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사건 20여일만에 북한의 사건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군부가 입을 열었지만 입장은 매우 강경하다.

    금강산 지역 군부대 대변인 명의의 특별담화는 ▲불필요한 남측 인원의 추방 ▲출입 인원.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 엄격 통제 ▲관광지.군사지역 내 사소한 적대행위에 대한 강한 군사적 대응 등 금강산관광지구에 대한 통제.관리 강화 방침을 밝혔다.

    대변인은 담화에서 '위임에 따른 조치'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번 입장이 북한의 최고결정기관인 국방위원회의 결정이라는 점을 시사했으며, 이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번 조치에 동의했음을 사실상 보여주고 있다.

    북측의 이러한 조치는 사건 발생 하루만인 지난달 12일 관광사업 기관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남측의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촉구한 데서 한발짝 더 나간 셈이다.

    북측의 이 같은 태도는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이 사건을 국제사회에서 이슈화하고 있고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이 "반북대결"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노골적 불만 표출로 평가할 수 있다.

    담화에서는 금강산 사건에 대한 국제공조를 "구차하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추태"라고 비난했으며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납득할만한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적반하장격으로 우리를 걸고 들며 계속 분주탕(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구실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한 반공화국 대결소동에 열을 올리면서 내외의 여론을 오도하여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북한은 '국민의 생존권'을 주장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해서 '쇠고기 문제'를 빠져나가기 위한 의도적 주장이라고 폄하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사건을 쇠고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피살사건의 불가피성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경고신호→경고사격→조준사격'순으로 정리된 남측의 교전규칙까지 거론하면서 "우리 군인은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의 시계상 제한으로 침입대상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가 남자인지 녀자인지조차 식별할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같은 "군사지역 안에서의 엄격한 군사적 대응 조치"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나 꼭같이 적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현실"이며 "더욱이 임시적인 정전상태에서 쌍방 무력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군사적 요구가 더 철저히 준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남측의 현장조사 요구에 대해 현대아산측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형사주권'을 강조했다. 북한 사회에는 '인명경시'경향이 만연해 있을 뿐 아니라 군사지역에서는 민간인에 대한 총격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북한당국이 민간 여성을 피살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아울러 북한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황금알"을 낳는 금강산 관광비가 아쉽다고 하더라도 "반북"적인 이명박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절대 밀릴 수 없다는 입장을 세우고 "강경에는 초강경으로"라는 북한식 대응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2006년 미국의 대북무시전략에 미사일 발사를, 유엔의 대북결의안에 핵실험으로 대응해 미국 정부의 양자대화를 이끌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강경 대응을 통한 위기고조전략으로 남한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압박에는 더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북한의 정치적 행태"라며 "남측의 책임론 제기와 모의실험, 국제공조 등의 압박이 계속되자 강경한 대응으로 맞서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남측 정부의 조치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상황에서 크게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천명한 조치는 관광이 진행중인 상황이라면 치명적이겠지만 어차피 관광이 중단돼 있어 실효성 보다는 상징성이 더 커보인다"며 "이번 조치가 사태의 장기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측은 일단 군부의 입장 발표를 통해 사실상 최종입장을 밝힌 만큼 앞으로 남측의 태도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담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오늘의 북남관계가 파국적인 사태로 번져가는 경우 시대와 민족 앞에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관광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쪽에서 먼저 관광 중단이라는 언급을 하게 되면 남북간 투자보장합의에 따라 남쪽 투자분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더욱이 금강산 사업은 김정일 위원장이 판단해 직접 재가한 남북간의 협력사업이라는 점에서 북측의 관광중단은 '수령의 무오류성'을 절대시하는 북한사회에서는 용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정주영 명예회장과 만나 결심한 이 사업을 북측이 먼저 중단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며 "하지만 북측이 강경한 입장을 밝힌 만큼 사태가 장기화될 개연성이 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이 군부가 관할하는 개성공단 입출경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남측을 압박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또 금강산 현지에서 관리를 위해 남아있는 현대아산 직원들을 추방하는 조치도 이어질 개연성이 커 보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