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녹취 편집' 논란으로 벌통 건드려… 유성엽 "매를 사서 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후 4시 15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녹취 음원의 장외 공개를 강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오후 4시 15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녹취 음원의 장외 공개를 강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청문회를 보면서 여당 의원들이 후보자를 전혀 안 도와주고 있구나, 매를 사서 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간사의 말이다. 그말대로 1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새정치연합의 공세에 맞서 후보자를 제대로 엄호하지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는 초반부터 청문회장에서의 음향 재생 가능 여부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완구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이른바 '언론외압 의혹'을 놓고 H일보 기자의 비밀 녹취를 재생하려는 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여당이 맞섰다.

    청문회 초반에는 이렇다할 우열이 없었다. "상임위 활동 등에서 관례적으로 음향 재생이 거부된 적이 없다"는 야당 위원들에 대해 여당 위원들은 "나도 상임위 간사한 적 있는데 음향 재생에 동의하지 않은 적 있다" "청문계획서에 음향 재생은 여야 간사 간의 합의사항으로 돼 있다"고 대항했다.

    그러던 중 오전 청문회에서 "후보자는 언론인 중에 (대학) 총장이나 교수로 만들어준 사람이 있느냐"는 새정치연합 김경협 위원의 질의에 이완구 후보자가 "내가요? 없다. 내가 무슨 힘으로…"라고 대답하면서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H일보 기자로부터 해당 녹취를 입수해 KBS에 제공한 당사자인 김경협 위원은 "후보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와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답변의 진실성 검증'을 위해 녹취를 틀어볼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위원들은 "녹취 자체가 불법"이라고 맞서다가, 나중에 "녹취는 정상적인 취재 방법이지만, 취재된 녹취를 상대 정당에 제공한 것은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을 바꾸는 듯 대항 논리가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수 일 전부터 '언론외압 의혹'과 녹취 문제가 청문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충분히 예상됐던 점을 감안하면, 한심스런 대응이었다.

    특히 새누리당 위원들은 오후 인사청문회가 속개된 직후 이완구 후보자가 "그날 1시간 반에 걸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입장을 번복했음에도 음향 재생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후보자 답변의 진실성을 가리고 추후 질의를 이어가기 위해 언론을 배제한 채 비공개로 여야 위원과 총리 후보자만 참석한 가운데 녹취를 재생해보자는 새정치연합 유성엽 간사의 '양보안'을 새누리당 정문헌 간사가 거절한 것이다.

    이에 새정치연합 위원들은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몰려가 논란이 된 녹취 음원을 장외에서 공개하는 강수를 뒀다. 후보자를 보호하려던 행위가 오히려 후보자에게 더 큰 화로 돌아오는 자충수가 된 것이다.

  • ▲ 새누리당 소속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청문회가 열린 국회본청 246호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소속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10일 청문회가 열린 국회본청 246호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유성엽 간사는 "(녹취를) 비공개로 확인하자고 양보했지만 그나마도 (새누리당이) 거부하는 사태를 맞이했다"며 "부득이 청문회장이 아닌 기자회견장에서 (음원을) 공개하는 점에 대해 몹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20분 무렵 청문회가 속개되자, 녹취 음원이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만신창이가 된 이완구 후보자는 수습을 시도했다.

    이완구 후보자는 "뭘 이야기했는지 기억하기가 어렵고 해서 오전에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이 문제로 정회까지 돼서 드릴 말씀이 없고 송구스럽다"며 "인간이 기억력의 한계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답변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켰다면 많은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사과했다.

    이미 녹취가 공개된 이상 가급적 녹취 관련 언급은 삼가고 '언론외압 의혹'은 이 정도로 수습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을 것이다.

    한선교 위원장도 "자꾸 의사진행발언이 오고가면 분위기가 좋을 것 같지 않다"며 더 이상의 의사진행발언을 제지하고 정책질의로 넘어가도록 분위기를 유도했다.

    하지만 정작 마이크를 넘겨받은 새누리당 이장우 위원은 "야당 의원들이 녹취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편집하는 등 짜깁기를 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일부 내용이 편집됐다면 왜 편집을 해서 공개했는지, 그 의도가 뭔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다시 벌집을 건드렸다.

    이에 청문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새정치연합 유성엽 간사는 "청문회를 보면서 여당 의원들이 후보자를 전혀 안 도와주고 있다, 매를 사서 번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녹취의 전체 1시간 30분 분량을 다 듣는 것을 제안한다"고 나섰다.

    같은 당의 진선미 위원도 "조금만 발표하고 조금만 공개하면 '악마의 편집'이라고 하지 않을까 우리끼리 웃었는데 역시 예상대로다"라며 "전체를 공개하려 했지만 (일부분만 공개한 것은) 후보자에 대한 배려였다"며 전체 공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이완구 후보자는 "그 때 1시간 30분 동안 한 이야기는 원내대표를 하며 매일 같이 만났던 젊은 기자들과 때로는 반말도 쓰고, 때로는 과장되고 재밌게 말했기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며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서는 그래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재차 수습을 시도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한선교 위원장은 이장우 위원의 '편집' 발언에 대해 야당 위원들이 '검증'하자며 맞서면서 더 이상 장내 분위기가 정책질의로 이끌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재차 정회를 선언했다.

    이후 새정치연합 김경협 위원이 "후보자의 인격을 고려해서 아주 심한 표현은 (오히려) 순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하고, 새누리당 이장우 위원이 "(편집에)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았다고 하시기 때문에, 유감을 표한다"고 답함에 따라 이날 저녁 9시에야 청문회는 재개될 수 있었다.

    재개된 청문회는 이날 자정 무렵에 종결됐으며,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2일차는 11일 오전 10시부터 재개된다.

    11일 진행될 2일차 청문회에서는 전날에 이어 핵심 쟁점인 '언론외압 의혹'과 함께 이날 공개하기로 한 이완구 후보자 가족의 재산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