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부일정, '봉하마을' 직접 결정…권양숙 여사와 20분 환담대통령 후보 첫날 '참배정치'…"참 나쁜 대통령"에게 참배
  • [김해=최유경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100% 대한민국 만들기' 프로젝트가 21일부터 풀가동 됐다.

    전날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에서 '국민대통합'을 언급한 데 이어 이튿날 바로 실행에 옮기면서 강력한 변화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 첫 움직임은 가히 파격적이다. 박 후보는 이날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진보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박 후보와도 갈등관계에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박 후보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진행된 검찰 수사 도중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양측의 갈등의 골은 깊다.

     

  •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근혜, 봉하 방문 직접 결정

    박 후보가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후보는 묘역을 참배한 뒤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20여분 간 환담했다. 

    "후보로 선출되고 나서 노 전 대통령님 묘역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 왔다. 옛날에 제 부모님 두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얼마나 힘든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권 여사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실지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이에 권 여사도 "(정치를 하는) 이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얼마만큼 힘들다는 걸 내가 안다.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다. 한 나라 안에서 한 국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인데,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화답했다.

    박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이날 오전 갑작스럽게 알려졌다. 그것도 박 후보의 입을 통해서다.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던 중에 기자들과 대화 도중 봉하행을 직접 밝힌 것이다.

    이에 박 후보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박 후보가 최종 결정했다. 캠프 차원에서 가는 게 좋겠다는 논의는 있었지만 방문시기는 극히 일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고 했다.

    노무현재단 측도 박 후보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해 처음에는 당혹감을 표하다가 이를 적극 수용했다.

    "박근혜 후보가 갑작스럽게 방문을 결정했지만 노무현 재단 이병완 이사장이 영접하기 위해 급히 이동했고 권양숙 여사도 흔쾌히 면담하기로 했다."
     - 노무현재단 측 관계자


    ◈ 과거 나쁜 인연 청산?…YS·이희호 여사 만난다

    박 후보가 대선후보로서 첫 외부일정으로 진보의 상징으로 꼽히는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은 것은 '국민대통합' 성격이 짙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는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김종인 박근혜 경선캠프 선대위원장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 박 후보의 봉하방문에 대해 "본인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여러 가지 나쁜 인연들을 청산하고, 전직 대통령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 업적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을 다 한 번 예방한다는 취지인 것 같다."

  •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1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1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같은 날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하는 과정에서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처음으로 찾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방명록에 '호국영령 뜻 받들어 국민대통합의 새 시대 열겠다 -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라고 적었다.

    오는 22일 오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경선과정에서도 박 후보를 두고 '칠푼이'라고 지칭하는 등 4.11 총선이후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돼 왔다.

    그러나 YS 측도 정권재창출을 위한 보수대통합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위원장이 박 후보가 YS와 만난자리에서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이 때문이다.

     

    ◈ "통 큰 결단" vs. "반성먼저 정치쇼"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박 후보의 파격적 행보에 대체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박 후보가 여야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끝나지 않은 과거사(史) 논쟁과 현재진행형인 갈등구조 때문에 복잡한 심경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담쟁이포럼 주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초청 강연에 참석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후보 측은 사전에 박 후보의 방문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 측이 추진단계에서 노무현재단과 가까운 문 후보 측에 참배와 관련해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다만 형식적인 방문이 아닌 과거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진정성을 가졌으면 한다."

    김두관 후보도 기자들과 만나 "방문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하지만, 5.16 쿠데타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도 앞장섰던 분이다. 방문의 진정성이 없어 보여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