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나에게 ‘생명’이예요. 음악이 없으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음악을 관둘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생각조차 무의미하더라고요”

    이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이 있을까. 북한에서 음악적 자유를 위해 탈북을 감행, 음악에 대한 남다른 의지로 대한민국을 놀라게 했던 '새터민' 출신 팝페라 가수 명성희의 이야기다. 본지는 최근 뉴데일리 사옥에서 명성희를 만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음악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래를 하고 싶다’는 신념하나로 탈북을 감행했던 명성희는 북한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음악의 자유’. 그가 듣고 보았던 한국의 음악은 어땠을까.

    “한국 라디오에서 가수 서태지 ‘난 알아요’, 김현정 ‘멍’, 이정현 ‘바꿔’ 등 다양한 음악을 들었어요. 그 당시 그 노래들을 듣는데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깜짝 놀랬죠. 그때 ‘아! 음악도 변하는 구나. 음악에도 흐름이 있구나’ 라는 걸 깨달았죠.”

    그 당시 통일이 될 거라는 환희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았다는 명성희. 그는 한국에 가고 싶어서 매일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고.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 순간부터 매일 기도를 했어요. ‘제발 한국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정말 간절하게 빌었죠. 그렇게 계속 기도를 하니깐 정말 기차를 타고 한국에 가는 꿈을 꾼 적도 있죠.“

    간절한 그의 기도가 통했을까. 명성희는 운 좋게도 중국으로 갈 기회를 얻어 탈북을 감행했다. ‘두만강’을 건넌다는 자체가 그에게는 엄청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간절한 꿈이었던 한국행. 그에게 꿈이 아닌 현실로 와닿은 한국은 어땠을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땐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R&B와 아이돌들이 가요계에 가장 큰 판을 이루고 있었죠. ‘내가 부를 수 있는 장르가 뭘까?’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어요. 이후 ‘음악’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죠.”

    북한에서 부유하게 살았던 그가 한국에서 ‘팝페라’라는 장르를 시작하면 생활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원치 않던 ‘트로트 가수’로도 잠깐 활동도 했다고. 그는 어떻게 다시 ‘팝페라’에 도전하게 된 걸까.

    “트로트 가수를 하던 당시에도 가끔 ‘팝페라’를 불렀어요.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트로트를 부를 때 보다는 ‘팝페라’를 부를 때,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어마어마했어요. 마음을 다 잡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팝페라’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빠져들게 됐죠. 그때가 제 음악인생에서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음악의 인생을 걸었던 명성희. 그가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지 궁금해졌다.

    “아직도 새로운 곡을 받을 때 마다 감회가 남달라요. 특히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무대 위에서 관객들이 저에게 박수를 아낌없이 쳐줄 때죠. 그럴 땐 힘들었던 순간은 싹 사라지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관객들의 응원과 환호는 저를 더 노력하게 만들죠. 음악에 대한 갈증을 끝없이 끓어오르게 하거든요(웃음).”

    한국에 온지 10년, 언제나 음악과 함께 했던 그의 삶에서 늘 그림자처럼 자신을 지켜줬던 건 그의 어머니였다. 행복했던 순간에도, 불행했던 순간에도 그의 곁을 꿋꿋이 지켰던 단 한 사람.

    “어머니는 늘 그림자처럼 항상 같이 다녔어요. 이젠 어머니가 없으면 허전하고 서운하기까지 하죠. 저한테 어머니는 ‘비타민’이고 ‘활력소’예요. 어머니도 북한에서 음악을 하셨던 분이라 음악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시곤 하죠(웃음).”

    명성희는 최근 ‘오라’와 ‘제발’이라는 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에게 ‘제발’이란 노래는 ‘인생곡’일 정도로 특별하다.

    “‘오라’와 ‘제발’이라는 곡을 냈을 때 정말 기대도 안했어요. 요즘 다 ‘사랑이야기’가 담긴 노래들을 많이 듣잖아요. 남과 북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과연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공개 후 반응이 엄청 좋아서 깜짝 놀랬어요.”

    "‘특히 '제발’이라는 곡을 처음 받고 들었을 때 울었던 기억이 나요. 고향생각에 어머니와 함께 오열했었죠. 아직도 이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찡해져요. 어쩔 땐 눈물이 많이 나니깐 이 곡을 부르는 것을 피하고 싶더라니깐요. 저에게 특별한 만큼 앞으로 한국과 북한, 두 관계의 소통에 있어 의미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28일 명성희는 첫 미니 앨범 'Dream'(드림)을 발표했다. 해당 앨범에는 그가 직접 하나하나 선택한 곡들인 '오라' '제발'과 리메이크곡 'The Prayer' 'I Dreamed A Dream' '그리운 금강산'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꿈과 애환 그리고 소망이 담긴 앨범이 대중을 찾아간다.

    “첫 미니앨범 'Dream'(드림) 많이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많은 분들에게 저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에서의 다양한 무대, 더 나아가서 글로벌한 ‘팝페라 가수’가 돼서 국제적인 무대에도 나아가고 싶어요. 숨가쁘게 달려온 만큼 끊임없이 저 자신을 채찍질 한 것을 헛되지 않게 대한민국 최고의 팝페라 가수로 우뚝 솟아 오르도록 노력할거예요. 앞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지켜봐주세요.”

    단아한 얼굴, 진심이 묻어나오는 그의 말투. 열정적으로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하던 명성희.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음악을 직접 불러줄 때면 그 잠깐의 한소절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그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바람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팝페라 가수는 물론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의미있는 노래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음악적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