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通商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다”
    배 진 영   월간조선 기자(차장대우) 
     
       1904년 2월 8일, 일본 해군은 뤼순(旅順)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군함들을 기습 공격했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고종폐위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한성감옥에 7년째 수감 중이던 청년 이승만(李承晩)은 이 소식을 접하고 “분노가 치밀어 눈물을 참지 못하여 그동안 해오던 한영사전 작업을 중단하고” 2월19일부터《독립정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청년 이승만은 “어서 세상 형편을 바로 알아 나라를 위해 일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잘 살아 보세”라며 국민들의 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100여 년 전 구한말(舊韓末) 버전의 ‘선진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청년 이승만은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통상(通商)에서 찾는다.
    제7장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해를 끼치거나 무엇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라 통상하고 교류하여 서로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들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다. (중략) 그러면서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외부세계와 단절하고자 한다. 그것은 외국인들을 방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후록(後錄)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에서도 이승만은 통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6대 강령’의 첫 번째 항목부터가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이 많을수록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이 좋아지고 많아지게 되며, 또한 내가 만든 물품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상용하게 되어 귀중하게 취급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쓰이게 된다. 나아가서 이웃이 많을수록 더 많은 정보와 지식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세계의 부강한 나라들이 자기 나라에서 생산하는 곡식이나 물품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나라들은 백성들에게 상업을 권장하여 다른 나라의 물품들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청년 이승만은 경쟁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경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겨룬다는 뜻으로, 한 걸음이라도 남보다 앞서고자 하며 남보다 먼저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거나 장사를 할 때도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 그러한 마음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通商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청년 이승만은 대한제국(조선)이 왜 망국(亡國)의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를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조선은 나라의 문을 닫아걸고, 상업을 말업(末業)이라 하여 천시하면서, 경쟁을 백안시하는 국가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를 고집했다. 그 결과 조선은 국가와 백성 모두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가난했기에 조선은 제대로 된 상비군(常備軍)을 가질 수 없었다. 러일전쟁 당시 대한제국은 1개 사단도 안 되는 일본군에게 간단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이승만이 이 책을 쓴 지 5년 후 조선은 아예 일본제국에 병탄(倂呑)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작년에 대한민국은 수출 5000억 달러, 무역 1조 달러라는 빛나는 성취를 이룩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수출 5000억 달러를 달성한 나라는 미국·독일·중국·일본·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 등 7개국에 불과하다. ‘무역 1조 달러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한 나라도 미국·독일·중국·일본·프랑스·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 등 8개국뿐이다.
       무역 1조 달러, 수출 5000억 달러라는 기록을 보유한 나라들은 역사 속에서 한때 세계를 호령한 경험이 있는 나라들이다. 또 이승만이《독립정신》을 집필할 때에는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나라들이다. ‘제국’을 경영했던 경험 없이 가난한 후진국에서 시작해 그런 성취를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우리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잘 살아 보세’라던 청년 이승만의 비원(悲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통상과 교류는 이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결과다.

    다시 쇄국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근래 한미FTA 재협상을 넘어 ‘폐기’를 주장하고, 경쟁을 사갈시하는 일부 정치세력을 보면, 이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도 머지않아 종언(終焉)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들은 청년 이승만이 말했던 ‘외국인들이 오지 않았다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외부세계와 단절하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다.
       한미FTA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기로(岐路)에 서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연 개방형 통상국가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쇄국(鎖國)주의로 회귀할 것인가 하는…. 우리가 계속해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느냐, 아니면 100년 전 겪었던 망국(亡國)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느냐 - 선택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