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주사 맞을래?" 내연녀 '저승길' 보낸 '인면수심' 의사H산부인과 의사 김OO, '사체유기'에 '마취제 남용'까지…
  • "언제 우유주사 맞을까요?"

    "오늘요 ㅋㅋ"

    "11시쯤 집으로 갈까요?"

    "집에 엄마가 계세요."

    미혼여성인 이모(31)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한 남성으로부터 한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H산부인과로 향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영양제(?)를 맞으러 병원으로 간 이씨는 17시간 이상 소재 파악이 되지 않다가 이튿날 한강 인근 주차장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주차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 = 31일 오후 6시 40분경 잠원지구 주차장을 지나던 A씨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는 젊은 여성이 장시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놀랍게도 이 여성은 사라진 이씨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숨진지 상당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지 3시간 만에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날 오후 9시 30분경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자수한 김모(45)씨는 "숨진 이씨는 지난해 자신이 수술해준 환자였다"며 "가끔 몸이 피곤할 때 병원에 찾아와 영양제 주사를 맞곤 했다"고 진술했다.

    "평소처럼 수면 유도제를 수액에 섞어 이씨에게 투약했는데 깨어나지 않더군요. 순간 겁이 덜컥나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고, 시신을 차랑에 실은 뒤 한강 주차장에 통째로 두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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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유주사 맞고 깨어나지 않아" = 산부인과 의사인 김씨는 30일 오후 8시 28분경 이씨에게 문자를 보내 "우유주사를 맞지 않겠느냐?"고 권유한 뒤 2시간 후 이씨가 자신의 병원으로 찾아오자 비어있는 병실로 이동해 '일'을 저질렀다.

    "'미다졸람'과 '하트만덱스'를 적당히 섞어 수액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액을 맞은 이씨는 금새 잠이 들었고 저도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새벽 2시경 잠이 깼는데 옆에 있는 이씨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했죠. 부랴부랴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이씨를 되살리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김씨가 다시 성북구 자택으로 돌아온 시각은 31일 새벽 3시. 그는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 조수석에 이미 숨진 이씨를 태우고 아내 서모(40)씨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내 실수로 환자가 죽었어. 좀 도와줘요."

    남편의 간곡한 부탁에 아내의 마음도 움직였다. 시신을 유기하기로 마음 먹은 두 사람은 이씨를 승용차에 싣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김씨는 숨진 이씨의 소유 차량(아우디) 조수석에 이씨를 옮겨 태운 뒤 해당 차량을 몰고 한강 잠원지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31일 오전 4시 40분경 주차장에 도착한 김씨는 시신이 놓여진 아우디 차량을 그대로 둔 채 아내와 함께 현장을 빠져나갔다.

    현재 김씨는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로 구속된 상태. 아내 서씨도 시신 유기를 방조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 의사 김씨, 숨진 이씨와 내연 관계? = 김씨는 경찰 진술 조사에서 "이씨와 내연 관계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다만 "부적절한 관계는 몇 차례 가졌다"고 실토했다. 사실상 숨진 이씨와 일반적인 의사-환자와의 관계를 넘어섰음을 인정한 셈이다. 반면 남편의 범행을 도운 서씨는 "이씨가 남편과 내연 관계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부인'에도 불구, 김씨와 숨진 이씨가 오랫동안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가 숨지기 직전에도 김씨와 이씨는 한 차례 육체적 접촉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이씨를 수술한 김씨는 치료가 끝난 후에도 이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몇 차례 식사를 통해 거리감을 좁힌 두 사람은 어느새부턴가 3~4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4일 이씨의 질액에서 김씨의 정액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김씨와 숨진 이씨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것.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씨에게 약물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로 회복을 위해 맞았다는 영양제가 이들에겐 일종의 '환각제'였던 셈이다.

    김씨는 초기 진술에서 이씨에게 '하트만덱스(포도당 영양제)'와 '미다졸람'만을 투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과수가 정액 검출 등의 내용이 담긴 소견을 내놓자, 그동안 이씨에게 '프로포폴' 등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마취제'를 투약해왔음을 실토했다.

    사건 당일 오후 11시, 김씨가 병원에 도착하자 이씨는 3층 간호실에 '자신이 피곤해서 투약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미다졸람을 갖고 나왔다. 이후 아무도 없는 병실에 함께 들어가 이씨에게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을 생리식염수에 섞어 투약했다.

    당시 이씨는 김씨가 평소 놓던 프로포폴 대신 미다졸람을 주사하자 "왜 프로포폴을 안 주냐"고 물었고, 김씨는 "이것도 (최면)효과가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다졸람을 맞고 20분간 잠들었다 깨어난 이씨는 다시 김씨로부터 수술용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각종 약품이 뒤섞인 포도당 영양제(수액) 1L를 맞았다. 이후 두 사람은 성관계를 갖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 뒤 김씨는 깨어났으나 마취제를 다량 투약한 이씨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 ■ 내연녀에게 '13가지 약물' 복합 처방 = 이날 김씨가 이씨에게 투여한 수액에는 ▲수면유도제 미다졸람 5㎖ ▲마취제 나로핀 7.5㎎과 리도카인, ▲근육이완제 베카론 4㎎ 등 마취효과가 있는 4종을 포함한 '13가지 화학물질'이 혼합돼 있었다. 김씨는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들 약품을 몰래 빼돌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로핀과 베카론은 국소 혹은 전신 마취에 사용되는 강력한 마취제다. 독성이 있고 투약시 호흡곤란이나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어 마취제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약물로 분류된다. 특히 이들을 혼용할 경우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는 만큼, 나로핀과 베카론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의료계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프로포폴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숨지게 한 약물로도 잘 알려진 수면유도제(마취제)다. 물에 잘 용해되지 않아 하얀 대두유에 희석시켜 주사로 놓곤 하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선 보통 '우유주사'로 불린다.

    이외에 잠을 푹 자게 하고 피로를 풀어준다고 해서 '힘주사'란 별명도 갖고 있다. 프로포폴은 투약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등 환각 효과가 있어 지난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다.

    김씨는 지난 1년 동안 이씨의 자택을 여섯 번 방문해 프로포폴을 놓아준 뒤 성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에도 이씨의 집을 방문할 계획이었던 김씨는 '집에 엄마가 있다'는 말에 이씨를 자신의 병원으로 불러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링거를 통해 마취제를 투약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일각에서 제기한 '살인 혐의'에 대해선 강력한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전문의 경력 10년 이상인 김씨가 이들 약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을리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강력한 4종의 마취제를 한번에 주사하는 과정에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피의자 김씨에게 ▲사체유기 ▲업무상 과실치사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의료법 위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 경찰은 오는 10일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또 '미다졸람' 등 마취제 관리를 소홀히 한 해당 병원의 약사 김모(44·여)씨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해당 병원 역시 행정처분을 의뢰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