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통일 비전 실현 결의하자(?)”는 스티븐스 미(美)대사

    어수룩한 대사(大使)와 엉터리 번역(飜譯)

     

    金成昱 / 리버티헤랄드 대표, 뉴데일리 객원 논설위원

     

  • 1.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김대중 전(前)대통령의 소위 통일 비전 실현을 강조하고 나섰다.
     
     金 前대통령의 소위 통일 비전은 2000년 김정일과 합의한 6·15선언 제2항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문제의 조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하여 북한식 연방제를 수용했다. 북한은 6·15선언 실천을 집요하게 주장하며 지난해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벌였다. 남한 내 從北(종북)세력 역시 6·15선언을 통일의 章典(장전)인 양 주장한다.
     
     스티븐스 대사는 20일 자신의 블로그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http://blog.daum.net/ambassadorstephens)’를 통해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거론하며 DJ의 통일론을 언급했다. ‘심은경’은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명이다. 이날 올린 글은 자전거로 서해안을 일주 중이던 지난 6일 진도 군강공원에서 열린 현충일 기념식 연설문으로서 한글로 번역돼 올라가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 연설문을 통해 “한미(韓美)양국은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적인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 뒤 미국의 철학자·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말을 인용,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보는 만큼 선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완결체, 즉, 용서, 화합이 필요하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를 통한 통일이라는 비전을 기억하자. 김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결의를 다지자”고 연설을 맺었다.
     
     2.
     스티븐스 대사가 니버의 말을 통해 善(선)과 惡(악)을 뒤섞은 용서·화합을 언급한 것은 황당한 일이다. 니버는 마르크시즘과 기독교의 융합을 추구했고 말년에 종교다원주의로 흘렀지만 ‘인간의 부정의(injustice)’와 그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을 무너뜨려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사악함과 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목도한 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이라도 힘으로 맞서야 한다고 보았다. 정의(justice)를 열렬히 외쳤던 니버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이라는 절대 惡(악)에 대한 용서·화합의 운을 띠운 것은 부적절하다. 九泉(구천)에서 니버가 분개할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김대중式(식) 통일비전 어쩌고저쩌고 한 대목이다. DJ가 수용한 북한식 연방제를 ‘화해를 통한 통일’로 보는 것은 북한정권이나 從北(종북)세력이 하는 선동이다. 이런 주장은 주한미국대사가 할 말도, 해서도 안 되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글로 올라간 연설문 마지막 발언인 “김 대통령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決意(결의)를 다지자”는 부분이다. 마치 운동권 성명을 보는 것 같다.
     
     도저히 미국대사의 발언으로 믿어지지 않아 원문(原文) 연설문을 찾아보니 “We look forward to the day when the whole Peninsula is free and all Korean people experience a reconciliation befitting the sacrifice we honor.”라고 돼 있다. 직역하면 ‘전 한반도가 자유로워지는 날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우리가 존중하는 희생에 어울리는 화해를 기억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자유화되고 이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통해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관용적 표현이다. 한글 번역문에 나오듯 ‘DJ 비전 실현을 위한 決意(결의)’ 운운한 대목은 어디도 없다. 너무 큰 오역이라 의도성마저 엿보인다.
     
     좌파매체들은 스티븐스 대사가 “DJ의 통일 비전 실현을 결의하자”고 했다며 나팔을 불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도 철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엉터리 번역을 홈페이지에 걸어 놓은 美대사관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