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자백? 고문에 의해 나올 성격의 진술 아냐"고영주 변호사 "부림사건은 절대 용공조작사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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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변호인  ⓒ 네이버
    ▲ 영화 변호인 ⓒ 네이버


    [특별인터뷰] 81년 '부림사건' 맡았던 고영주 전 검사장

    "그들은 절대 허위자백한 게 아닙니다.
    제게 먼저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거라고 말했어요"


    영화 <변호인>이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로
    부산의 <학림> 사건이라 불리는
    일명 <부림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 등기와 세금 자문 등 돈을 버는데 급급했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이
    이 사건을 만나면서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되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보여준 활약을 그린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다.

    작품이 유명세를 타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림사건>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부림사건>을 검색해 보면
    *1981년 제5공화국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
    , 이라고 나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림사건 [釜林事件] (두산백과))

     

  • 고영주 변호사  ⓒ 뉴데일리
    ▲ 고영주 변호사 ⓒ 뉴데일리

     

    하지만 당시 [수사검사]로 사건을 담당했던 고영주 변호사는
    이를 강하게 부정한다.

    그는 "부림사건은 분명히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당시 1피의자(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용의자)였던
    이모씨와의 대화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모씨는 고 변호사(당시 검사)를 보고는 대뜸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 법칙도 모르냐?"며 호통을 쳤다는 것.

    이어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뀌고,
    지금은 검사님이 우리를 조사하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우리가 당신을 심판할 것"이라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모씨: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 법칙도 모르십니까?

    고영주 변호사(당시 검사): 그게 무슨 소리냐?

    이모씨: 결국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입니다.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뀔 것입니다.
              지금은 검사님이 우리를 조사하고 있지만
              곧 도래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겁니다

    고영주 변호사: 공산주의 사회도 모순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올 거냐?”

    이모씨: 아직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다음 사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언어의 유희입니다.
              우리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

    고변호사: 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공안 검사기 때문에
                 너희를 조사하고 기소할 수밖에 없다


    고 변호사는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고 술회했다.
    검사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피의자는 처음 봤다는 것.
    무엇보다도 그들의 진술이
    [고문]에 의해 나올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포지]하고 있느냐고 물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먼저 내게 와서
    공산주의 이념이 옳은데 왜 이것을 모르고 있냐,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고문]에 의해서 나올 대답이라고 생각하는가?

       - 고영주 변호사


    <부림사건>은
    2006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2008년 대법원에서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재심 판결을 받았고,
    2009년에는 일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전반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유죄판결을 뒤집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영화 변호인  ⓒ 네이버
    ▲ 영화 변호인 ⓒ 네이버

     

    고 변호사는
    <부림사건>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저항감을 드러냈다.
    [자유 민주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판단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민주화가 저쪽(좌익)에서 말하는 민주화라면
    <부림사건>도 민주화 운동이 될 수 있다.
    <민주화운동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말하는 민주화는
    인민민주주의 운동을 한 것도
    전부 민주화 운동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공산주의도 대외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고 한다.
    북한도 인민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나?

       - 고영주 변호사 

     

  • 고영주 변호사  ⓒ 뉴데일리
    ▲ 고영주 변호사 ⓒ 뉴데일리

     

    고 변호사는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사건]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사실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 사건이 [용공조작사건]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당시 사회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밝혔다.
    "대다수의 국민이 6.25를 겪고 난 상황에서
    [친북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납득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6.25를 직접 겪고 난 상황에서

    그런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사실을 믿지 못했다.
    요즘에야 밝혀진 것들이 많기에
    종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민들이 우리를 조작이나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 고영주 변호사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
    이유 없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사건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으로
    정당한 주장이 묻히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아직 국가보안법에 관련된 판결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가 [이성]이 아닌
    [감성]에 치우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진 = 뉴데일리 DB / 영화 '변호인' 스틸 컷]

                                      <인터뷰 전문>

    용공조작사건이 맞는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부림사건>은 분명히 공산주의운동이었다.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다른 쪽에서는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사건]이라는 의견이 강하다.
    하지만 검사가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가 고문에 의해 억지로 자백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구별을 못하지는 않는다.

    사건을 맡게 되면서
    1피의자(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용의자)를 조사 하게 됐다.
    이OO이라는 사람인데 사건의 핵심멤버였다.
    그가 처음에 내게 와서 하는 소리가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 법칙도 모르십니까?”였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는 유물사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뀔 것입니다.
    지금은 검사님이 우리를 조사하고 있지만
    곧 도래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피의자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당황스러웠다.
    피의자가 검사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공산주의 사회도 모순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공산주의 사회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올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직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다음 사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언어의 유희이다.
    우리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공안 검사기 때문에
    너희를 조사하고 기소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나와 그가 했던 그런 대화가
    고문에 의해 억지로 이뤄진 성격의 것이라고 보이는가?
    그는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말을 했다.
    내가 공산주의 이념을 포지하고 있냐고 물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먼저 내게 와서 공산주의 이념이 옳은데
    왜 이것을 모르고 있느냐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그들이 최소한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부림사건>은 단순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


    물론 민주화를 저쪽(좌익)에서 말하는 민주화라면
    <부림사건>도 민주화 운동이 될 수 있다.
    <민주화운동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말하는 민주화는
    인민민주주의 운동을 한 것도
    전부 민주화 운동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공산주의도 대외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고 한다.
    북한도 [인민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용공조작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82년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해방 이후 [최대의 공안 사건]이고
    [최초의 반미 투쟁] 사건이다.
    그전엔 [반미]라는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부림사건> 이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학생들이 [반미친북]의 좌경화 의식학습을 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발표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체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북한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화를 한 후 그들은 빌딩에 올라가
    유인물을 살포했다.
    하나는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가 북침준비를 완료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에도 나온 내용이다.

    국민들이 궁금해 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좌경화 학습을 받고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우리의 상황을 보고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사실 발표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이상하게 나왔다.
    “대한민국 대학생이 그럴 리가 있겠냐”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용공조작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친북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 대다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6.25를 직접 겪고 난 상황에서
    그런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납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을 믿지 못했다.

    요즘에야 밝혀진 것들이 많기에
    종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민들이 우리를 조작이나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시사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동안 왜 공안검사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나는 “공안 검사는 일반 국민들이 위험을 인식하기 훨씬 전에
    국가적 위험을 인식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응하다 보니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이 공안검사의 비애이기도 한 것 같다”고
    답한 적이 있다.        

    덧붙이자면 그 당시에는 법조인 수가 많지 않았다.
    절대 부족했다.
    젊은 검사가 변호사가 되면 큰 액수의 돈을 벌곤 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즉, 우리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까지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소신에 반하는 일을 지시 받으면서까지
    거기에 남아서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고문이 없었는가?


    정말 한 대도 안 때렸을 거다, 라는 생각은
    나도 안 한다.
    80년대 당시 경찰서에서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관련 서적들이 다 압수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이미 언급했듯이
    그 학생이 내게 와서 했던 이야기가 있다.
    “공산주의 사회가 곧 도래할 텐데
    아직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를 지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당당하게 얘기하는데
    그의 진술은 사건하고 상관된 이야기도 아니었고,
    이런 말을 고문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고문을 받아서 한 진술이라면
    쭈뼛쭈뼛 했던지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학생들이 공산주의 이념을 포지하게 됐다고 보는가?


    12.12와 5.18을 겪고,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학생들이 군사정부에 대해 반감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생각에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불가능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틈을 타고 좌익 세력들이 접근했다고 본다.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산주의 혁명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런 식의 논리가 성립한 것이다.

    또 자신들의 생각을 부모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선각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식인 것이다.
    종교인들이 포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림사건>이 일부 무죄 판결이 났는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과거 있었던 공안 사건들이
    모두 무죄 판결이 나고 있다.
    간첩사건도 모두 판결이 뒤집어지고 있다.
    아까 이미 언급했듯 <민주화운동 보상 심의위원회> 위원들은
    [자유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줘야하는데
    전부 [인민 민주주의] 운동을 한 사람을
    민주화 운동 유공자라 해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심지어 <남민전 사건>같은 경우도 보상을 했다.
    과거사 진상 규명 관련해서 판결이 뒤집어 진 것은
    그 당시에 실정을 모르고 판단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

    각 분야가 좌익 세력에 점령돼 있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가 심각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과 종북 세력들이 자충수를 둬서
    그동안 왼쪽으로만 가던 것이
    우향화 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희망을 보고 있고 기대를 하고 있다.