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 계기로 세계 리더 국가로 성장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국가간 서열 크게 상승확 달라진 국격, 국민들 보고 있나?
  • 전 세계 열강들의 정상이 서울 코엑스에 모였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회의 때(47개국)보다 더 많은 53개국 정상과 정상급 대표, 그리고 UN, EU 등 4개 국제기구 수장들이다.

    그 가운데에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이 섰다. 회의를 주최하는 의장이다. 호들갑을 좀 더 떨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잘나가는 왕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는 얘기다.

    반만년 역사상 한반도에서 벌어진 가장 큰 국제 행사다.

    참가국 수만 놓고 보면 지난 2010년 열린 G20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53개국의 경제규모는 전세계 국가 국내총생산(GDP) 중 94%를 차지하며 인구로도 전 세계 인구의 80%에 달한다. G20 참가국들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GDP의 85%, 인구의 65% 정도였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G20이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본격적인 합류를 선언한 자리였다면 이번 핵안보회의는 한층 더 진일보해 선진국 중에서도 선도적 그룹에 포함된 것을 증명하는 행사로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 중국과 일본사이의 그저 그런 나라에서 세계를 이끄는 ‘리더’가 됐다는 반증은 정상회의 기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마치고 의장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
    ▲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마치고 의장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

    ◆ 미국-중국-러시아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국제적 정상회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나라 정상의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1·2등 다툰다면 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나머지 G7 국가들이 2위권을 형성하는 식이다.

    이번 회의 역시 이 서열대로 미국 러시아 중국 정상들이 의장인 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회의를 이끌었다.

    의장국이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앉았다는 반박도 있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나라가 G7 국가들과의 경쟁력을 갖춘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냐는 긍정적 해석도 많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의에서의 이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서열은 크게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의 중간중간 휴식시간마다 악수를 건네며 환담을 나누는 정상들 무리의 규모는 곧 그 나라의 힘(Power)을 의미하는데, 이 대통령에 다가온 정상들의 숫자가 오바마 대통령 다음으로 많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 도움 받던 ‘나라’에서 도움 주는 ‘국가’로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국가 정상들은 회의 주제와는 별도의 경제적 속내를 품고 왔다는 것이 경제계의 중론이다.

    ‘한국과의 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자국 산업에 투자 유치와 기술 이전을 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로 개도국 정상들은 이번 방한에서 정상회담은 물론 해외 수출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특히 IT나 조선 등 기존의 세계 시장을 석권한 분야는 물론, 원자력·방위산업·미래신성장산업·신재생에너지 등에서도 한국의 기술 도입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많아 눈길을 끌었다.

  • ▲ 이날 이 대통령이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 공동취재단
    ▲ 이날 이 대통령이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 공동취재단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26일 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이고 수천 년의 문화강국이다 특히 최근 20년 발전은 정말 놀랍다”며 한국을 극찬한 뒤 방산 분야,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대해서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다.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대답을 들은 피녜라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T-50 고등훈련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아비세비치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정상 회담을 통해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조만간 한시적 근로협정을 체결키로 했다. 인프라 건설 등 이미 합의된 주요 경제협력사업을 조속히 이행할 것도 약속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5번이나 방한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양국간 교역규모가 사상 최초로 200억불을 초과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향후 러시아의 에너지·자원, 극동시베리아 지역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발전될 것을 기대했다.

    터키도 방산 분야의 우리 기술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전차개발사업·중어뢰사업 등이 이미 확정돼 진행되고 있고 이 밖에 지상군, 공중전력 무기체계 수출 협력사업 추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이 밖에도 인도는 방산 분야와 원자력발전소 안전 관리 분야의 기술을 요청했고 태국은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공유해나가기로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IT 기술 수출을 넘어 방위산업 분야나 원자력 발전 기술을 유치하고자 하는 각국 정상들의 요청이 많았다. 특히 이들 분야는 가격적 경쟁력이 아닌 기술의 우수성이 증명된 것으로 볼 수 있어 더욱 고무된 분위기다”고 전했다.

  • ▲ 이날 이 대통령이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 공동취재단
    ▲ 이날 이 대통령이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 공동취재단

    ◆ 참가국 정상회의 요청 쇄도에 靑 진땀

    이번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청와대 대통령실은 몰려드는 정상회담 요청에 진땀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국 대부분이 이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불과 3~4일 만에 모두 만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국가 간 공식 요청을 거절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남미·아프리카·중동 지역 국가들은 집요했다. 자국에 산업 투자와 기술 유치를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가용시간 및 일정, 현안 및 관심사 등을 감안해 대상국을 선정하게 됐다. 의전팀에서는 대통령 일정을 10분 단위로 쪼갰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는 것이 수행원들의 전언이다.

    이번 정상회의 기간 전후로 이 대통령이 가진 정상회담은 총 26차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26개국 27명(EU에선 상임의장과 집행위원장 2명)의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열었다.

    살인적인 일정에 이 대통령은 28일 한-EU 양자 회담 이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연신 기침을 참지 못했다. 독감이었다. 과로에 입술도 터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국가는 많았지만, 일정상 모두 소화하기 어려웠다. 워낙 많은 국가가 참가한 정상회의라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쇄도하는 정상회담 요청을 거절하면서 우리나라 국격이 정말 상승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단군 이래 이 땅 위에 이런 적이 과연 있었던가 곰곰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