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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과 관련한
김동진 부장판사님의 글을 읽고 몇 자 올립니다20년 전 사법연수원 동기로서
함께 공부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저께 김 판사님 사진을 중앙일간지의 1면에서 보았던 때의 심정은
한마디로 착잡했습니다정치에 몸 담고 있고,
한 때 법조인이었기 때문에 두 가지가 떠올랐고,
그 때문에 몇 번을 정독했습니다.첫째, 지난 대선 결과가 불만인 사람들에게
김 판사님의 격정 발언은 가뭄에 단비같은 일갈이 아니었을까.."봐라.
부장판사도 이 정부가 패도정치를 일삼고,
담당 판사는 입신영달에 눈이 멀어
개떡 같은 판결을 했다고 비판하지 않느냐."둘째, '법치주의란 죽었다'..
그럼 법치주의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저는 솔직히 김 판사님의 글이
개인적 소신에 의한 비분강개인 나머지,
독선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글을 쓴 김 판사님의 행동이
오히려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하는 바 입니다.법관의 독립은 법치주의의 핵심입니다.
다른 법관이 노심초사 내린 판결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일반인도 아닌 부장판사가 담당 법관을
출세에 눈이 먼 판사로 낙인을 찍어버렸습니다.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검찰을 '정치 검찰'이라 한다면,
판결에 대해 성급하게 정치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태도는 더 큰 문제입니다. -
이전에 법관의 독립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법원의 선민의식, 권위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여러번 비판했던 저로서는,
김 판사님의 이런 탈 권위적 행동으로 인해 소위 뻘쭘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만.이제는 법관의 독립과
나아가 법원의 판결에 정치적인 해석을 더해
재판에 대해서 불신케 만드는
'법원정치'를 근심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이 사건의 선거법 위반 부분은
법리적으로 논란이 있는,
즉 의견이 다를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1) 삼척동자도 다 안다?
(2)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말도 못했다?
(3)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기에 좌시하지 않겠다?
왠지 과거 제가 학생이던 시절의 매콤한 최루탄 냄새가 생각납니다.
글을 곱씹을수록 한편으로는 김 판사님의 글을 읽고,
'허허' 웃음만 나옵니다.백번 양보하더라도
이것이 법관의 글인지,
아니면 어느 정치단체의 프로퍼갠더 격문인지 헷갈립니다.김 판사님!
저는 나이가 자꾸 드니
제 소신과 지식에 대해 더 의심이 생깁니다.자신감 또한 쉽게 잃습니다.
겸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꾸 하늘보다는 땅 바닥을 쳐다보는 게 편해지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정의와 진실을 너무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 판사님이 제 앞에 계시다면 묻고 싶습니다.그런 태도야 말로 김 판사님의 표현대로,
교조주의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누가 말했던가요,
'지식인은 당파적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당파성의 위험을 알아야한다'고.
오늘의 대한민국,
특히 사법부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법치주의를 위해 수 많은 법관들이 매일매일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내 마음에 안든다고 곧장 정치 영합하는 판사라고,
돌이킬수 없는 비수를 꽂는 것은 사람의 도리나 법관의 윤리 문제를 넘어서,
법치주의와 법관의 독립에 대한 직접적인 협박이 아닐까요?제 기억 속에
연수원 시절 가끔씩 마주쳤던 김 판사님은
그야말로 성실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과 가는 길,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
당연한 일일 겁니다.그 다름에 대한 인정,
또 함께 어울려 가려는 노력이
우리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 발전에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판사님께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진실에 대해
과신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진실,
그리고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도
좀 더 세심히 살피는 도량을 가지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