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청래, 이승만 박정희를 히틀러에 비유


    “독일

  • ▲ 류근일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 류근일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천황 묘소에 가서 절 할 수 있겠느냐”  

    [정청래 발언]의 핵심부분이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군국주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은 식민지 민족과 민중에겐 그야말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일제의 천황제 파시즘은 또한 유태인 600만 명과 한국-중국-동남 아사아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살인자들이며 반(反)인도 전쟁범죄자들이다.

    [정청래 발언]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을 그런 [악마 급(級]들과 한 줄에 세운 셈이다.
    그와 함께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공로도,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 공로도 더불어 먹칠당한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역사관은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이 한 게 아니라, 김구 주석의 상해임시정부 때 이미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산업화도 박정희 혼자 한 게 아니라 민중이 한 것으로 돌린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다.

    김구 선생은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노선에 끝까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임시]였다.
    [임시]란 무엇인가?
    [미생(未生)]이란 뜻이다.
    국가의 3대 요소인 영토-인민-주권 모두를 결여했다는 뜻이다.
    이 3대 요소를 모두 갖춘 국제법상 국가의 실체는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건국으로 비로소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건국을 주도한 리더는 다름 아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산업화의 현장 역군들은 물론 근로자 등 대한민국의 일반국민이었다.
    누가 이걸 부인하는가?
    박정희 대통령도 늘 [산업전사들] [자랑스러운 기능공들]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산업화 혁명은 박정희라는 리더, 이병철-정주영이라는 리더를 사상(捨象)하고선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도 몇 해 전 어느 국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산업화 성공은 (경제이론보다는) 박정희라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가 이룩한 것이다.”


    리더의 역할을 제쳐놓고 역사를 말할 양이면, 북한도 김일성-김정일을 빼놓고 이야기 하겠다는 것인가?
    그럴 경우 평양은 아마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우리의 최고 존엄을 무시하고서도 살기를 바라는가?”


    중요한 것은 [정청래 식 발상(發想)]을 가진 486들이 이승만-박정희 부정(否定)을 통해, [그들의 전혀 다른 역사관]을 이 땅에 구현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단순히 정책적인 다툼이 아니다.
    세계관과 세계관 사이의 총체적 투쟁, 무한투쟁, 전면전이다.
    이게 그렇게 무서운 싸움인 줄 모르는 채 어영부영 한 눈 팔고 있는 맹물은 오직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뿐이다.

    국민은 [정청래 발언]에서 많은 것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간파할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청래 발언]의 더 심한 후속편이 부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 교재(敎材)]가 될 터이니까...

    脚註(각주) :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승만 박정희 두 리더의 과(過)를 덮자는 것이 아니다.

    공(功)과 과(過)를 공정하게 갈라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정청래 발언]엔 그런 의미의 공정성이 없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