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분단 (24)

     이기붕(李起鵬)은 1945년 내가 귀국했을때부터 비서로 일했는데 미국 아이오와주 데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1934년에 귀국했다. 1896년생이니 해방 당시에는 50세의 장년에 내 비서가 된 것이다.

    성품이 조용해서 박기현, 이철상등과 잘 지냈는데 부인 박마리아가 또한 프란체스카의 말동무가 되었기 때문에 내외간에 고마운 인연이다.

    비서로 일하게되면 때로는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사자 역시 내 습성에 익숙해져서 앞질러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기붕이 내 측근이 된후로 월권을 하거나 내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내가 시켜서 한일이고 다 내가 아는 일이다.

    나는 이기붕에게 특히 정치에 관계된 일을 시켰는데 그것은 이기붕이 공식적으로 비서직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 이기붕이 1949년 1월 중순쯤의 어느날 나에게 보고를 했다.
    「각하, 한민당과 대동청년당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무소속까지 끌어들인다고 합니다.」

    지난 5.10 선거때 한민당은 29석, 지청천의 대동청년단은 12석을 얻었다. 그것만해도 원내 제1야당이 된다.

    이기붕이 말을 이었다.
    「곧 내각제로써의 개헌을하기 위해서 총력을 다한다고 합니다.」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무소속의원 85명중에 한민당과 성향이 같거나 한민당으로 간판을 걸기 거북한 인사가 60명 가깝게 되는 것이다. 만일 반민특위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놓고 한민당에 들어갈 인사들이다.

    내가 악질적인 독립운동 방해자 외에는 친일 세력이란 없다고 한 것이 그들에게 힘을 준 것 같다.
    나를 제거할 힘이다. 머리를 든 내가 이기붕에게 물었다.
    「내가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뻔히 알고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기붕의 입을 통해 다시 듣고 싶었다. 그래서 답답한 가슴을 잠시 풀려는 것이다. 그러자 이기붕이 말했다.
    「한민당은 위축될 것입니다. 대동청년단과의 연합도 즉시 보류할 것이고 움직이려던 한민당 성향의 무소속 위원들도 다시 기어들어갈 것입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기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백범 선생님도 각하의 용단을 환영하실 것이고 민중들도 지지할 것입니다.」
    「----」
    「반민특위 위원들도 정부 각부처에서 방해와 압력을 받는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터라 적극 환영할 것입니다.」
    「일석 삼조로군.」
    「그러나 정국은 공산당과 친일파 색출까지 겹쳐 혼란이 가중될 것입니다.」
    「----」
    「특히 경찰과 군의 혼란이 우려됩니다.」

    일제 치하에서 근무했던 경찰과 군이 대한민국의 군과 경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공산당과 싸우고 있다. 이기붕의 시선을 받은 내가 입술 끝만 올리며 웃었다.

    「한민당 사람들도 내 입장을 알고 있겠지?」
    「예, 각하.」

    시선을 돌린 이기붕이 말을 잇는다.
    「각하께서 먼저 공산당으로부터 정국을 안정 시키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마터면 일제 치하에서도 그런 용인술로 견디어온 갑다고 말할뻔 했다가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아무리 분신같은 비서라지만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법이다. 내가 어디 일본 총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