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6.25 ⑥  

    「파파.」
    질색을 한 프란체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고재봉의 얼굴도 굳어졌다. 부관 휘트니 준장도 당황한 듯 얼른 대꾸를 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장군, 대한민국은 동북아 끝에서 기를 쓰고 자유민주주의의 신생아로 태어났소. 미국이 대한민국을 지켜주지 않으면 한민족은 일제시대 이상의 폭압 공산 정권에 시달려 절망하게 될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각하.」
    사령관 부관 코트니 휘트니의 목소리도 정중해졌다.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내가 눈앞에 놓인 식은 우유 잔을 들고 몇 모금을 삼켰다. 이미 프란체스카 앞에서 내 심중을 다 보인 터라 발가벗겨진 기분도 든다. 지금까지 프란체스카 앞에서는 적당히 허세를 부려왔기 때문이다.

    포성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프란체스카를 달래어 내보냈더니 이철상이 군 정보국원 장윤식 중령과 함께 들어섰다. 일본육사 출신인 장윤식은 정보통이다. 해방 전에는 대위로 관동군 사령부에게 정보장교로 근무하다가 소련군을 피해 월남을 했다.

    이철상이 먼저 말했다.
    「각하, 김일성이 경무대를 공격하도록 특수부대를 배치했다고 합니다.」
    이철상은 지친 표정이다. 그때 장윤식이 몸을 반듯이 세운 채 보고했다.

    「예. 개성, 문산 지구에서 남하 해오는 인민군 1사단에 제14부대라는 특수부대가 경무대 공격을 맡았다고 합니다. 제 14부대는 1개 연대 규모로 강동민이란 대좌가 지휘하고 있습니다. 」
     
    「서울이 함락되면 경무대도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더니 이철상이 나섰다.
    「각하, 서울이 함락 되더라도 각하께서는 대한민국을 ----」
    「서울이 왜 함락 당하나?」

    내가 버럭 소리쳤더니 이철상은 입을 다물었지만 장윤식이 나섰다. 30대 중반의 장윤식은 부모형제, 처자까지 모두 북한에 있다.
    「각하, 그럼 대한민국은 누가 지킵니까? 각하께서 끝까지 지휘를 해주셔야 국민이 의지하고 싸울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해라. 지금도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대한민국 국군이 있다. 그들한테 부끄럽다.」

    갑자기 목이 메었으므로 나는 말을 멈췄다. 그러자 포성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문득 나도 듣는데 서울 시민은 저 포성을 듣고 얼마나 불안할까? 생각이 났고 가만  있기가 힘들어졌다. 그 때 황규만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

    「각하, 국방장관 전화입니다!」
    내가 탁자위의 전화를 집어 귀에 붙였더니 신성모의 목소리가 울렸다.
    「각하! 서울은 저희들에게 맡기고 피신 하셔야겠습니다.」

    신성모가 작심한 듯 소리쳐 말했다.
    「적이 의정부 방어선을 돌파한 것 같습니다. 각하!」
    나는 어금니를 물었다. 눈앞에 서있는 민복기가, 이철상이, 장윤식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의정부지구는 한국군이 가장 많이 배치되었다.

    제7사단과 수도경비사 제3연대, 제16, 18, 25연대, 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육사 생도대대까지 전투에 참여했으며 제5포병대대, 거기에다 전투경찰대대도 가담했다.
    신성모가 저럴 정도라면 상황을 최악이라고 봐야 될 것이다.

    그 때 내가 신성모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맡기고 나만 도망갈 사람 같으냐? 난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