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키히토 천황의 외동딸인 노리노미야(紀宮) 공주가 도쿄 도청 공무원인 민간인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은 21세기의 서막이 열리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섣달그믐 무렵이었다. 노리노미야 공주도 당시 35세의 노처녀였지만, 배필이 될 사람도 39세의 노총각이었다. 그는 공주의 둘째 오빠와 가쿠슈인(學習院)대학 동기동창이라고 했으므로 필시 둘째 오빠가 중매를 섰음이 확실했다.

  • ▲ 노리노미야(紀宮) 공주ⓒ자료사진
    ▲ 노리노미야(紀宮) 공주ⓒ자료사진

    노리노미야 공주는 결혼과 더불어 왕족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왕가에 관한 규정을 정해놓은 왕실 전범에 그렇게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는 1억5천250만 엔의 지참금(?)을 일시불로 지급 받고 왕궁을 나서야 했다. 돈의 정식 명칭은 ‘황적(皇籍) 이탈 일시금’이다.
    이처럼 일본 왕가를 들여다보면 제법 흥미진진한 구석이 많다. 우선 왕족도 똑같은 왕족이 아니다. 엄연한 구분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천황가(家)’에 속한 사람은 모두 6명에 지나지 않는다. 천황 부부, 황태자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그리고 당시 결혼을 발표한 노리노미야 공주였다. 그 외에는 결혼하여 따로 가정을 가진 방계 왕족들로서 7개 궁가(宮家), 18명이 여기에 속했다.
    국가예산에서 지출되는 돈의 명목도 다르다. 천황가에 지급되는 돈이 ‘황실비’이고, 여타 궁가에 주어지는 돈은 ‘황족비’라고 한다. 황실비는 다시 둘로 나뉜다. 공적 경비인 궁정비(宮廷費)가 있고, 사적으로 쓰는 내정비(內廷費)가 있다.
    가령 천황이 왕궁에서 외국 국가원수를 위한 국빈 만찬을 베풀거나, 궁전을 보수하고 정원을 가꾸는데 드는 비용이 궁정비이다. 그에 비해 미치코 왕비가 자신의 피아노를 고치거나, 황태자가 등산용품을 구입하는 것 등은 내정비에서 지출된다. 궁정비는 대략 60여 억 엔이고, 1999년 이후 정액제로 책정된 내정비는 3억2천4백만 엔이다. 황족비는 각 궁가의 가족 구성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는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도 천황가와 궁가의 대접에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자면 황태자비가 친정 부모와 통화하는 전화요금은 공적 경비로 처리되는데 반해, 궁가의 비(妃)가 쓴 전화요금은 개인 주머니에서 내야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라 함직 했다.
    물론 일본 왕실에 드는 비용이 이것 뿐만은 아니다. 가장 액수가 많은 것은 1천 명이 약간 넘는 직원을 거느린 궁내청 비용이다. 여기에는 천황 부부를 뒷바라지하는 시종직(侍從職) 78명과 황태자 가족을 돌보는 동궁직(東宮職) 47명의 인건비도 포함된다. 그들은 모두 엄연한 국가공무원 신분이다. 이들 가운데 출퇴근이 불가능한 여관(女官)의 경우에는 미망인을 비롯하여 독신여성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궁내청 다음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곳은 왕궁 경찰본부였다. 모두 1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으로 구성된 왕궁 경찰본부는 직제상 경찰청의 부속기관으로 되어 있으며, 광역자치단체에 속한 각 지방 경찰본부와 동격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한 군데 눈길을 끄는 곳은 궁내청 병원이었다. 10명가량의 의사와 그보다 몇 명 많은 간호사, 두어 명의 약제사 등 40여 명이 근무하는 모양인데, ‘환자보다 직원이 더 많다’는 비난을 듣는 곳이었다. 내용인즉 왕족 외에도 궁내청과 왕궁 경찰 등 관련자들이 다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기는 하지만, 하루 평균 외래환자 숫자가 병원 직원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여러 비용을 죄다 포함하여 일 년 동안 일본 국민이 낸 세금 중에서 1인당 200엔을 살짝 넘는 돈이 쓰인다는 계산이라니 과연 많은지 적은지 그 판단은 일본인들이 내릴 일이리라. 세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천황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소득세와 주민세가 부과되지 않으며, 당연히 건강보험료나 연금, 근로자 보험과도 무관하다.
    하지만 국가예산이 아닌 별도의 소득, 예컨대 외부 강연료나 원고료 등을 받았을 경우에는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또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렸을 때-- 물론 천황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궁내청에 따로 담당자가 있다 --에도 세금은 물어야 했다.
    그렇다면 천황가에 딸린 부동산은 얼마나 될까? 왕궁과 별장, 목장, 능묘를 몽땅 합쳐서 토지가 대략 2500만 평방미터이고, 건물이 연 건평 20만 평방미터에 달했다. 다만 도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왕궁을 비롯하여 이들 부동산은 거의가 국유재산이었다. 그러니까 국가가 천황가에 빌려준 셈이었다.
    한때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휘장이 들어간 속칭 ‘청와대 시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어떤 능글맞은 이는 호가호위(狐假虎威)하듯이 그 시계를 차고 주위에 거드름을 피웠다는 소문도 들었다. 천황에게는 그런 게 없을까? 왕이 내리는 것이니까 이야말로 하사품일텐데....
    일본에서는 ‘은사(恩賜)’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그것은 뜻밖에도 담배였다. 천황가의 문장(紋章)인 국화가 그려진 담배를 지방 여행을 할 때 고생한 사람들이나, 왕궁을 청소하러 오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그게 자그마치 연간 170만 개비라고 했으니 금연단체에서 인상을 찌푸린다는 소문이 영 허튼 소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노리노미야 공주는 결혼과 동시에 평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이때 지급되는 일시금은 평소 노리노미야 공주가 받아온 연봉(공식적으로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의 10배에 해당되었다. 만약 남자, 그러니까 왕자가 결혼하여 별도의 궁가를 꾸미게 되면 살림살이 밑천 삼아 연봉의 2배를 일시금으로 준다. 그러나 여기서도 궁가의 경우는 다르다. 궁가의 여성이 결혼하여 평민이 될 때는 액수를 살짝 깎아 연봉의 9배를 지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시금에 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있는 듯했다. 일본 왕가를 뜻하는 은어인 ‘국화의 커튼’, 그 커튼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풍진(風塵) 세상에 나서는데, 과연 그 정도로 여생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대부분이었다. 노리노미야 공주는 어느 조류연구소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물총새를 좋아하여 ‘왕궁에서의 물총새 번식 상황’이라는 공동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천황의 유일한 공주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그녀가 과연 도청 직원의 아내로 행복한 서민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은근슬쩍 궁금해진다.

    도서출판 기파랑 펴냄 '일본 상식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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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 y2cho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