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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처럼 진하고 깊이가 있다. 대화에 기분 좋은 향기가 묻어난다. 나른한 매력 또한 있다. 비단 커피 광고와 드라마 속 이미지가 강렬해서만은 아니다. 직접 만나본 배우 공유는 그러했다. 그리고 그 깊이에 빠진 한 여자가 나타났다. 영화 ‘남과 여’(감독 이윤기)의 상민(전도연 분)이다. 기홍으로 변신한 공유 역시 우연히 만난 상민에 왠지 모르게 흠뻑 취했다. 해서는 안 될 사랑 앞에 놓인 두 남녀는 결국 격정에 사로잡혀 서로의 일상까지 어지럽힌다. 이것은 분명 위험한 이야기다. 하지만 공유는 이윤기 감독의 화법에 손을 들어줬다. 뉴데일리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공유와 ‘남과 여’를 생각했다.

    “기홍이 상민에게 끌린 것처럼 ‘남과 여’도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 주변의 만류도, 걱정도 있었는데 이 작품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기홍에 감정이입이 되다보니 영화를 찍고 난 후에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저도 적은 나이가 아닌지라 기홍으로 살고 돌아오고서 사랑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비록 아픈 사랑이었지만 그 느낌은 좋았어요. 멜로가 늘 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갈증이 해소됐고, 함께 작품을 하고 싶던 전도연 선배님과 연기해서 더 좋았어요. 일단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 순간들을 즐긴 것 같아요. 이윤기 감독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백도 그렇고, 큰 얘기가 아닌 생활 얘기 속에서 애절함을 다룬다는 점도 좋았죠.”

    ‘남과 여’에서 남자 기홍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꽤 분명했다. 이야기, 감독, 배우 모든 요소가 공유에게는 기홍의 상황처럼 강렬한 끌림으로 작용했다. 그래선지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그가 표현한 기홍은 생각보다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완전한 몰입. 언제나 그랬지만 공유가 연기하는 인물은 어쨌든 ‘공유’로 귀결된다. 결코 하나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때문에 그 지점이 더욱 신기하다.

    “계산을 한 적이 없어요. 배우들마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을 텐데, 저는 기본적으로 감정의 과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과장되거나 극화된 느낌 보다는 그 와중에 현실과 닿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와 그런 인물들이 좋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도 내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걸 지향해요. 기홍은 저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어드벤티지를 안고 촬영한 것 같아요. 저는 연기를 공부처럼 생각하지 않거든요. 발성, 호흡도 사실 잘 몰라요. 캐릭터를 처음 접할 때, 일단 나와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를 많이 봐요. 그런 애매모호함이 좋더라고요. 이러한 방식도 연기의 일종이라 생각해요. 예전에 ‘커피프린스’ 찍을 때는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는 ‘야, 연기를 해’ 그러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그 말에 기분이 안 나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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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여’에 참여하기에 앞서 ‘멜로의 여왕’ 전도연 선배님과 연기한다는 점이 무척 끌렸죠. 전도연 선배님의 영화들을 보면 항상 움찔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상대역이 잘 맞아야 작품도 완성도 있게 나오는데, 전도연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기 전부터 왠지 저랑 통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촬영 초반부터 서로 참 잘 맞더라고요. 기차 신에서 그게 제일 잘 발현된 것 같아요. 그 순간, 그 상황에 집중하며 촬영했던 것 같네요. 전도연 선배님은 현장에서 계속 지적을 하기보다 일단 제 연기를 지켜봐주시는 편이었어요. 제가 기차 신에서 계란을 먹으면서 애드리브로 ‘상민 씨 때문에 가기 싫어요’라고 했는데, 선배님이 유일하게 ‘좋다’고 한 마디 해주셨던 게 어찌나 좋던지.(웃음)”

    전도연과 공유의 만남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준으로 굉장히 잘 맞는다. 각자 가정이 있는 기혼 남녀가 사고처럼 찾아온 뜨거운 끌림으로 서로를 애타게 찾는 과정은, 자극적이지만 납득이 전혀 불가한 것만도 아니게 그려진다. ‘멜로의 여왕’과 ‘멜로스런 남자’가 담아낸 캐릭터의 상처와 이를 본능적으로 치유하는 접근 과정이 흡입력 있게 나타난다. 전도연과 공유의 첫 합은 성공적이었다. “저도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결혼하신 분들은 우스갯소리로 ‘영화 보러 와서 찔리는 사람 많을 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불륜이란 소재가 조심스럽죠. ‘남과 여’는 일단 어디까지나 영화라 생각하고 촬영했어요. 그저 본능적인 사랑 영화라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담으려 했고요.”라고 상민과 기홍의 행동에 나름의 설득력을 더하며 소신을 밝히는 공유다.

    “시나리오에서 최후의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연기하면서 처음 느낀 경험이었어요. 발악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내와 딸이 떡하니 곁에 앉아있으니 숨이 막히고 사지가 묶인 느낌이더라고요. 실제 저라면 그런 사랑을 시작도 못했을 것 같아요.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기홍과 같을 것 같지만, 기홍처럼 저돌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 범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설 수 있는 순간이 카메라 앞에 설 때인데, 확실히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이 느껴지거든요. 살면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실제로는 기홍과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겠죠. 결국 그걸 겉으로 드러내느냐 삼키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상민과 기로에 섰을 때는 정말 많이 울었고, 촬영도 길게 했어요. 감독님이 문 앞에서 울고 망설이는 제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감정을 과잉으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셨어요. 결과물을 봤을 때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죠. 또 이전에 아내가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굉장히 많이 났어요.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은 내 진짜 외로움을 모를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위로를 건넸기 때문에 그랬나 봐요.”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설원의 핀란드 헬싱키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깊고 독하며 뜨거웠던 상민과 기홍. 실제 공유의 가슴에도 그와 동화된 뜨거운 감정이 차올랐다. 그러고 보면 공유는 차가움보다는 따뜻함과 뜨거움이 어울리는 배우다. 예전 따뜻함을 기반으로 했던 공유는 현재 더욱 상승한 온도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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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서는 ‘도가니’를 제 터닝 포인트로 잡으시던데, 저는 딱히 그걸 전환점으로 삼고 찍지는 않았어요. 처음 책으로 접하고 열이 받아서 참여했던 거죠. 다들 좋게 포장해주시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인 ‘부산행’에서도 인물들이 고단함을 안고 있는 공통점이 있어요. 지금까지 강자보다는 약자를 많이 연기했네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채워지는 것 같아요. 두려움이 없어지고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내가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고요.”

    어느덧 30대 후반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해지는 나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유연해질 줄 아는 나이이기도 하다. 여느 배우와 다른 눈빛이었던 공유는 이제 그만의 아우라가 확연히 뿜어 나온다. 못 본 3년 만에 더욱 농익었다. 2013년 영화 ‘용의자’ 이후로는 꽤 긴 미열 상태였다. 그러다 2016년 ‘남과 여’를 복귀작으로 삼으며 다시 ‘열일’로 점화하는 중에 있다.

    “작년이 양띠 해였잖아요. 제가 양띠라 그런지는 몰라도 저에게 작년에 운이 있었나 봐요. ‘남과 여’를 촬영하기도 전에 ‘부산행’에 출연하기로 예정돼 있었거든요. 선택 과정도 수월하고 빨랐어요. ‘남과 여’를 찍고 바로 ‘부산행’을 오버랩으로 하고, 지금은 또 ‘밀정’을 하게 됐네요. ‘밀정’에서 저는 독립 운동을 하는 의열단의 리더로 나와요. 이제 크랭크인을 해서 강릉으로 가 타이트하게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감독님과 출연진이 화려해서 호랑이와 용 사이에 있는 강아지가 된 것 같아요.(웃음) 현장에선 정신 꽉 잡고 있죠. 긴장도 많이 했고, 기라성 같은 분들이 계셔서 늘 저를 다잡아요. 이제는 적응이 돼서 감독님과 농담고 하고 그래요.”

    ‘밀정’은 일제 강점기 시대 독립운동단체 의열단과 그를 둘러싼 투사들의 치밀한 전략, 인물들의 배신, 음모를 다룬 영화다. 김지운 감독 연출에 주연 배우로 공유를 비롯해 송강호, 한지민이 함께 한다. 거론된 이름만으로도 시선 몰이가 충분한 영화다. 올해 개봉을 앞둔 ‘밀정’은 제목만큼이나 치열하고 또 뜨거우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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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때는 30대에 진한 멜로를 해보길 원했는데, 지금은 40대 때 내가 남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에요. 40대가 비로소 진짜 남자, 진짜 어른이 되는 나이인 것 같아요. 외국 배우들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생기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판타지가 있어요. 송강호 선배님과 전도연 선배님에 대한 로망이 항상 있었는데 이번에 같이 연기를 해서 소원 풀었죠. 송강호 선배님은 개인적으로 참 섹시한 배우인 것 같아요. ‘관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신을 보고는 바위로 머리를 딱 맞은 기분이었어요. 송강호 선배님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멋있어지는 것 같아요.”

    “강동원, 하정우 배우처럼 다작을 하는 게 부럽던데 저는 호흡이 느린 편이에요. 그런 쉼 없는 에너지가 부럽더라고요. 최근까지 계속 현장에만 있어서 피드백을 잘 못 받았는데, ‘남과 여’의 색다른 캐릭터를 관객들이 보고 어떤 피드백을 할지가 너무 궁금해요. 피드백에 대한 그리움, 작품 소통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올해는 원 없이 들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