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신고 한달만에 '단순가출' 결론주민들 황당, "불안에 떨어야 했다"
  • “꽃다운 나이 아가씨가 실종됐다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참고 있었는데 그동안 불안에 떨었던 주민들만 바보가 된 것 아닙니까?”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또다시 벌어진 20대 여교사 실종 사건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주민들은 사건이 단순 가출로 결론나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시의 집을 나간 후 종적을 감췄던 초등학교 여교사 이모(28)씨가 부산시에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사건을 전담한 화성동부경찰서는 “이씨가 지난 28일 통장 개설을 위해 부산 사하구 당리동의 한 은행을 방문한 모습이 CC(폐쇄회로)TV에 포착됐다”며 “이씨는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쫓기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등 특이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점 등으로 미뤄 범죄를 당했을 우려는 낮은 것으로 판단, 범죄 가능성을 두고 진행했던 수사는 종결한다”고 밝혔다.

    ◇ 동네 발칵 뒤집힌 것 알고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 ▲ 실종된 여교사 이씨를 찾는 전단지. 이 전단지는 동탄신도시와 인근 병점동 각 아파트마다 붙여졌고 경찰들이 길거리를 다니며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 뉴데일리
    ▲ 실종된 여교사 이씨를 찾는 전단지. 이 전단지는 동탄신도시와 인근 병점동 각 아파트마다 붙여졌고 경찰들이 길거리를 다니며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 뉴데일리

    경찰에 따르면 여교사 이 씨는 자신이 실종 접수됐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작업에 돌입한 것을 알고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자칫 이 씨가 스스로 경찰에게라도 연락을 했다가 가족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실종신고가 접수된 1일 이후 한 달간 인근 지역은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각 아파트마다 사람을 찾는 전단지가 붙었고 아침저녁으로 경찰관들이 도보로 거리를 활보하며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여기에 동원된 경찰과 의경만 3262명에 달했고 이들은 화성·수원·용인 일대의 야산 등 1200여곳을 뒤졌다. 급기야는 헬기까지 띄우고 주민들에게 외출자제까지 당부했다. 전단지 1만6000여장 등 수색에 들어간 자금만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화성동부서 관계자는 “이번 사건 수사에 들어간 자금만 수천만원, 동원된 인력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수억원이 소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은 주민대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찰은 단순 실종 사건의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주민들은 같은 지역에서 1991년까지 여성 10명이 살해됐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며 “역시 터가 좋지 않다”는 식의 말이 오고 갔다.

    신혼부부 비율이 높은 동탄신도시다보니 딸을 가진 부모들의 걱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선 학교마다 하교시간이 되면 자녀를 데려가려는 부모들이 가져온 차량으로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일어났다. 실종 지역 바로 옆 동탄 능동마을 A 초등학교 교장은 “각 가정마다 학부모들을 안심시키는 통신문을 발송했지만, 바로 앞 아파트에 살면서도 등하교를 직접 시키는 학부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20여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이라 교사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고 했다.

  • ▲ 경찰이 실종된 여교사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한 수색을 하는 모습 ⓒ 화성동부서 제공
    ▲ 경찰이 실종된 여교사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한 수색을 하는 모습 ⓒ 화성동부서 제공

    ◇ 끝까지 부모 만나지 않은 여교사, 주민들 “책임 물어야”

    단순 가출로 결론이 난 29일 화성동부서 형사과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부산에 급파됐다. 수소문 끝에 이 씨와 만난 경찰은 귀가할 것을 넌지시 권유했지만, 여교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사건을 형사과에서 여성청소년계로 이첩시켰다. 이 씨가 미성년자가 아니고 본인이 원해서 집을 나갔기 때문에 강제로 붙잡거나 귀가시킬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이 씨의 부모도 CCTV에 찍힌 딸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한 가정의 불화와 이 씨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수십만 지역 주민들이 정신적 피해를 봤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식의 불만을 토로했다.

    동탄 B공인중개사 소장은 “아파트 가격이 민감한 신도시에서 이런 실종사건은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많은 투자자들이 ‘치안’ 문제를 문의해오기도 했다”라며 “결국 단순 가출로 결론났지만, 이미지 타격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경찰도 분통이 터지기는 마찬가지다. 뜻하지 않는 비상근무를 한 달여간 계속해 온 인근 동탄지구대와 태안파출소 직원들은 허탈한 표정이다. 동탄지구대 C 경위는 “신고 사건이 많은 새 학기에 여교사 실종에 대한 목검문을 하느라고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다. 이 씨가 딸과 비슷한 또래라 더 마음이 갔는데 실망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씨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화성동부서 형사과는 “성인인 이씨가 자신의 의지로 가출을 했다는 것을 형사 처벌을 할 수도 없고 이를 몰랐던 부모가 실종신고를 한 것도 그리고 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라며 “지역 분위기가 민감했기 때문이 일이 더 커졌던 ‘해프닝’으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