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견된 패배, 스페인은 단순했다
  • ▲ 마지막 쐐기골을 넣은 아르엔 로벤ⓒ연합뉴스
    ▲ 마지막 쐐기골을 넣은 아르엔 로벤ⓒ연합뉴스

    무적함대의 패배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이 14일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B조 조별예선 1차전에서 1-5로 대패하며, 당장 16강 진출도 장담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스페인이 선취골을 넣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징조였지만, 스페인의 티키타카는 거기까지 였다. 네덜란드는 로빈 반 페르시와 아르엔 로벤이 각각 2골을 기록하는 등 5골로 화답하며 4년 전 연장전에서 당한 패배를 고스란히 갚았다.

    스페인의 마르카지(紙)는 네덜란드에 당한 대패를 두고, 세계적인 수치라며 강도높은 비난을 가하는 등 스페인 축구대표팀은 경기장 밖에서도 수모를 겪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축구의 암흑기는 이제부터 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페인 축구가 이번 네덜란드전을 통해 나타난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① 체력의 열세와 스트라이커의 의문 부호

    스페인의 주력 선수는 모두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사비 알론소, 사비, 세르히오 라모스, 피케 등은 시즌 막바지까지 리그 우승 경쟁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을 치르는 등 사실상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특히 4강 이상 진출할 것을 염두하고 선발한 디에고 코스타는 체력뿐만 아니라 몸 상태 자체가 좋지 않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페르난도 토레스도 마찬가지다. 4년 전에 비해 그의 기량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고, 네덜란드전에 교체 투입된 후에도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② 이케르 카시야스와 수비진

    5실점의 멍에를 쓴 카시야스이지만, 단지 이 문제를 골키퍼의 기량 혹은 실책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체력뿐만 아니라, 상호 호흡이 그리 좋지 않은 헤라르드 피케와 세르히오 라모스는 기동력과 위치 선정에서 로벤과 반 페르시 등에 크게 밀리며 대량 실점에 일조했다. 카프데빌라-푸욜-피케-라모스로 구성된 4년 전의 수비진과 비교했을 때, 개인 기량면에선 우위를 점했을 수 있지만 효율성에선 오히려 퇴보했다. 카시야스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세 번의 실수를 범한 카시야스에게 "슈퍼 세이브를 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골키퍼의 기본은 안정성과 수비진과의 원활한 소통이다. 이에 대해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던 카시야스였기에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반 페르시에게 네 번째 골을 헌납한 순간은 카시야스가 지켰던 절대적인 명성에 먹칠을 했다.

    ③ 천편일률적인 선수 구성과 전술의 한계

    사비와 사비 알론소, 부스케츠의 부조화는 스페인 축구의 최대 강점인 중앙 미드필더진의 약화를 초래했다. 스페인 축구는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에 군림했지만, 그 기간 동안 그들은 변화를 등한시했다. 4년 동안 그들이 비슷한 방식의 축구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 팀이 읽기 쉬운 축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결국은 정체를 의미한다. 2013-14 시즌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코케를 기용하는 편이 전술의 다양화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니에스타와 실바는 전술 안에서 움직이기 보다는,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개인기량으로 경기를 소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종 엔트리에 탈락한 헤수스 나바스와 이스코 등이 아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모두 경기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좋은 카드였기 때문이다. 중앙 지향적인 선수들의 대거 선발은 결국 악재로 됐고, 교체 카드를 써도 변화가 없는 게 스페인 축구라는 걸 증명한 게임이 바로 네덜란드전이 돼버렸다. 3명의 수비진과 윙어같은 스트라이커(반 페르시와 로벤)를 기용한 네덜란드에 비해 전술의 유연성이 떨어졌다. 차라리 2년 전 유로 2012 개막전에서 꺼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 카드를 꺼내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스페인은 네덜란드전에 당한 대패로,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당초 스페인은 2승을 먼저 거두고, 마지막 경기에 주전들에게 휴식을 취해 16강전을 대비할 예정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남은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최악의 경우 다득점 원칙으로 인해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 탈락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당장 2위로 16강에 진출해도 A조 1위가 확실시되는 브라질과 8강 진출을 다투기 때문에, 스페인에겐 최악의 월드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 한 경기의 패배로 스페인 축구가 걸어온 길을 폄하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그들이 당한 1-5의 대패는 단순히 네덜란드가 잘했기에 나타난 결과는 아니었고, 실제로 그들은 다양한 문제점을 단 한 경기에 모두 보여줬을 정도로 무력했다. 과연 델 보스케 감독이 이번 패배를 어떻게 극복할 지가 관건이다. 19일 새벽 4시(한국시각)에 열리는 칠레와의 2차전이 이제는 승점확보경기가 아닌 시험대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