차원에서 중시해야 할 것은 즉각 대응태세이다.
    질병통제본부는 항시 24시간 가동되는 감염병 비상센터를 운영하여 전국의 감염병 발생 및 치료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내용을 전국 병의원에 전파하도록 해야 한다. 휴전선에서는 철책선이 있음에도 수많은 병사들이 밤을 새워 경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전염병과 싸우는 전사들도 24시간 경제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상황 발생 시 위기관리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질병과의 싸움에 필요한 것은 의학적 과학적 전문성이기 때문에 행정공무원 중심의 대책본부 운영은 혼선만 초래할 뿐이다. 방역대책본부에 감염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체제를 갖추어 병원 봉쇄, 강제 격리, 지역통제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 과감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무총리 주재로 국민안전처 등이 참가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방역대책본부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하는데 그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우리 방역당국은 질병과 싸우는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고도로 훈련된  전문인력도, 장비도, 예산도 태부족이기 때문에 이를 획기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보건사회부에는 보건 및 의료 전문가가 별로 없다. 질병관리본부 요원의 60%는 계약직이다. ‘질병의 수사관’인 역학조사관은 32명에 불과하고 그 중 30명은 군대복무를 대신하는 공익보건요원이며, 지방자치단체에는 역학조사관이 한 명도 없다. 전염병 사태가 터지면 정부는 민간병원의 감염 전문의사들을 차출하여 임시방편으로 대응한다. 

     방역체계 등 공중보건 및 의료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것은 현대국가의 필수조건이며,
    특히 북한의 생물무기의 위협 하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긴급한 안보차원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가안보는 군대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같은 국가기관들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경종으로 삼아 공공의료체계 현대화를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