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 신당論'에 부쳐
     
    ‘호남정치론’ ‘호남신당’ ‘호남민심’ 같은 말들이 갑자기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걸 과연 누가 견인해 갈 것인가를 두고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정치의 엄연한 한 축인 ‘지역’ 그리고 ‘지역 정치’의 한 유력한 축인 ‘호남’이 지난 재보선에 드러난 ‘호남민심’을 계기로 일시에 지표면으로 솟아 오른 셈이다.
    이것은 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연히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있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핵심적인 포인트는 호남 유권자들이 ‘문재인 새민련’ 또는 ‘친노(親盧) 새민련’을
자신들의 대표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김대중 민주당’에서 ‘노무현 열우당’에 이르렀던 ‘한 시절의 정치사(政治史)’가 호남 민심에 의해 ‘참다 참다’ 불신임당한 사태였던 것이다.
 
오늘의 야당인 새민련은 ‘김대중 민주당’과 ‘(노무현을 내세운) 386 운동권’의 합병이었다.
처음에는 DJ가 386 운둥권 출신들을 하나하나 뽑아서 거두어주고 품어주고 먹여주고 키워주고 금배지를 달아주었다.
동교동 계(系)가 터주 대감들이자 후견인이었다면, 이들 발탁된 운동권 출신들은 ‘새피 수혈’이라고 흔히 설명되었지만 처음엔 일종의 ‘난민보호소의 피난민’이자 ‘사랑방 식객’들이었다.
 
 그 식객들은 그러나 마음속으론 “우리가 너희들보다 공부로나 이념적으로나 투쟁경력에서  더 우월하지...” 하는 이심(異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 죽어도 “우리는 DJ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뿐’이라고 토를 달곤 했다.
그러면서도 민주화 후 이들은 김대중 정권 아래서 한 자리 하기도 하는 등 정치적, 사회적 뿌리를 착실히 내려갔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
노무현은 1980년대 전대협 반미(反美) 운동 세대가 선택한 ‘그들의 대리인’이었다.

노무현이 '김대중 민주당‘ 정권의 계승자(대통령 후보)로 발탁된 데는 물론 DJ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변호인 노무현'의 궁극적인 친연(親緣)의 귀착점은 호남이나 동교동계나 DJ가 아니라 1980년대 NL 운동권이었다.
 
 그래서 집권하자마자 노무현 대통령을 끼고 있던 NL 운동권 출신들은 드디어 회심의 대 ’거사(擧事)‘를 단행했다.
 바로 ’김대중 민주당‘ 또는 동교동계로부터 ’이유(離乳)‘를 하고 “지역정당에서 이념정당으로”라는 명분하에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이다.

운둥권 본진(本陳)은 아니지만 이때 앞장섰던 사람들 중 유명 케이스가 바로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3인이었다.
그런데 천정배 의원은 지금 그때완 달리 친노와 새민련을 공격하며 '뉴 DJ 호남'을 역설하고 있다.
돌고 도는 게 정치라 했던가? 
 
민주당, 동교동계, 그리고 호남 유권자들로서는 그때만 해도 “이게 좋은 것인가 보다” 하며 ’그 시점의 대세‘에 일단 순응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한 동안은 밀월(蜜月)도 지속되었다.
’반(反)기성주류‘라는 공동의 대의(大義) 아래 DJ-동교동적인 흐름과 운동권적인 흐름이 한 데 엉겼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구(舊) DJ 계열과 호남 유권자들의 심리가 갈수록 달라져 갔다는 게 이번 재보선 결과 드러났다.
이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문재인 새민련 또는 친노파는 읽지 못했다.
“우리를 이용만 했지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는 호남 유권자들의 소박한 불만에서부터, 친노파 또는 NL 운동권 출신들의 완강한 ’이념적 근본주의‘ 가지고는 정권 교체는커녕 야당 노릇도 변변히 할 수 없다고 하는 정치적 통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탈(脫)새민련‘ 반발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문재인 대표와 친노파는 이 변화를 알아보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깊숙이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었다. 
 
지금으로선 호남의 친노 거부가 어떤 정치적, 객관적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대와 주문을 하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호남의 친노 거부가 앞으로 한국 야당의 바람직한 노선을 재정립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안정당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위상(位相)은 어떤 것인가?

단적으로 말해 “경제에선 ‘다소 진보적’이더라도, 안보에선 정통주의적 가치의 근간(根幹)만은 ‘배척’ 하지 말고 ‘공유’하는 위상이라고 설정해 본다.
각 당(黨)이 실천적인 단계에선 ‘보다 나은 방법론’을 지향해 경쟁적으로 차별화 할 수 있으나, 기본 뿌리와 줄기에 있어선 보수정당과 중도개혁 정당이 정통적인 안보가치를 함께 나누어 갖는 자세가 곧 ’공유‘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일치적(bi-partisan) 안보자세가 좋은 본보기다.
분단국일수록 이점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기 위해선 보수여당도 보다 ‘계몽된‘ 자세를 취하려고 항상 성찰해야 하지만, 중도개혁 또는 온건진보야당 또한 급진과격, 아스팔트 주의(主義), 지나친 포퓰리즘, 극단 분파와 동침 유혹을 결연히 끊어 버려야 한다.
친노는 이점에서 전혀 안도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호남민심’ ‘호남신당’ ‘호남의 목소리’가 우선은 ‘지역’에서 출발하더라도 나아가선 이상과 같은 국가적, 국민적, 보편적 공유가치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기를 당부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