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나라가 아니라고?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최근 ‘2009 개정교육과정’의 개발과정에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국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민주주의로 표현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가 터지자 얼핏 ‘그게 그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게 그것이라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로 표현해도,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로 표현해야지,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민주주의란 말인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얻으려면, 현대정치체제를 대한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v 인민민주주의(공산주의)

    현대에 자유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정치개념으로 인민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인민민주주의는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용어이고,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이념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체제와 정치이념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동시에 대비되고 있다.

    먼저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어떻게 대비되는지 살펴보고, 다음에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대비되는지 살펴보자. 이를 살펴보고 나면, ‘그게 그것 아닌가?’ 라는 의문이 왜 앞서게 되고, ‘대한민국을 민주주의로만 표현해야 된다’는 주장이 왜 위험천만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민민주주의는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혁명 뒤에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계승해서 만들었다는 공산주의의 정치체제이다. 그렇지만 인민민주주의는 태어나자마자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능가하는 반륜적인 폭정을 일삼아왔다. 인민민주주의의 파시즘체제는 20여 년 전에 거의 붕괴되었고, 최근에는 북한만이 참혹하게 고수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19세기 말에 보통선거를 실시되면서 완성된 현대정치체도이다. 보통선거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대의제 또는 공화제로 불렸다.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은 근대 국민국가규모의 정치체제가 고대 도시국가규모의 정치체제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아테네의 민주제와 구별하여 미국의 정치체제를 공화제로 불렀다.

    공화제로 불린 까닭

    근대정치체제가 공화제로 불린 까닭은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참가하는 의회에서 법안이나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근대 정치체제는 아테네의 민주제와 두 가지 점에서 달랐다. 하나는 근대정치체제에서는 아테네의 민회와 달리 국민의 대표만이 참가하는 의회에서 정책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의제로 불렸다. 국민의 대표가 운영하는 정치체제란 뜻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 대표를 추첨으로 뽑던 아테네에서와 달리 근대대의제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투표로 뽑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근대대의제는 공화제로 불렸다.

    인민민주주의의 전국인민대회 대의원들도 투표로 선출된다. 그러면 인민민주주의도 대의제이고 또한 공화제란 말인가? 그렇다. 그들이 스스로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민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2중으로 결합된 정치체제인 셈이다.

    이렇게 살피고 보면 의문이 생긴다. 인민민주주의의 건설자들은 국민의 대표를 투표로 뽑는데도 왜 “민주주의”라는 말을 고집하고, 근대대의제의 건설자들은 마찬가지인데도 왜 “민주주의"라는 말을 피했을까? 그 까닭은 투표가 보통선거였느냐 아니냐에 있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는 민주적이지만, 소수의 재산가들만이 참여하는 제한선거는 과두적이다.

    대의제가 성립되던 근대초기에는 제한선거가 이루어졌다. 일정한 재산을 소유하거나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민주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기 초에 볼셰비키혁명으로 성립된 공산국가에서는 보통선거로 전국인민대회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민주적이었던 것이다.

    대의제가 대의민주주의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들어와 보통선거가 이루어지면서였다. 보통시민들이 모두 선거에 참여하자 대의제는 대의민주주의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권은 초헌법 사항

    이쯤 되면 또 의문이 생긴다. 모두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국가의 최고정책을 결정하는데, 왜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불리고 인민민주주의는 이와 대척점에 서있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근대정치제도인 대의제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근대 대의제는 헌법에 권리장전을 두고 있다. 권리장전에는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거주이동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소유의 자유 및 계약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자유권은 초헌법사항이다. 초헌법사항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되거나 철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권이 권리장전으로 보장되었으므로, 대의제는 본질적으로 자유공화제였다. 자유공화제란 자유권을 불가침의 권리로 존중하는 자유주의와 국민의 대표가 정치를 운영하는 공화주의가 결합된 정치체제란 말이다. 대의제는 이렇게 자유공화제로 출발하였다.

    19세기 말에 들어와 보통선거제가 도입되자, 근대대의제는 대의민주주의로 발전되었다. 권리장전이 그대로 계승되었으므로 대의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였다. 현대정치제도는 이렇게 자유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3중으로 혼합된 정치체제인 셈이다. 현대정치제도는 대의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또는 민주공화제로 불리기도 한다. 서로 뉘엉스가 다르긴 하지만 모두 현대정치제도를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자유권 보장 않는 인민민주주의

    이제 불가침의 자유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왜 대척점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인민민주주의는 자유권을 보장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그것은 앞서 지적되었듯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결합된 정치체제이다. 자유주의가 배척된 민주공화제인 셈이다. 인민민주주의에서는 양심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적이 없다. 더욱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죄악시하고 철폐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적대관계에 서게 되었다.

    헌법에서는 우리의 정치제도를 두 가지로 부른다. 헌법 제1조에서처럼 “민주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하고, 헌법전문과 헌법 제4조에서처럼 “자유민주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모두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가 결합된 대표적인 현대정치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 이념이 결합된 현대정치제도를 현대사회에서는 축약해서 그냥 민주주의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면 자유민주주의나 대의민주주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면 민주공화제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민주공화제는 현대정치체도를 의미한다. 물론 그것이 자유주의가 배척된 인민민주주의의 민주공화제를 의미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로 '인민민주주의 포용'하려는 발상

    이렇게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한, 우리의 정치체제를 그냥 민주주의로 부르든, 자유민주주의로 부르든 상관이 없다. 이렇기 때문에 ‘그게 그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 어떨까? 이런 주장으로 인민민주주의도 포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헌법을 무시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반국가적인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 불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면 어떨까? 이런 주장은 일견 설득력있어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사회민주주의도 포용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로 불려서는 안 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 허용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불가침의 자유권을 부인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다. 현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자유권을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체제에서 실현되고 있는 정치이념일 뿐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의 정치체제의 품안에 있는 정치이념이다.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결별

    20세기에 들어와 사회민주주의의 급진적인 정치이념이 순치되었다.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개념에서 단순히 정치이념만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순치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루어졌고, 두 번째 단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동일시되었다.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추구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사회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동일한 용어로 썼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 바이마르공화국이 성립되자 사회민주주의는 전통적인 혁명론과 결별하였다. 전통적인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이상을 실현하려는 공산주의자와 민주적으로 사회주의이상을 실현하려는 사회민주주의자로 갈라졌다.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인민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평화적으로 생산수단를 사회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바이마르정치체제에 참여했다. 바이마르정치체제는 권리장전을 갖춘 대의민주주의체제였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체제였다.

    자유민주주의 품에 안긴 사회민주주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사회민주주의는 또 한 번의 변신을 거친다.  전전과 달리 굳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정치목적으로 내세우지도 않았고, 생산수단의 사유재산권을 본질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전전에는 생산수단의 사유권을 수단적으로만 인정했지만, 전후에는 그것을 본질적으로 인정하고 부의 평등분배를 추구했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전후에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체제가 서방선진제국에서 확립되자, 크게 두 조류의 정치이념이 경쟁을 하였다. 하나는 큰 시장과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이념과 작은 시장 큰 정부를 추구하는 사회주의이념이었다.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정치이념이 자유민주주의로,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치이념이 사회주의 정치이념이 사회민주주의로 불리게도 되었다.

    '민주'라는 말의 마약 = 인민민주주의 '함정'

    이렇게 자세히 살피고 나니까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논점이 분명해졌다. 우리 헌법은 정치이념으로서 사회민주주의도 허용하고 있지만, 정치체제로서는 자유민주주의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도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위험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치체제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로 불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래처럼 민주주의로 부르자고 한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한다면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체제를 그냥 민주주의라고 종전처럼 부를 수 없다.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도 포용하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에서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