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서 '윤기진·황선 부부' 다큐멘터리 상세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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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마이뉴스 화면캡쳐
    ▲ ⓒ 오마이뉴스 화면캡쳐

    <오마이뉴스>가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한 부부를 다룬 영화를 소개하면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일자 ['종북' 부부 1위... 이 부부의 영화 같은 삶]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철민(36) 감독의 <불안한 외출>이란 영화의 상영 소식을 전했다.

    <오마이뉴스>는 "(보수단체와 보수언론들의) 뚜껑(?)을 열리게 할 또 한 편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이빙 벨>과 마찬가지로 영화 외적인 이유 때문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다큐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작으로 선정한 결정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문화예술인들이 결성한 시민단체를 [극우]라고 표현한 기사를 내보냈다가 1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바 있다.

    이 매체는 "<불안한 외출>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으로 10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던 윤기진(40·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공동대표)씨와 한총련 방북대표로 4년 동안 옥고를 치른 황선(41·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씨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영화"라고 소개했다.

    김철민 감독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수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출품되는데 그중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분단체제가 만드는 불안한 현실, 답답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하면서 "윤기진·황선씨는 일부 언론에서 매도하는 것처럼 '종북부부'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윤기진씨는 "한국사회엔 여전히 눈물과 상처가 많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그중에서도 특히 알려지지 않은 소재"라며 "국민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보안법과 양심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 지난 2005년 방북해 평양에서 딸을 낳은 황선씨가 25일 도라산 CIQ를 통해 돌아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005년 방북해 평양에서 딸을 낳은 황선씨가 25일 도라산 CIQ를 통해 돌아오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윤기진-황선 부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다. 이들을 다룬 영화가 버젓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것은, 부산영화제의 작품 선정과 관련, <다이빙벨>보다 더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조선>(2014.05.12)에 따르면, 윤기진씨는 1999년 한총련 의장을 맡으면서부터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2002년부터는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으로 활동했다. 9년간 수배 생활을 하던 그는 2008년 2월 구속돼 징역 3년 실형을 살았다. 범청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며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하고 한총련 의장을 북한에 보내 지령을 받게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였다.

    윤씨의 부인이 바로 북한에서 아이를 낳아 유명해진 황선(40)씨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부의장 출신인 황씨는 2005년 방북해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인 10월 10일 평양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 딸을 낳았다. 북한 조선중앙TV는 황씨가 방북했을 당시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 2011년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의 윤기진-황선 부부에 대한 기사 전문이다.

    #. 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의 남편 윤기진의 정체

    利敵단체 '범청학련남측본부' 의장 출신의 윤기진(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 남편)은 ‘김일성 만세를 주장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김수영(시인)의 미발표 유작을 언급하며 이를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2008년 징역 7년을 구형받았던 윤기진은 같은 해 7월21일 최후 진술서에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임의로 제약하고 처벌한다는 발상은 전근대적이며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지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윤기진은 (자신을) “처벌하려고 해도 인간의 생각을 몇 프로까지는 유죄, 몇 프로까지는 무죄라는 법적 기준을 세우기조차 난감할 것”이라며 “국보법이 새빨간 색안경을 쓰고 사상검증, 표현통제로 활개 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토론문화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발전도 요원한 꿈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촛불시위를 언급하며 “극우세력들이 어김없이 ‘친북세력’ 배후설을 퍼트리고 극렬반북시위를 조장하는 것처럼, 이남에서 역사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면 버릇처럼 들고 나오는 방패막이로 사용됐다”고 지적한 뒤, 이처럼 “잘못된 인식들이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들마다 민주화의 발목을 잡았다”고 해석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38선을 긋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부추긴 침략과 전쟁의 나라인 미국에 분노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수 십 만에 달하는 양민학살에 이어 윤금이 누이부터, 효순·미선이 까지 살인·강도·강간 등의 강도적 행각을 매일 평균 5건씩 60여 년간 일삼아 온 범죄중독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천문학적 액수의 자국군대 주둔비를 강요하고 군사주권도 모자라 경제주권까지 앗아가는 미국을 반대하는 저는 분명 ‘반미주의자’입니다”라고 고백한 뒤, “저의 대안은 민족공조입니다... (중략) 남북공조·조국통일만이 21세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유일한 출로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기진은 또 “반미자주와 민족공조가 이념을 넘어 실현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지향과 반미·민족공조에 대한 원칙에 대해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저는 민족공조론자이며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선언, 10정상선언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밝혔다.
     
    윤기진은 앞서 수배기간 중인 2007년 10월 인터넷 홈페이지(범청학련남측본부)를 통해 김일성의 유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노무현·김정일이 주도한 10.4선언을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한 통일의지의 산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것을 “민족전체에게도 안타까운 비보”라며 94년부터 2000년까지를 “지금과 같은 6.15 시대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무겁고 어두운 반통일의 기운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기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른바 ‘선군정치’로 헤쳐 나갔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의 북한 정권 찬양은 1996년 11월24일에 김정일이 했다는 ‘결심’에 대한 조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판문점 시찰을 나온 김정일이 그곳에 있는 김일성의 親筆(친필) 서명을 보고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을 결심했다는 것. 그때의 결심을 바탕으로 6.15선언과 10.4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윤기진의 주장이다.

    윤기진의 이 같은 ‘횡설수설’은 선군정치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선군정치를 “남한과 해외의 동포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안겨 주었다”고 평한 윤기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결단’이 미국의 대북전쟁정책이 무력화되고 통일의 조건을 유리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윤기진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9년간 수배생활을 하다 2008년 2월27일 구속됐다. 국보법상 잠입탈출, 利敵단체 가입, 회합통신, 利敵표현물 제작 및 반포, 利敵표현물 소지, 고무찬양 등의 혐의를 받고, 여러 차례에 걸쳐 법정공방을 벌였다. 윤기진은 같은 해 9월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의 실형(2011년 2월26일 출소)을 선고받았다.

    #. 利敵단체 출신의 황선 前민노당 부대변인

     노무현 정권 시절 민노당 부대변인을 지낸 黃羨(황선)은 98년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해 실형을 받았던 인물로 ‘범청학련 남측본부’(利敵團體)와 ‘통일연대’의 대변인을 지냈다.
      
      황 씨가 대변인을 맡았던 범청학련 남측본부는 김정일을 가리켜 “7천만 재결합할 민족지도자”, “구국의 영웅” 등으로 칭송하는 등 극단적 從北·從金성향을 보여 온 利敵團體이다. 통일연대 역시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親北團體(친북단체)이다.
      
      황 씨는 2005년 10월 滿朔(만삭)의 몸을 이끌고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나섰다가,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인 10월10일 북한의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출산했다. 김정일 정권은 이를 소재로 단막극 <옥동녀>를 상영하는 등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6년 11월24일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갓난 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륙로로 가되 차를 천천히 몰아 어머니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親부모심정으로 헤아려 주시였다”면서 김정일의 각별한 관심을 적기도 했다.
      
      황 씨가 통일연대와 민노당의 대변인 및 부대변인 자격으로 발표한 논평들은 “북의 핵무기 보유는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이라느니 “미국은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등 골수 親北·反美 논리로 일관돼 있다.
     
      이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북의 핵무기 보유는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두 나라(美北)의 관계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가장 당연한 대응 인 것이며 또한 가장 적절한 전쟁억지방법이다.” (2005년 2월11일)
      
      △ “근거가 모호한 미국의 人權공격이 과거 미국이 적대하는 나라들에 공공연히 쓰인 일종의 공격행위... 人權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나라로 손꼽히는 미국이 온갖 야유를 들으면서도 以北에 대한 모략을 중단하지 않는 것”(2005년 8월21일)
      
      △ “청하기만 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反美투쟁사에 대해 우리 동포 이북에 대해 논조 하나 흐트러지지 않으시고 쩡쩡 말씀해 주셨는데… 선생님 자주통일원년인데 전 민족 공동의 反美투쟁 그 결정판이 펼쳐질 해인데 이렇게 가시면 어쩝니까…”(2005년 1월 간첩 김남식 추모시)
      
      △ “보수 언론이 일부 탈북자들의 의견을 들어 人權문제를 반복해 이야기하는데, 북에서 일부 탈남자들의 의견만으로 남쪽을 이해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을 덮어놓고 일반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7년 9월21일)
      
      △ “미국,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미군 지휘부 차원에서 저질러진 일... 전쟁 시기 미국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학살과 오늘날까지 축소 은폐한 것에 대해 미국정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저지른 전쟁범죄만으로도 국제전범재판에 서기에 충분하다.” (2007년 4월14일)
      
      △ “미국이 횡행하게 자행해왔고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세계각지에서의 총기난사와 패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묵인 또는 동조까지 해 주면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성을 촉구하기는커녕 단식까지 하겠다는 태도가 과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무슨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2007년 4월21일 조승희 사건에 대한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