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의 외침을

    한 사람이라도 들어줬다라면”



  •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13일 방송에서는
    차관우 변호사의 감동적인 변론이 나온다.
    장혜성(이보영)과 같은 국선변호사실에서 일하는 차관우(윤상현)는
    평소 때는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선량한 사람이다.

    순진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고 모든 일에 물러 보이고 헐렁해 보여 조마조마 해 보인다.
    사람이 너무 착하면 바보같이 보이고 그의 능력도 묻혀버린다.

    하지만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하고 그의 어리석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변호사로서의 신념은 확실하다.

    “저는 피고인을 100% 믿습니다.”
    “피고인을 무작정 믿는다는 건 위험한 일 이예요.”
    “자기 피고인을 안 믿으면 어쩔 건데요? 그럼 검사가 돼야지!”
    “현장조사로 이름 좀 날렸습니다. 경찰 시절에 갈고 닦은 노하우가 있습니다.”


    허술하고 남자답지 않게 촐싹거리고 말이 많아 속이 없어 보이는 것과 달리
    출세하려는 자 못지 않게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변호하기 위해
    그는 철저히 오랫동안 준비하고 노력해 왔다.

    어쩌면 출세를 위해서 보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실력이 필요할 지 모른다.
    그 곳에는 평범한 곳보다 더욱 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실타래 같이 복합적으로 얼키고 설켜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언어장애를 가진 5~60대의 여성을 위해 변호를 맡았다.
    변호를 위해 산더미 같이 자료를 쌓아놓고 정성을 다 하여 밤새 준비를 한다.

    변론을 위해 법정으로 가는 날,
    평소의 그가 보여준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변호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피고인 조영숙은
    햇살원에서 현금 6백만원을 훔쳤고
    원장의 신고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저항하고 칼을 휘둘렀으며
    재판 내내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반성하지 않은 점.
    특수절도-공무방해로 징역 2년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변호인 최후변론 하세요”하고 재판장이 말하는데
    차 변호사는 엉뚱하게 컴퓨터로 가서 USB를 꽂으려고 한다.
    그런데 꽂는 데를 몰라 연신 헤 멘다.

    답답한 재판장은
    “그 폴더가 아니라 USB폴더로 들어 가세요” 하는데도,
    차 변호사,
    평소 때처럼 어설픈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잘못 가져 온 거야.
    아니 이렇게 안돼.
    왜 이래 진짜.”


    재판장이 연신 지시를 하지만 차 변호사는 혼자 중얼거리며 헤멘다.


  •  


  • 그걸 보는 재판장은 조금 있다가 탁자를 치고
    나중에는 “내 말 안 들립니까?”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제서야 차 변호사는 보는 사람 모두 속이 터져 답답해 하는 행동을 멈춘다.

    “잘 들립니다.
    재판장님.
    재판장님은 잠시 피고인의 입장이 되셨습니다.

    피고인처럼 아무리 해도 들어 주지 않은 처지가 되신 겁니다.
    50초 만에 탁자를 치고 화를 내셨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좀 더 큰 말을 하고
    그래도 못 들으면
    더 큰 목소리로 합니다.


    그래도 못 알아 들으면 버럭 화를 냅니다.
    재판장님처럼 말이죠.
    50초가 아니라
    50년 동안 못 알아들었으면 어쨌을까요?"


  • “피고인은 그 때마다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대신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위해 써 달라고
    50년 동안 햇살원에 3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빚을 변제할 길 없어 햇살원 원장한테 돈을 꿔 달라고 했지만,
    무시 당했습니다.
    여러 번 참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욱하고 돈을 훔친 건 명백한 범죄입니다.
    50년간 참은 것,
    계속 참았어야죠.”

    “그 오랜 기간 동안,
    피고인 주변에 한 번이라도 피고인의 외침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피고인을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은 피고인 자신이 아니라
    귀를 막은 우리 일지 모릅니다!”

    “그 오랜 기간 동인
    피고인 주변에 한 사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는 없었을까요?”

    “피고인을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은
    피고인이 아니라 귀를 막은 우리일 지 모릅니다!”


    사실 몹시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다.
    누가 내 애길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는 사람을 떠 올려보지만 선뜻 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면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느라 애쓰다가
    하고 싶은 얘기를 꿀꺽 저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도와 달라고 사정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 줄 수 없고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내 고통스런 마음을 얘기하고 동감해 주길 원하는 것뿐이다.

    심각한 고통 못지 않게
    혼자라는 사실이 그 못지 않게 힘들고 밀려오는 외로움이 견딜 수 없다.
    낭떠러지 같은 절벽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하고 마음으로 들어주기만 해도
    다시 살아 갈 힘이 생길 것이다.    

    이 시대의 화두는 소통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 그만큼 안 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고 싶은 욕구가 어떤 욕구 못지 않게 강한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너무나 바삐 돌아가고 급변하는 시대에
    남의 얘기를 들어주려고 하던 일을 미루고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는 없다.
    단 10분도 그 사람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든 시대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위험에 처한다.

    10분이라도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면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찌 그리도 말을 잘 하는지.
    유머감각도 뛰어 나고 자기 표현을 잘 하고 만나면 쉴새 없이 수다를 떤다.

    헌데 모두 겉을 맴도는 주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마음의 절박한 소리는 꺼내 놓기가 힘들다.
    세상에 사람은 이렇게도 차고 넘치는데.



  • 차 변호사는 수하(이종석)처럼 마음의 소리를 듣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50년 동안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 들으려 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할 만 한 대상이 되지 못한 장애인에게 마음을 열므로
    그녀가 목매어 부르짖는 억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한 인간을 향한 그의 따뜻함과 노력과 열성,
    그 것을 뒷받침할 수 있게 해 주는 철저한 준비로 인한 빈틈이 없는 논리적인 변론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