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떨지 마라, 원칙있게!
  •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호들갑 없이 原則(원칙) 있게 가자

                            

  •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뉴데일리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북한 김정은 정권의 [빅 스리(big three)]가 아시안게임 폐막일인 지난 4일 인천으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온 걸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들의 목표는 물론 남북 회담 재개(再開)다.
    그리고 그 구성으로 보아 그 의지를 전(全)정권적 차원에서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그런 당장의 현안 이전에 이번 평양 [빅 스리]의 거동에 투영된 북한 권력구조의 변동 양상을 주시해 볼 만하다.
    그것은 평양에 [군주(君主)+0]의 시대가 지나가고, [군주+실력자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실력자들의 역할·권한·책임이 작동하는 구조가 들어섰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

    김정일의 등극은 그 아버지 김일성을 상대로 한 집요한 권력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등극은 [갖다 앉혀진] 것이었다.
    따라서 권력의 신화(神話)는 김정은에게서 나오지만, 권력을 떠받치는 힘은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훈구(勳舊) 세력으로부터 나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군주+실력자] 체제가 일사불란한 논리적 정연(整然)성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 기관들의 대남 논평들이 이랬다저랬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인 욕설이 극렬하게 등장하는 것에서 그 혼란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은 북한의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現) 북한 지도급들의 생각이 그만큼 제각각이란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군주+실력자] 구조에선 의사 결정도 "이렇게 하라우." "네, 그러겠습니다. 수령님"보다는, "수령님,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라는 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빅 스리]의 방문도 그렇게 결정되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들 실력자는 대남 접촉에서도 김정일 때보다는 한결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남 사업]도 군주만의 사업이 아니라 그들의 사업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의문은 이렇다.

    그들은 왜 굳이 [서프라이즈 요법]을 썼나?
    그건 [우리가 이렇게 셋이서 온 걸 가벼이 보지 마]라는 퍼포먼스였다.
    북한은 늘 그렇게 [충격]과 [기습]을 가하는 방식으로 남한을 대해 왔다.
    남한은 그렇게 혁명적(?)으로 들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습성일 것이다.

    또 하나 의문.

    그들은 왜 굳이 지금 시점에서 남행(南行)을 결행했나?
    북한은 지금이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다 고립무원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장성택 처형 후 북한에 대해 한층 더 냉담해졌다.
    이런 중국에 빨대를 꽂고 사는 게 그들로선 영 괴로웠을 것이다.
    미국·유럽·유엔에 가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래서 다시 꺼내 든 것이 [한국 카드]였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자기들을 도울 나라는 역시 한국밖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천안함·연평도와 5·24 조치로 이 줄이 끊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5·24 조치를 해제하고 다시 돈줄 좀 대달라], [다시 금강산에 와서 100달러짜리 좀 팍팍 쏘라]고 하는 것이 저들의 속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원칙 있는 남북 관계, 흔들림 없는 협상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원칙이란 무엇인가?
    철저한 상호주의다.

    구(舊)정권들은 이 원칙을 무시했다.
    북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서 우리 요구는 하지 않았다.
    예컨대 비(非)전향 장기수는 돌려보내면서 국군 포로를 돌려보내란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야당과 집권 측 일각은 5·24 조치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핵 문제는 아예 공염불(空念佛) 신세가 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은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시인,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인가?
    이럴 걸 가지고 그땐 왜 그렇게 길길이 뛰었나.
    이러니까 이 나라에선 원칙이라고 천명해 보았자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날 따름이다.
    한국인들이 떠드는 건 대수롭게 여길 게 못 된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북한도 이런 우리의 습성을 너무 잘 알기에 저렇게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남북의 만남 자체는 우리가 항상 요구해 오던 터이다.
    그러나 만남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 만남은 정당하게 해야 한다.
    만남은 명예롭게 해야 한다.
    만남은 서로 실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남은 필요하면 중단할 수도 있고 결렬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자세로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금물(禁物)은 호들갑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