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때가 되레 희망 꽃피던 ‘자유의 시절’식량 지원이 주민 억누르는 독재 되살려 놨는데...
  • 지금 북한 사회는 주민의 80%가 자급하고 있고 20% 정도만 배급을 받고 있다. 배급 받는 이들은 평양시민과 보안원 등이다. 한 탈북자가 북한 정권을 지원하면 주민들이 더욱더 어려워진다며 호소하는 글을 전했다.
    다음은 우리말에 맞게 표기법만 수정한 탈북자의 호소이다. 


  • ▲ 북한 시골 장마당 모습.ⓒ주진조선 캡처
    ▲ 북한 시골 장마당 모습.ⓒ주진조선 캡처

    DJ-노무현 정권의 ‘퍼주기 10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남한의 지원 식량이 북한군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확산되자 남한 좌파들 속에서 “최소한 시장의 쌀값을 낮추는 작용이라도 한다. 그 결과 굶어죽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울 것이 아닌가”라며 자기들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엘리트 탈북자’라는 이들이 입을 모아 식량지원을 반대하고 있는 원인이 분명 있다.
    양정체제의 완전 종말은 북한정부의 붕괴이며 김정일 독재의 멸망은 이 길 외에는 없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북한 주민들과 김정일 자신이다.
    지난 90년대부터 북한은 배급을 타 먹고사는 사람(군대 보안원, 당 고위층, 검찰, 판사, 군수공장 군속, 기업 노무자, 주요기관 노동자)와 배급 없이 사는 일반주민으로 갈라졌다.
    일반 주민들은 흔히 달리기팀(물건 나르는 도매상) 태양팀(하루종일 시장에 앉아 해를 머리에 이고 있다 하여 부르는 이름) 두더지팀(화전민) 물개팀(바다, 어업) 등으로 나눈다.

    90년대 말 몆 백 만명이 굶어 죽고, 살기위해 이 세 팀으로 갈라진 일반 주민들은 경사가 40도나 되는 가파른 산까지 부업밭을 일구었다. 그들의 농사는 협동농장의 성과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뙈기밭이 북한 사회를 개혁과 개방으로 추동하는 주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개인부업이 활성화되니 자연히 시장의 곡물 값은 하락 안정 되었다. 배급 없이도 사는, 아니 더 잘사는 좋은 세상이 오는 것처럼 생각됐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행정기능 주민통제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었다.
    공무원들까지 배급을 못 주어 몆 년 간 자유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시작되어 김정일 군부독재를 살리기 시작했다.
    흥남항으로 쌀을 받으러 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신태백’(일본 닛산 엔진에 북한 껍데기를 씌운 차)을 타고 군인들을 데리고 흥남항으로 500리길을 달려가 보니 항구 안에서 시내까지 늘어져 있는 것이 모두 군대 차였다.
    간혹 ‘17’이라는 번호를 단 보안소 차와 군당의 배급을 맡은 ‘53’이라는 번호를 단 군량정 기동대차가 100대 중 1대 꼴로 석여 있었다.
    석유를 많이 사용하는 북한의 차들은 시동하기가 쉽지 않아 한 대가 싣고 빠지면 5~6M 전진, 20~30분 있다가 또 전진, 시동을 걸어놓으면 연유가 모자라 한 번 걸기는 힘들어서 그냥 밀고 만다.
    한 10번 밀고 나니 다리의 맥이 없다. 옆에는 쌀 도매상 아줌마들이 차마다 몆 명씩 배치장도 없이 밀고 들어온다.
    이틀을 밀고 들어가니 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군인들의 식사와 술, 안주도 아줌마들이 해결해주었다. 물론 외상이었다.
    쌀을 받은 다음 외상값과 부대까지 갈 기름을 계산해 쌀로 주고 기름까지 그들이 가져다주어 넣고 부대로 올 수 있었다.
    천리가 넘는 부대 후방장교들은 받은 쌀을 전부 팔고 부대 주변의 개인농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옥수수를 사서 군인들에게 먹이고 폭리를 보기도 했다.
    공무원 세계의 배급제도가 순조로워 지고 감독통제기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를 뿌리 뽑고 사회주의를 지키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장사 못 한다’ ‘개인농 못 한다’ ‘소련과 동유럽이 이렇게 양보하다가 결국 사회주의를 지키지못 했다’며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자백사업이 전개되었다.
    당원은 당 조직별로, 직맹, 여맹, 청년동맹, 소년단까지 부정수입을 모두 당 앞에 자백하고 죽어도 사회주의를 지키다 죽는 충신이 되란다.
    시장의 쌀값은 오르기 시작한다. 천정부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남한이 북한에 지원해 준 쌀은 최고 연간 50만톤 평균 40만톤 수준이었다. 이 양은 모자라는 공무원들의 배급을 보충하기에 거의 딱 들어맞는 양이었다.
    하지만 달리기팀, 태양팀, 두더지팀 이 세 팀이 자유로이 벌어들이고 농사짓던 곡물의 량은 200만 톤이나 됐었다.

    이래도 남한 사회에서는 북에 쌀이 들어갔으니 시장가가 내려간다고 어려운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고 말들을 하고 있다.
    함경도 북부 자강도, 량강도 사람들은 가정집들에 정주영 회장이 몰고 온 소까지 생겼었다.
    이들 소는 전부 몰수해 협동농장에 소속시켰다.
    남한 정부가 옥수수 1만톤 지원을 약속하며 추파를 던지고 북한의 조림 지원을 하겠다고 떠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은 일부러 산에 산불을 놓는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대중운동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탄 나무는 땔감으로 해 와도 법에 안 걸리고 이듬해 불탄 산엔 산나물이 잘 나오고 화전도 할 수 있는데 누가 불 안 지르겠는가? 할머니들이 제일 앞장서서 불을 놓는다. 잡히면 ‘제발 날 죽여주시요’이다. 조림지원? 제발 좀 말리고 싶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북한 2000만 주민의 편에 서 달라. 단 한번만이라도 제발 그들을 도와 독재자 박멸에 나서달라. 방법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