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생명만 연장시켜김송주 "북송되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낫다"김혜숙 "보위원들이 가래침을 받아먹게 해"
  • ‘아름다운 의원’, ‘탈북자의 대모’라 불리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휠체어를 타고 비행길에 나섰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탈북자 북송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지난 2일 탈북자들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탈진으로 쓰러진 박 의원은 여전히 “탈북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 하나 쯤은 죽어도 좋다”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안형환, 이은재 의원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인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각국 대표단과 유엔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탈북자 북송의 인권 침해를 온 세계에 고발한다. 한국 의원들이 탈북자 보호를 위해 집단으로 국제회의장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한국의 민간단체 회원이 14일 제네바 유엔 본부 앞 광장에서 여는 ‘강제북송 금지 촉구’ 집회와 거리 행진에도 참여한다.박선영 의원의 제네바 일정을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 주>

    [제네바=김태민 특파원]

    #1. 3월13일 오전 9시30분(이하 현지시간)

  • 스위스 제네바 국제컨퍼런스센터(CICG)에 도착하자 회의장 입구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수용소에서 얼마나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지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 수감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들이 전시됐다.

    탈북인권단체인 '북한정의연대'가 주최하고 '북한인권개선모임', '통일시대사람들'이 전시회를 주관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30분까지 전시된다고 했다.

  • 잔인한 그림들이었다.

    그림을 보며 북한의 수용소는 어떠한 곳일지를 상상해봤다. 하지만 최근 1달간 몇명의 탈북자들을 만나며 들었던 북한의 실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림을 보는 내내 지난 달 만난 한 탈북자가 "다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옆에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고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빨과 손톱이 뽑혀도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게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한다. 찐감자를 하나 먹기위해 성노리개가 되어도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한 그들이 죽은 사람의 옷을 훔치려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수용소에서 이미 짐승취급을 받아 실제로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탈북자들의 절규에 "허구헌날 시위질이냐. 지겨워 죽겠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림에 나온 북한 동포들이 '미친 놈들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만 한다.

  • 정베도르 목사는 “북한인권개선모임이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화가가 듣고 즉석에서 그린 그림도 있고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린 그림도 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피해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다. 모든 그림은 탈북자들에게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정 목사는 "이곳에 전시된 그림들보다 더 잔혹하고 끔찍한 그림들이 많다. 하지만 전시된 그림들을 사람들이 잘 믿지 못한다"면서 "전문가의 그림이 아니지만 진실된 그림들이다"고 강조했다.

    '그림을 왜 이렇게 못 그렸나', '더 예쁘게 전시할 수 없었나'하는 생각을 했던게 한없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보고갔다. 주로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정 목사는 이들에게 그림 설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도 믿기 어려워 했었지만, 외국인들은 설명을 듣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 한국 국회대표단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새누리당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안형환-이은재 의원도 회의장에 도착해 그림들을 주의깊게 둘러봤다. 대표단도 그림이 북한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믿기 어려워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박 의원은 외국인들에 그림을 설명해주는 일을 거들었다. 누구보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그는 그림을 보는 외국인들에 명함을 건네며 먼저 말을 걸며 상세히 설명해줬다. ‘내일 있을 집회에 꼭 와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 일각에서는 박선영 의원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중국과 북한을 너무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그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2일까지 단식하는 동안 수많은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주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기자도 '어떻게 저렇게 건강한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를 탄 그가 잘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아픈 척하는 '쇼'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었다. 박선영 의원이 피곤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루도 밥을 거른 적 없고 그보다 훨씬 더 젊은 기자는 그의 일정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아팠고 피곤했다. 그가 모든 것을 다 참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계산해도 탈북자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별다른 소득이 없다. 최근에 기적과도 같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아니다. 그가 아픈 시늉이라도 한다면 오히려 더 득이 될지도 모르겠다.

  • #2. 3월13일 오전 10시30분

    “탈북자 가족까지 가혹한 처벌받는 북한 인권을 아는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 안은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날 회의에는 북한군 장교 출신의 탈북자 김주일씨와 북한에 3번이나 북송된 김송주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의 증언은 그림보다 더 생생했다. 참석자들은 그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김주일씨는 “영국에 와서 보니 내가 살던 고향,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조국이 얼마나 잔인한 독재국가인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이 탈북난민들을 경제형 불법 월경자라고 생억지를 써도 북한정권은 엄격히 정치적 반동분자로 구분하고 가족까지 포함해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청했다.

    그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갔지만 중간중간 눈을 지그시 감았다.

  • 김주일씨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다. 그는 “현재 북한 정치범 수용소는 알려진 것만 전국적으로 5개소이며 노출되지 않은 수용소, 군사용 수용소까지 계산하면 그 수는 추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수용소 건물이 해체돼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존재하는 한 수용소는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의 북한 지원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도 밝혔다.

    그는 “현재의 방법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생명만 연장시켜주며 자선단체의 실적 쌓기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국제기구가 북한에 대한 실체를 정확히 알고 북한 지원 및 인권을 연계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즉석에서 일부 대목을 추가해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북한을 바꾸는 기본 힘이다. 유엔 제네바 본부 앞에서 북한 인권을 위해 목숨울 걸고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온 많은 한국 관계자, 인권 투사들이 내일 캠페인을 가진다. 단 30분이라도 시간을 내달라. 여러분들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 “北 보위부원들은 여성 몸속에 손을 넣어가면서까지 돈을 탈취”

    북한에 3번이나 북송된 김송주씨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는 두 차례나 강제노동을 하면서 목격한 인권유린 실태를 설명했다.

    그는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중간중간 목이 메이는 듯 입술을 다물기도 했다.

    “북한 보위부가 실시하는 고문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그래서 고통을 피하고자 죄가 없어도 죄가 있다고 대답한다.”

    김송주씨는 “북송된 모든 사람들은 알몸으로 검색을 받는데 보위부원들은 맨손으로 여성들의 생식기에 손을 넣어 가며 숨겨진 돈을 탈취하기까지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자들의 참담한 인권 실태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구류장 내에서는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서 보통은 새벽 1시~2시 경에 잠을 재우는데 7평 남직한 공간에 40~50명씩 생활하기 때문에 잠을 자도 거의 대부분 앉아서 자야 한다”고 말했다.

  • 주민들에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공개총살을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중국에서 단지 먹거리를 살돈이 없어 한국 선교사를 만난 것만으로도 ‘돈을 받고 간첩 임무를 받았다고 죄명을 씌워 공개처형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중국에서 온 임산부에게는 태아 떨구기 고문을 들이 대면서 ‘중국놈의 종자를 배고 온 조국의 배반자’라며 강제 낙태를 시켰다"고도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김송주씨는 “아직도 길에서 경찰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중국에서 체포되던 악몽이 되살아나 온 몸이 떨리고 두렵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서 "최근 강제북송 위험에 놓인 탈북난민들이 북한으로 호송될 위험에 놓여있다고 뉴스에서 보았기 때문에 저는 이들의 심정을 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탈북자들은 북송되지 않으려고 늘 쥐약과 면도칼, 심지어 수류탄까지 소장하고 다니는데 이는 북송되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북한주민의 인권을 찾아주고 지켜 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

  • 김형오 전 의장과 박선영 의원은 탈북자들의 사진을 찍어가며 그들의 증언을 귀담아 들었다. 부상을 당한 안형환 의원과 이은재 의원도 연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의원들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없었다.

  • 김주일, 김송주 씨의 증언에 이어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한 동영상이 상영됐다. 잔잔한 배경 음악과 함께 북한의 처참한 실상이 공개됐다. 회의장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해졌다.

    이 동영상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호화로운 저택에 살고 500여대의 차를 가졌으며 김정일이 사망한 뒤에도 한해 20여억원의 돈을 들여 그의 시신을 보존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궁핍한 생활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담겼다.

    동영상은 탈북자 장진성 시인이 쓴 '시'로 마무리됐다.

  • #3. 3월 13일 오후 2시

  • 유엔 유럽본부에서는 '현대판 노예 기지-'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란 주제의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휴먼라이츠워치와 코넥타스가 주최했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북한 인권 실태를 담은 20여분간의 동영상을 시청한 후 북한시민연합 국제협력팀장인 요안나 호사냑이 '북한 인권 상황'을 보고했고 휴먼라이츠워치의 줄리에트 드 리베로 제네바 인권옹호국장이 '북한심사위원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 증언자로 나온 탈북자 김혜숙 씨는 "13살 때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18호 관리소로 보내졌다. 이후 28년을 관리소에서 살았다""며 북한 수용소의 실태를 전했다.

    “수감생활에서 해제된 뒤에야 조부가 6·25전쟁 때 월남했다는 것이 수용소로 끌려간 된 이유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동생 둘과 남동생은 18호 관리소에 41년째 있는데도 아직 이유를 모른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왜 18호에 들어갔는지 모르셨다”

    그는 "왜 끌려왔는지를 물어보면 보위부원들이 바로 죽여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그가 전한 북한의 실태는 처참했다. 김씨는 수용소에 있을 때 "거의 매일 하루 16~18시간동안 강제노동을 했지만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해 굶어 죽는 사람을 수도 없이 봤다. 주로 강냉이로 배를 채울 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무릎을 꿇리고 두 손을 뒤로 결박한 채 보위원들이 가래침을 받아먹게 했다. 가래침을 삼키지 않은 경우 하루 종일 매질을 당해야 했다"고 했다.

    공개총살과 교수형을 의무적으로 봐야했다는 김 씨는 "일 년에 몇 백 번쯤 총살이 있었고 교수형을 하는 장면은 두 번 봤다"면서 "배고파 강냉이를 훔쳐 먹었다고 며칠 동안 길거리에 세워놓더니 끝내 총살했고, 다른 사람의 손금을 봐준 아줌마는 미신을 퍼트렸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했다"고 말했다.

  • 김혜숙 씨가 증언을 하는 도중에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참관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킹 특사는 전날 대표단과의 면담을 통해 탈북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해졌다. 이어 이날 회의에도 참석해 탈북자 문제에 대한 달라진 관심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혜숙 씨의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 김 전 의장과 잠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김 전 의장은 "킹 특사가 확실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번 방문이 분명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